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전영객잔]
[신 전영객잔] 정념의 심연 앞에서
2014-11-06
글 : 허문영 (영화평론가)
켄 로치의 <지미스 홀>, 사건 아닌 사적 술회가 안기는 내밀한 감각
<지미스 홀>

1.

동시대의 많은 영화인들이 무한한 존경을 보여왔다 해도, 켄 로치는 후대의 영화사에서 많은 페이지를 차지하진 않을 것이다. 그의 인물들은 투박하고 친밀하고 때로 아름다웠지만 그들의 육체성은 대개 증언자 역할 뒤로 물러났고, 화면에는 간혹 아득한 생기가 번져나왔지만 사건의 강도를 넘어서지 못했으며, 명료하고 선형적인 이야기는 종종 멜로드라마적 관습에 의존했다. 켄 로치가 원한 것도 그것이었을 것이다. 로치는 자신의 영화가 하나의 예술품이 아니라, 증언의 영화, 교육의 영화, 개입의 영화가 되기를 원했다. 이 강고한 사회주의자는 이른바 ‘문화에로의 전환’(cultural turn)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고 쾌락의 선이나 숭고의 미 대신 해방의 정치를 믿었으며 자신의 영화가 미학적 소우주가 아니라 하나의 정치적 사건이기를 그리고 해방의 칼이기를 소망했다.

그렇다 해도 오늘의 유럽 지식인 일반이 이 불굴의 노(老)전사에게 지닌 부채감이나 콤플렉스만이 그에 대한 비평적 존중을 낳은 건 아닐 것이다. 켄 로치는 선동하지 않고 설득하려 했으며(그의 조국 영국에선 선동가로 불리기도 했지만), 하층민의 활력과 투쟁을 옹호했지만 어떤 집단주의도 거부했고(민족주의뿐만 아니라 프롤레타리아 집단주의까지), 어느 경우에도 살아 있는 인간의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는 끝내 유머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정의의 언명만큼이나 음악의 활력을 사랑했던 것 같다. 그는 자신의 영화가 칼이면서 노래이기를 원했던 것 같다.

1936년생인 켄 로치는 이제 긴 싸움의 여정에서 마지막 시기에 이르렀다. <지미스 홀>이 그의 마지막 극영화가 될지 아닐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이 영화는 어떤 망설임, 흔들림의 틈새가 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흔든다. 대부분의 로치 영화에는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문제삼는 비판론이 아니라면 평론이 얼쩡거릴 필요가 없다. 그의 영화만큼 인물과 사건이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말을 건네는 영화는 드문 까닭이다. 그 직접성의 충격이 요청하는 건 영화평론이 아니라 정치토론이다. 사건과 증언을 뒤로한 채 작정하고 이야기꾼의 태도로 만든 드라마들, 예컨대 <루킹 포 에릭>(2009), <앤젤스 셰어: 천사를 위한 위스키>(2012) 같은 영화들 역시 평론을 머쓱하게 만든다. 이 사랑스럽고 능청맞은 이야기들에 무슨 논평을 더할 것인가.

하지만 <지미스 홀>은 보고 나서 무언가 말을 나누고 싶게 만든다. 이 영화가 특별히 훌륭한 영화여서라기보다 보고 난 뒤 강하진 않지만 오랜 여운이 남기 때문인 것 같다. 더할 나위 없이 잔혹한 내전과 좌우의 상호살육을 체험한 우리에게 1930년대 아일랜드의 내전이 배경인 이 영화의 사건들이 특별히 충격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미스 홀>은 내게 <케스>(1969)와 함께 켄 로치의 가장 사적인 영화처럼 느껴진다. 무엇보다 한 장면이 그렇게 느끼도록 한다.

2.

어둠이 내릴 무렵, 마을회관에 한때 연인이었던 두 남녀, 지미와 우나가 들어선다. 체포를 피해 미국으로 떠난 남자는 1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고, 여인은 다른 남자와 결혼해 두 아이를 둔 엄마가 되었다. 여인은 남자를 뒤돌아 서 있게 한 다음, 남자가 선물한 하늘하늘한 드레스를 입고 나타난다. 맑은 달빛이 그녀의 모습을 비춘다. 두 사람은 포옹하다 춤추기 시작한다. 남자가 다시 추방될 날이 멀지 않았으며, 그들은 그것을 예감하고 있을 것이다. 둘은 춤추다 포옹하고 다시 춤춘다.

영화를 보지 않고 설명만 듣는다면 이 장면은 더없이 애처롭고 아름다울 것이라고 짐작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켄 로치는 그렇게 찍지 않았다. 어딘가 심심하고 허전하다. 그렇게 보이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이 장면이 놓인 자리가 이상하다. 감정이입이 목적이라면 누구라도 이 장면이 놓여야 할 더 좋은 위치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앞뒤의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아일랜드 공화군(IRA) 급진파인 남자 지미 그랄튼은 10년 만에 귀향한 뒤 교구 신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마을회관을 다시 열어 젊은이들의 정신적 지도자로 돌아왔고 부당하게 축출된 한 소작농의 땅 회복을 위해 고심 끝에 다시 정치 행동에 나선다. 이 후자의 결단은 모두 예상했듯 교회-지주-공권력이 연합한 IRA 온건파의 탄압을 불러온다. 이 불행한 혁명가는 또다시 자신의 땅으로부터 추방될 것이다.

감정 고조를 위해서라면 마을회관에서의 포옹 장면은 추방 직전의 지점에 놓이는 게 맞을 것이다. 아니면 소작농 문제로 격론이 벌어질 때 우나가 슬픈 눈으로 침묵하던 장면 다음에 놓이는 게 맞을 것이다. 결합은커녕 이젠 사랑하는 사람을 볼 기회조차 앗아버릴 가혹한 그러나 정의로운 선택 다음의 포옹과 춤은 고통스럽고 아름다웠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그 장면이 놓인 자리는 소작농 사건이 일어나기 전, 지미 일행이 극장에서 교황 특사 방문에 관한 뉴스릴을 보고 나온 뒤다. 포옹 장면은 사건 전개에는 별다른 기능을 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 자리에 놓여도 무방하다. 그런데 켄 로치는 작심한 듯 사건 전개가 가장 완만한 지점에, 전후 장면의 감정적 흐름과도 관계없는 자리에 그 장면을 배치했다.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비련의 정조가 이 영화의 정치적 메시지를 압도해선 안 된다고 믿었던 것일까. 그랬다면 이 장면을 굳이 삽입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장면이 주의를 끄는 또 다른 점은 음악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낮은 톤의 배경음악이 시퀀스 중반부터 흐르기는 한다. 그런데 이들은 지금 느리지만 리드미컬한 왈츠를 추고 있고 들릴 듯 말 듯한 배경음악은 춤의 리듬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 지금 그들은 음악 없이 리듬을 타려 한다. 신부와 경찰의 감시를 벗어나 마음껏 음악을 듣고 춤추기 위해 만든 마을회관에서 그들은 지금 음악 없이 춤추고 있다. 여기서 음악은 이중적으로 부재하다. 먼저, 슬픈 춤의 맥박을 이끌고 감정을 고조시키는 배경음악이 없다. 이건 감독의 선택이다. 이 선택의 이유는 이 장면 배치의 이유와 같은 것일까.

인물들의 선택도 있다. 남녀는 곁에 축음기가 있지만 틀지 않는다. 아마 틀 수 없었을 것이다. 자유로운 춤과 음악은 교회가 금지하고 있지만, 두 남녀의 춤은 정확히 말하면 그 춤에 담긴 육체적 욕망은 자신들의 도덕관 혹은 친구와 공동체에 대한 예의가 금지하기 때문일 것이다. 해방의 정치도 이 두 번째 금지의 속박을 풀지는 못할 것이다. 켄 로치가 춤의 리듬을 이끌 감정적 배경음악을 선택하지 않은 건 이 이중의 속박을 드러내기 위해서였을까.

이 장면의 마지막 궁금증은 이것이다. 그들은 왜 키스조차 하지 않을까. 우나는 자신의 등을 움켜쥔 지미의 손을 떼놓으며 손을 맞잡고 춤추기 시작한다. 그토록 그리워한 평생의 연인들이 왜 춤이라는 양식으로밖에는 서로에 대한 갈망을 표현하지 않는 것일까. 이건 실은 켄 로치에게 묻고 싶은 것이다. 왜 그들에게 한번의 키스, 혹은 한번의 정사조차 허용하지 않은 것일까. 그는 무엇을 피하려고 했던 것일까.

켄 로치는 정념의 장면을 찍고도 정념의 분출을 외면함으로써 그 장면을 잉여적인 것으로 만든 것처럼 보인다. 그는 로맨스를 기피하거나 성적 묘사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아니다. 예컨대 <다정한 입맞춤>(2004)은 과감한 섹스 묘사를 감행하는 연애담이다. <지미스 홀>에서도 지미와 우나의 사랑은 단순한 여담이 아니다. 마을회관에서 한 소녀가 모드 곤에게 바치는 예이츠의 시 <방랑자 잉거스의 노래>를 낭송하자, 한 교사는 “예이츠의 시에 모드 곤이 끼친 영향도 생각해보자”고 말한다. 유약하고 섬세한 시인과 강건한 혁명가 여성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상기시키는 이 장면도 여담에 불과할까. 아이들이 배우고 엔딩 크레딧에 흘러나오는 아일랜드 민요(“바라고 바라고 헛되이 바라도다/ 내 죽은 심장 다시 뛰기를”로 시작하는 연인의 이별 노래)도 그러할까.

나는 켄 로치가 망설이고 있다고 느낀다. 그 망설임은 한 순교자적 영웅의 도덕적 순수와 오점 사이의 망설임일 뿐일까.

3.

지미의 홀. 배우고 듣고 웃는, 무엇보다 노래하고 춤추는 곳. 지미의 표현에 따르면 ‘상상력과 즐거운 마음’의 장소. 그러나 교육을 관할하는 교구 신부가 금지한 곳. 지미는 10년 전에 이 회관을 건설하고 이곳을 거점으로 정치 활동을 벌이다 경찰의 체포령을 받았다. 그리고 다시 돌아왔다. 그는 “이젠 조용히 살고 싶다”고 말했지만 “신부와 경찰의 잔소리를 듣지 않고 춤출 수 있는 회관을 다시 열어달라”는 젊은이들의 요청에 결국 응답한다.

이곳은 묘한 곳이다. 사람들은 여기서 춤추며 노래하고, 목공과 권투를 배우고, 시를 낭송하고 노래를 배우며, 억압의 질서에 저항한다. 다른 놀이를 시작하는 순간 결국 다른 정치에 이른다. 이 점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교구 신부다. 물론 지미도 알고 있다. 지미에게 이곳은 한 가지 의미가 더 있다. 춤의 이름으로 금지된 연인의 몸에 닿을 수 있는 곳. 어쩌면 춤이라는 양식의 규칙을 넘어 정념의 분출을 방임하는 밀회의 장소가 될 수도 있었던 곳. 영화 안에서는 지미에게만 주어진 가능성이지만, 회관이 지속된다면 그 가능성은 누구에게도 열려 있다.

한쪽 끝에는 금지된 경계를 넘어설듯 꿈틀거리는 무정형의 정념이 있고, 다른 한쪽 끝에는 억압의 질서에 부딪히며 활동하는 자유롭고도 엄격한 정신이 있다. 10년 전의 지미에게 회관은 후자에만 열려 있었지만 지금은 전자에도 열려 있다. 이 생각을 더 밀고 간다면 앞서 말한 포옹과 춤의 장면이 놓인 자리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해볼 수 있다. 시퀀스의 배열은 종종 숨겨진 인과관계를 암시한다. 춤과 포옹 장면 이후에 소작농 사건이 벌어지고 지미 일파는 격론 끝에 마을회관 파괴와 지미의 재추방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은 참여 결정을 내린다. 요컨대 ‘춤과 포옹’-‘영원한 이별을 초래할 결정’의 순서다. 순서가 바뀌었다면, 즉 ‘결정’-‘포옹’이었다면 대의를 선택한 혁명가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라는 표준적 서사의 선택이 되었을 것이고 우리는 안전한 슬픔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포옹’-‘결정’의 순서는 ‘포옹’을 은밀한 원인의 자리에 불러들여 전혀 다른 인과관계의 가능성을 생각하게 만든다. 정념의 폭발 가능성을 확인한 다음 지미는 마을회관 파괴와 자기 추방의 결정을 내린다는 것이다. 지미의 결정은 대의의 선택이면서 동시에 정념의 봉인이라는 사적 선택이다. 이건 과도한 해석일까. 그렇다면 지미는 왜 격론이 벌어질 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까. 그는 진심을 말할 수 없었던 게 아닐까.

켄 로치는 얼핏 보기엔 서사를 낭비하듯, ‘마을회관 건립-교회(지주, 경찰)와 대립하는 정치 문화 공동체 결성-소작농 사건에서 비롯된 정치적 충돌-주인공의 추방’이라는 10년 전의 사건 진행을 반복한다. 유일한 변화는 지미의 연인이 도덕적으로 금지된 존재가 되어 있다는 점이다. 사건의 반복은 지미의 홀의 성격을 은밀히 바꿔놓은 이 유일한 변화에 주목하기를 요청한다. 길고 험한 풍파를 겪고 침묵을 위해 돌아온 곳에 여전히 불의의 질서는 저항의 투신을 요구하고 있고, 정념은 위험한 심연을 이루었다. 그 앞에 선 노전사의 피로와 망설임. <지미스 홀>은 사건의 영화가 아니라 켄 로치의 사적 술회처럼 느껴진다.

지미의 회관은 이상한 곳이다. 그 장소에 대해 생각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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