강북의 한 동네에서 6개월간 10여명의 연쇄실종사건이 발생한다.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수정(김새론)은 늦은 시간까지 일하는 언니 연서(정유미)를 마중하러 나간다. 연서의 퇴근길 수정과 영상통화가 급작스럽게 끊어진다. 연서는 땅속으로 사라진 수정을 찾아 맨홀 아래 세상을 헤매기 시작하고, 그곳에는 아버지에 대한 강한 트라우마를 간직한 연쇄살인범 수철(정경호)이 정글의 사자처럼 군림하고 있다. 그는 하수구와 어두운 골목을 자유롭게 누비며 새로운 희생자들을 사냥하러 다닌다. 딸을 잃은 아버지와 두 자매 그리고 그들의 흔적을 좇는 경찰이 힘겨운 추격전과 탈출기를 보여준다.
우리가 매일 지나다니는 길, 그 아래 우리가 전혀 모르는 비밀의 세계가 있다. 흥미로운 설정이다. 무심코 지나가며 본 맨홀의 구멍 사이로 누군가의 눈동자를 발견하게 되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하다. 신재영 감독의 장편 데뷔작 <맨홀>은 그런 설정과 장면을 포함하고 있음에도 심장을 저미는 공포를 좀처럼 경험할 수 없다. 일단 영화는 공포, 혐오, 슬픔, 감동, 유머라는 복잡다단한 감정의 코드들을 난삽하게 배치하고 있다. 그 난삽함은 맨홀 아래 세계의 무질서함과 살인마 수철의 무질서한 살의와 어우러지며 혼란스럽게 전개된다. 수철은 가공할 만한 공포를 생산하는 존재가 되지 못하고, 두 자매의 멜로드라마틱한 사연은 생뚱맞고, 딸을 잃은 아버지의 감정은 종종 내팽개쳐진다. 너무 많은 인물을 맨홀로 들여보내서인지, 맨홀 아래 세계를 감독조차 장악하지 못한 탓인지 왜 이 인물이 맨홀 안을 들어갔다 나오는지도 설명이 안 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