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원제 ‘십자가의 길’(Kreuzweg)은 예수가 인간을 대신해 십자가를 지고 걸었던 수난의 길을 뜻한다. 이와 비슷한 희생을 자청한 영화 속 인물은 신앙심이 각별한 열네살 소녀 마리아(레아 반 아켄). 엄격한 가톨릭 집안에서 자란 마리아에게는 거의 모든 것이 죄악이다. 식탐을 부리는 것, 외모를 꾸미는 것, 함부로 웃는 것, 부모 말을 거역하는 것, 찬송가 이외의 음악을 듣는 것. 그 밖에 신앙의 힘이 밀어내야 할 악의 범주에는 호감 가는 남학생 크리스찬(모리츠 크나프)도 포함된다. 일상적 쾌락을 포기하면서까지 마리아가 이루려는 과업은 단 하나. 아픈 동생을 치료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신에게 바치는 것이다.
<거룩한 소녀 마리아>는 ‘십자가의 길’이라는 기도문 구성에 따라 14개의 장으로 나뉜다. 완결성을 갖춘 각 장은 롱테이크로 촬영된 한 신으로 이뤄져 있다. 절제된 연출 덕분에 판단이나 평가는 온전히 관객의 몫이다. 누군가가 소녀 마리아의 죄의식에서 믿음의 잔혹성을 포착할 때 또 다른 누군가는 성녀 마리아의 절절한 신앙 간증을 새겨들을지 모른다. 각기 다른 시선들이 마주칠 법한 지점은 따로 있다. 죽음을 앞두고 외로움을 호소하는 소녀의 침상. 신앙심을 통해 어머니의 사랑과 인정을 갈구해온 소녀의 모습이 우울한 성장 드라마를 떠올리게 한다. 결국 마리아의 정성은 기적을 낳지만 기적에 이어 진정한 구원이 찾아왔는지는 의문이다. 믿음에서 출발한 영화는 성장의 좌절과 함께 불길한 질문을 던지며 연민에 가득 찬 답으로 끝을 맺는다. 제64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 최우수각본상 수상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