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나 터너는 1940년대, 전쟁 중에 가장 인기 있던 ‘핀업걸’이었다. 이때는 관능미보다는 금발의 건강하고 예쁜 이미지가 더욱 강했다. 특히 클라크 게이블의 어린 파트너로 출연하며 만인의 상상 속 연인, 혹은 여동생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런 이미지가 반복됐다. 터너는 ‘예쁜 이미지’를 중단하고, 다른 역을 하고 싶었다. 제작자들의 한결같은 대답은 “이 영화만 우선 마치고”였다. 덕분에 돈은 제법 벌었지만, ‘배우’라기보다는 할리우드에 이용되는 인형 같았다. 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쓸 때 발표된 작품이 바로 필름누아르의 걸작인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감독 테이 가넷, 1946)이다.
필름누아르의 팜므파탈
전쟁 이후 할리우드에서 가장 인기 있던 배우들은 대개 필름누아르의 팜므파탈들이었다. <이중배상>(1944)의 바버라 스탠윅, <길다>(1946)의 리타 헤이워드, 그리고 라나 터너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세 배우 모두 남자들을 적극적으로 유혹하여, 결국 파탄에 빠뜨리는 범죄여성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이중배상>에서 스탠윅이 젖은 머리칼의 모습으로 이층에서 처음 등장할 때, <길다>에서 헤이워드가 긴 머리칼을 뒤로 젖히며 남자를 쳐다볼 때의 클로즈업 장면은 그대로 필름누아르의 명장면으로 남아 있다.
라나 터너의 등장도 그들만큼 극적이었다. 마치 여왕거미처럼 부랑자 프랭크(존 가필드)를 보자마자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프랭크의 발 앞으로 립스틱 통이 굴러온다(사실은 일부러 굴린 것). 그걸 주운 남자 앞에, 짧은 흰색 바지와 짧은 흰색 상의, 그리고 머리에 흰색 터번을 두른 여성이 문틀을 마치 액자처럼 두르고 서 있다. 그 순간 가필드는 터너의 포로가 된다. 립스틱을 돌려받은 그녀는 넋이 나간 남자 앞에서, 얼굴을 들고 보란 듯 입술에 립스틱을 다시 바른다. 그 동작이 대단히 성적인 것은 다들 알 것이다.
사실 터너는 게이블과 1930년대에 스크린 속 연인으로 유명했던 진 할로가 요절하는 바람에 그녀의 대타로 영화계에 입문할 수 있었다. 그래서 게이블과 협연도 하고, 염문도 뿌렸다(노이즈 마케팅 전략도 포함됐을 것). 그런데 행운은 기대만큼 일찍 오지 않았고, 거의 10년이 지난 뒤에야 터너는 할로에 맞먹는 스타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라나 터너는 눈부신 금발, 쏘아보는 강렬한 눈빛, 그리고 약간 두터운 입술로 자신의 관능미를 뽐냈다. 이런 이미지는 사실 1930년대에 진 할로가 각인한 것이다. 아마 할리우드가 늘 소유하고 싶어 하는 백인 여성의 이미지일 것이다. ‘금발의 폭탄’ 같은 이미지는 이후 마릴린 먼로, 킴 노박 등으로 계속 이어진다. 마틴 스코시즈가 <분노의 주먹>(1980)에서 주인공 로버트 드니로의 상대역인 캐시 모리아티에게 요구한 것도 바로 라나 터너와 같은 도발적인 금발 여성이었다. 스크린에서 남자들을 한눈에 사로잡을 것 같은 터너는 실제 삶에서도 마치 자동차를 바꾸듯, 남자들을 자주 바꾸며 살았다. 모두 8번 결혼했다.
돈과 살인사건
터너의 데뷔는 할리우드의 유명한 전설이다. 소위 길거리 캐스팅의 주인공이다. 16살 때 학교를 빼먹고 할리우드의 선셋대로 근처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먹다, 영화인의 눈에 띄어 오디션까지 본다. 진 할로가 죽은 지 6개월 정도 지났을 때였다. 머빈 르로이 감독은 터너에게서 할로의 이미지를 읽었고, 곧바로 캐스팅하여 <그들은 잊지 않을 것이다>(They Won’t Forget, 1937)에 출연시켰다. 이것이 터너의 데뷔작이다. 이때 터너는 이미 16살이라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성숙한 몸매를 갖고 있었다.
길거리 캐스팅의 장본인들이 대개 그렇듯, 터너의 성장환경도 좋지 않았다. 터너가 태어날 때 부친은 18살, 모친은 16살, 10대들이었다. 광부였던 부친은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도박에 손을 대던 중, 어느 날 목돈을 쥐었을 때 강도들에게 붙잡혀 불행하게 살해되고 말았다. 말하자면 성장기 때 터너는 ‘살인’이라는 사건을 경험했는데, 범죄영화에서의 불안한 눈빛은 이런 경험과 결코 무관치 않을 것 같다. 터너는 흥행배우가 된 덕분에 큰돈을 벌었지만, 부친의 불행에 따른 ‘돈과 살인’이라는 기억은 그녀의 삶에서 지울 수 없는 자국이 된다.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의 성공을 뒤로하고 30대가 됐을 때 터너의 인기도 약간 시들했는데, 빈센트 미넬리를 만나 <악당과 미녀>(The Bad and the Beautiful, 1952)에 출연하며 자신의 경력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었다. 영화의 반영성을 말할 때면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이 작품에서 터너는 어느 날 갑자기 스타가 되는 배우 역을 맡았다. 격정적인 성격에 알코올중독의 위태로운 삶, 그리고 약간 삶을 포기한 듯한 퇴폐적인 태도에서 터너의 매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흐트러져 있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터너의 모습에서, 많은 관객은 그녀의 실제 삶의 태도를 상상하기도 했다.
스타로서의 명성만큼이나 그녀에 대한 추문도 끊이지 않고 터졌다. 결혼하고 이혼하고, 또 남자들에게 돈만 뺏기고, 버림받고 하는 볼썽사나운 일이 반복될 때 벌어진 게 ‘스톰파나토 살인사건’이다. 터너의 애인인 조니 스톰파나토가 터너의 14살 딸이 찌른 칼에 맞아 살해된 것이다. 스톰파나토는 마피아인데, 10대 소녀의 칼에 찔려 죽은 게 의문투성이였지만, 재판 결과는 딸의 정당방위였다. 자주 싸웠던 두 연인은 그날도 심한 말다툼을 벌였고, 딸이 보기엔 엄마가 죽을 것 같아, 칼을 들고 덤볐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보통 배우는 경력이 끝난다. 스타는 갱스터와 연인 사이였고, 또 딸은 칼을 휘둘렸으니, 라나 터너의 이름에선 불쾌감을 느낄 것 같다. 그 딸은 또 터너의 새 남편들과도 확인되지 않는 추문을 퍼뜨리기도 했다. 이런 모든 사적인 배경을 영화 캐릭터의 특성으로 이용한 게, 더글러스 서크의 멜로드라마 걸작인 <슬픔은 그대 가슴에>(1959)이다. 터너는 실제의 그녀처럼 여기서 딸을 키우는 싱글맘에, 스타로의 꿈을 키우는 억척 여성으로 나온다. 그 딸도 실제의 딸처럼 10대가 되자, 엄마의 애인들과 비밀스런 관계를 만들고, 사사건건 엄마와 부딪친다. 미국 사회에서 여성이 경력을 쌓아가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잘 보여준 이 여성영화의 성공을 통해 터너는 모든 추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라나 터너는 실제에서도, 스크린에서도 스캔들을 일으키는 스타였다. 남달랐다면 두개의 삶이 영화로 종합된 점이다. 실제의 스캔들을 숨기기보다는 스크린으로 끌어와 자신의 캐릭터를 더욱 선명하게 만들었다. 40년대의 정말 못된 여성으로 한명만 고르라면 많은 영화인들이 라나 터너를 꼽을 것 같다. 그래서 스코시즈도 <분노의 주먹>에서 라나 터너를 닮은 배우를 캐스팅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