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조종국 <씨네21> 편집위원
지난 부산국제영화제 때 <다이빙벨>을 상영한 극장에 ‘정보원’들이 어김없이 등장했다. 국가정보원 직원인지 경찰인지 판별할 수는 없었지만 이들이 현장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일반 관객과 대부분 영화 관계자들인 게스트와 기자들 이외에 이질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행색을 한 몇몇이 있었다. 그런 이례적인 현장에서 정보원들을 알아보는 것은 의외로 쉽다. 애써 태연한 척, 자연스러운 척하려는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도리어 눈길을 끌기 십상이다.
나름 영화계의 격동기였던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에도 흔한 일이었다. 스크린쿼터 지키기와 검열 철폐, 표현의 자유 옹호 등 당시 현안이나, 꽤 첨예하고 격렬했던 영화계의 신구 세대간 갈등 현장에도 그들이 있었다. 집회나 행사장은 물론 크고 작은 모임에 꼭 나타나 영화인들과 눈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머지않아 그들의 신분은 알음알음으로 드러났고, 심지어 어느 뒤풀이 자리에 합석해 통성명한 적도 있다.
이런 정보원들은 이목이 쏠린 현장에만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다. 평소에도 영화 관련 주요 기관과 단체 등에 드나들거나 공공연히 관계자들을 만난다. 밥도 먹고 술도 마시지만 정색하고 앉아서 중요한 정보를 주고받거나 심각한 거래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고위층의 관심사안’이 생기면 전화해서 기관이나 단체의 동향을 궁금해하거나 의견을 묻는 정도가 대부분이니 대수롭지 않은 일로 넘길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런 방식으로 수집하고 가공한 정보가 엉뚱한 목적으로 쓰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과 나눈 몇 마디 대화와 무의식 중에 전한 소문이 보고용 정보로 가공되고, 취중에 흘린 어떤 뒷담화가 첩보로 활용된다면 맥락이 완전히 달라진다. 여러 상황을 입체적으로 분석해서 공익에 입각한 신속한 대응을 모색한다는 정보 수집 취지는 뒷전이고, 이들은 오로지 ‘보고’에 관심을 둘 뿐이다. 수백명이 배 안에 갇혀 있는 긴박한 순간에도 긴급 구조를 위한 정확한 상황 파악보다 ‘보고’가 먼저라고 주창하던 해양경찰과 청와대 관계자들의 생생한 육성과도 같은 묶음이다.
영화계도 다르지 않다. 동네 소문 모으는 수준으로 취합한 정보가 여론으로 포장되고, 몇몇의 뒷담화와 협잡이 첩보로 둔갑해 또 다른 패거리를 형성한다. 별 문제의식 없이 이들과 어울리는 영화 관계자들은 정보원에게 듣는 몇 마디가 권력에 조금은 가까이 있다는 보증인 양 착각한다. 서로 정보를 주고받고 적절히 조정해서 봉합하고 지나갈 수 있으면 좋은 것 아니냐는 사람들도 있다. 생각이 좀 다르다. 각자 분명한 자기입장과 태도로 사명을 다하는 것이 도처에 잠복해 있는 부조리를 근본적으로 수습하는 가장 효과적인 처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