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용강성의 허름한 집, 파리한 얼굴의 여자가 목을 매는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귀임 할머니(이옥희)가 자살하려는 손녀 향옥(조안)을 발견해 가까스로 그녀의 목숨을 구한다. 할머니는 향옥에게 “한국에서 있었던 일은 다 잊어버려”라고 말한다. 하지만 할머니 자신도 위안부 시절의 기억 때문에 여전히 괴로워한다. <소리굽쇠>는 재중 위안부였던 귀임 할머니의 과거 회상과 향옥이 한국에서 겪은 사건을 씨실과 날실처럼 엮어가며 진행한다. “저는 한국이 좋습니다”라고 서툴게 말했던 향옥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위안부 문제를 다뤘다고 하면, <소리굽쇠>를 다큐멘터리라고 오해할지 모른다. <소리굽쇠>는 배우와 전 스탭의 재능기부로 만들어진 흔치 않은 극영화다. 그동안 다큐멘터리영화들이 위안부의 역사를 진술하고 기록하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면 <소리굽쇠>는 위안부 할머니의 트라우마를 극적으로 생생하게 재현하고 향옥이라는 인물을 통해 위안부 다음 세대로 이야기의 범위를 넓혀나가는 데 중점을 둔다. 특히 향옥과 원폭 피해자의 아들 덕수(김민상)의 만남과 결혼, 임신 과정에서 그려지는 소소하고 일상적인 풍경들은 위안부나 전쟁 희생자 이야기가 관객과 멀리 떨어진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하지만 향옥과 할머니 각자의 이야기가 서로 소리굽쇠처럼 공명하며 위안부 문제를 젊은 세대까지 확장했냐는 질문에는 머뭇거리게 된다. 향옥이 한국에서 겪는 일은 위안부 문제보다는 한국과 중국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조선족이라는 정체성과 관련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