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혁의 바디무비]
[김중혁의 바디무비] 솔직히 말해서, 솔직해지긴 어렵지
2014-10-16
글 : 김중혁 (작가)
일러스트레이션 : 이민혜 (일러스트레이션)
<프랭크> 속 재능과 결핍의 불가분의 관계에 대하여

말을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자주 쓰는 문구가 있다. 이를테면, ‘이를테면’이라든가 ‘다시 말해서’라든가 ‘그게 아니고’라든가, 또는 내 경우처럼 ‘솔직히 말해서’라든가. 그렇게 말하게 된 데는 다들 각자의 사정이 있을 것이다. 요약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일 수도 있고, 정확히 말하지 않으면 계속 다시 말해야 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나는 ‘솔직히 말해서’라는 말을 왜 자주 하게 됐는지 (솔직히 말해서) 잘 모르겠다. 주위를 둘러보면 ‘솔직히 말해서’ 혹은 ‘솔직히’라는 반복어를 쓰는 사람이 가장 많은 것 같긴 하다. 요즘 세대들도 ‘솔까’(솔직히 까놓고 말해서의 준말)라는 말을 사용하는 걸 보면 애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솔직하기 어려운 시대다. 아니, 다들 솔직하게 까놓고 말하는 거니까 지나치게 솔직한 시대인 건가.

영화 <프랭크>에서 주인공은 인형 탈을 쓰고 등장한다. 참으로 노골적이기 이를 데 없는 영화 제목인 것이, 인형 탈 쓰고 등장하는 주인공 이름을 ‘프랭크’(Frank)로 지어놓았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가면 쓴 주인공 이름을 나솔직씨(a.k.a. 나솔까씨)로 지은 거다. 탈을 쓰고 있어야 솔직할 수 있다는 것인지, 탈을 쓴 게 오히려 솔직하다는 것인지, 탈을 쓰고 있어도 솔직할 수는 없다는 것인지, 감독의 의중은 잘 모르겠지만 대놓고 솔직한 제목인 것은 확실하다.

프랭크는 24시간 탈을 쓰고 생활한다. 샤워도, 노래도, 식사도, 탈을 쓰고 한다. 사람들은 대체 탈 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궁금해하지만, 애써 벗기려 들지는 않는다. 우리도 전부 가면을 쓰고 있긴 하니까, 프랭크처럼 커다란 인형 탈은 아니지만 자신만의 탈을 가지고 있으니까 벗길 필요가 없는 것이다.

프랭크는 인형 탈을 쓰고 밴드 소론프르프브스에서 작사, 작곡과 노래를 담당하고 있다. 소론프르프브스의 노래는 낯설다. 노래에 등장하는 가사가 대략 이런 식이다. ‘생강 크루통, 소금에 절인 관절, 소금물 속의 참치, … 아이를 밀어, 코드를 잘라.’ 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가 없다. 낯설기는 음악 역시 마찬가지다. 문 여닫는 소리나 바람 소리 같은 각종 음향과 전자음과 악기 소리와 사람의 목소리가 뒤얽혀 있는데, 지구의 소리 같지 않고 우주에서 불시착한 음향 같다. 밴드 이름을 들을 때부터 눈치챘다. 그럴 줄 알았다. 몇달 동안 시골에 모여서 이상한 소리를 채취하고, 완벽한 조화를 이룰 때까지 연습에 연습을 거듭할 때부터 알아봤다. 소론프르프브스라는 이름을 달고 평범한 음악을 할 리가 없다(극중 인물 돈이 부르는 <Be Still>같이 아름다운 노래도 있지만 공식적인 밴드의 음악은 아니다).

주변 사람들은 밴드의 음악을 만드는 프랭크를 천재라고 생각한다. 프랭크는 누구보다 소리에 예민하고 밴드의 조화로운 소리를 만드는 데 예리하다. 프랭크가 천재인지는 모르겠지만, 영화 후반부 인형 탈을 벗은 프랭크를 보는 순간 나는 윌리엄스 증후군(Williams Syndrome)이라는 증상이 떠올랐다. 1961년 뉴질랜드 심장학자 J. C. P. 윌리엄스가 발표한 논문에서 이름을 따온 윌리엄스 증후군은 심장과 대혈관에 이상을 일으키고, 특이한 얼굴 형태, 정신지체가 동반되는 증상을 보인다. 윌리엄스 증후군이 일반적인 정신지체와 다른 점은, 능력과 장애가 묘한 불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인지능력, 이를테면 시각과 공간 감각이 결여되는 정신지체가 있는 반면 ‘친절하고 수다스러운 성격’, ‘비범한 언어 구사 능력’, ‘음악을 이해하는 능력’ 같은 일반인을 뛰어넘는 재능을 보이기도 한다. 윌리엄스 증후군을 겪고 있는 아이들은 지능지수가 낮은데도 시적이고 색다른 어휘들을 사용할 줄 알았으며, 그런 단어들을 음악적으로 적용하는 데 절묘한 능력을 발휘했다. 인지신경학자 어슐러 벨루지는 윌리엄스 증후군의 아이들을 이렇게 설명했다.

“리듬을 제대로 이해하고 리듬이 음악 문법과 형식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이들에게 가장 고도로, 그리고 조숙하게 발달한 것은 리듬만이 아니라 음악 지능의 모든 측면이다. 윌리엄스 증후군자들은 일반인보다 훨씬 더 음악에 몰입하고 ‘음악성’을 보인다는 점도 확실한 것 같다.”

프랭크가 윌리엄스 증후군이 아닌가 의심스러운 또 하나의 이유는, 밴드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윌리엄스 증후군자들은 다른 사람과 함께 음악을 연주하려는 욕망을 강하게 보이며, 다른 사람을 위해 연주하는 것도 무척 좋아한다.

기묘한 불균형이다. 한 사람의 몸에 정신지체와 음악에 대한 놀라운 집중력과 다른 사람과 함께 음악을 하고 싶다는 사교적 성향이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윌리엄스 증후군의 원인은 일반인보다 15~25개의 유전자가 결여돼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모든 천재들을 윌리엄스 증후군자로 부를 수는 없지만 천재처럼 보이는 사람들은 어떤 유전자의 결핍으로 만들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프랭크가 천재처럼 보이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프랭크가 사용하는 어휘, 프랭크가 밴드를 다루는 방식, 음악을 창작하는 기법 같은 것은 어떤 결핍으로 인해 만들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는 실질적인 주인공 존이 바다를 바라보면서 음악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한다. 존은 눈에 보이는 것들을 단어와 음악으로 바꾼다. 밀려오는 파도, 사람들의 모습, 건물의 색과 풍경을 소리와 단어로 바꾼다. 창작은 당연히 잘되지 않는다. 코드는 매번 지겹게 반복되는 것 같고, 단어도 식상해 보인다. 그런 존에게 프랭크의 모습은 천재 같다. 그는 자유로워 보이고, 색달라 보이고, 현실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 존은 프랭크를 동경하고, 프랭크처럼 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존은 자신이 천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존은 프랭크를 비난한다. 제발 인형 탈을 벗고, 솔직해지라고, 그 속에서 대체 뭘 하고 있느냐고 비난한다. 프랭크에게서 썩은 냄새가 난다며 인형 탈을 벗기려고 애쓴다. 존은 프랭크의 재능을 부러워했지만 프랭크의 결핍을 이해하지는 못했다.

상대방의 재능을 부러워하면서 결핍을 눈여겨보지 않을 때 불필요한 질투가 생겨나고, 결핍을 비난하면서 재능을 애써 무시하려 할 때 무시무시한 편견이 시작된다. 누군가를 천재라고 부르는 순간, 그의 결핍이 뒤로 가려지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그를 솔직하게 보고 있는 것일까. 우리의 무언가를 감추기 위해서, 우리의 무언가를 합리화하기 위해서, 상대방의 특별한 이름을 호명하는 것은 아닐까. 천재, 바보, 사이코, 등신, 장애인, 그런 이름들로 뭔가를 슬쩍 가리는 것은 아닐까. ‘솔직히 말해서’라고 말하면서 은근히 솔직하지 않은 말만 하는 것은 아닐까.

솔직해지기 위해서, 혹은 프랭크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상대방의 재능과 결핍을 동시에 인정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재능과 결핍을 동시에 알아채는 법도 배워야 한다. 프랭크가 인형 탈을 벗고 처음으로 부르는 노래의 제목은 <I Love You All>이다. 중간에는 라임을 맞추기 위해서 ‘I Love You Wall’이라는 가사도 있다. 나는 모든 걸 사랑하고, 나를 가로막고 있는 벽까지 사랑하고 싶다. 솔직해진다는 건, 솔직히 말해서, 참으로 어려운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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