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고백은 치유의 시작’ <천 번을 불러도>
2014-10-15
글 : 정지혜 (객원기자)

왕따를 당하던 아이가 학교에서 자살했다. 아이들은 휴대전화 메신저 창에서 친구의 죽음을 ‘특종’ 거리로 전락시켰고 학교는 빠른 수습만을 원한다. 우등생 하나(이청미)도 ‘그런 일로 죽기까지 해야 했을까’라며 친구의 죽음을 의아해한다. 그러던 차에 하나에게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진다. 평소 자상하던 아빠가 엄마를 때리는 장면을 목격하고 거리를 헤매던 날, 하나는 밴드부 선배 세미(정성희)가 소개해준 사람들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심지어 세미는 하나에게 그날의 끔찍한 영상을 들이밀며 거액의 돈까지 요구한다.

<천 번을 불러도>는 폭력 앞에 방관자이거나 비겁자로 전락한 어른들, 그 속에서 곪아가는 아이들을 조명하는 문제의식 짙은 학원물이다. 영화는 비극적 현실만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상처 입은 아이들을 적극적으로 회복시키고자 애쓴다. 뮤지컬 제작자인 감독은 음악과 사람들 앞에서의 자기고백을 치유의 방법으로 제안한다. 곡을 만들며 외로움을 달래는 같은 반 친구 대현(김최용준)이나 대현과 노래하며 잠시나마 안도하는 하나는 상투적이긴 하나 무리 없는 설정이다. 문제는 하나를 도우려는 선생님과 대현이 하나에게 힐링센터에 나가 아픔을 고백하길 권하는 데 있다. 러닝타임의 절반 이상을 그녀의 고통을 그리는데 치중해온 영화가 그것이 극에 달한 순간 고백의 필요성부터 강조하는 건 성급하고 위험해 보인다. ‘고백은 치유의 시작’이라는 엔딩의 자막이 영화의 의도를 분명히 전달하는지는 몰라도 누군가의 고통을 사려 깊게 지켜보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는 않는다. 하나 스스로 말하길 바라기 전에 누가 하나의 말에 귀기울일 것인지 보여주는 게 먼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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