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수많은 영화가 반 고흐의 삶을 소개해왔지만, 여전히 이야깃거리가 남은 걸 보니 그만큼 ‘영화적’인 삶을 산 예술가도 없지 않을까 싶다. 그런 와중에 도착한 <반 고흐: 위대한 유산>이 차별화를 위해 내세운 카드는 반 고흐의 조카, 빈센트 발렘 반 고흐다. 영화는 1879년, 화가로서 인생을 막 시작했던 반 고흐(바리 아츠마)의 여정과 1959년, 파리에서 반 고흐가 남겼던 그림들의 유일한 상속인으로 살았던 그의 조카이자 또 한명의 ‘반 고흐’, 빌렘(예로엔 크라베)의 삶을 교차하며 진행된다. 반 고흐의 삶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 그대로다. 핌 반 호브 감독은 새로운 ‘예술’을 꿈꾸며 광기에 휩싸인 삶을 살았던 그가 가족들에게 버림받고, 미술계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채 그림들을 완성해나갔던 삶의 여정을 관객의 예상범위 안에서, 그의 주요 작품들을 둘러싼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풀어나간다.
오히려 우리의 예상범위를 벗어나는 것은 우리가 알 리 없는 실존 인물, 빌렘의 삶에 부여된 ‘드라마’다. 테오의 아들로, 반 고흐가 죽던 해 태어난 그는 삼촌이 남긴 수백점의 그림들이 버겁기만 하다. 오랜 고민 끝에 ‘반 고흐의 조카’가 아닌 ‘빌렘’으로 살기 위해 그림들을 모두 팔기로 결심한 빌렘은 화상들을 만나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영화 속 두명의 빈센트의 삶은 70여년의 시간 차를 두고 같은 그림, 같은 장소, 같은 인물들을 경유하면서 교차한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빌렘(혹은 관객)에게 진정으로 반 고흐가 남겼던 ‘레거시’(legacy)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라고 제안한다. 그림을 재현해낸 영화의 화면도 인상적이지만, 두개의 이야기를 하나로 엮어내는 감독의 재능이 눈에 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