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윌리엄 포크너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을 ‘실패한 시인’이라 칭했다. 그러면서 단편소설을 ‘시 다음으로 까다로운 형식’이라고 덧붙였다. 이 말은 단편소설을 비교적 열등한 것으로 치부하던 시각을 재고하게 만든다. 무리하게 덧대, 이 말을 영화에 대한 것으로 옮겨온대도 영 엉뚱한 소리만은 아닌 것 같다. 적절한 순간을 낚아채 긴 여운으로 바꿔놓는 단편영화들이 이를 증명한다.
제12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가 11월6일(목)부터 11일(화)까지 6일간 씨네큐브 광화문과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다. 경쟁부문에는 109개국 4215편이 출품돼 지난해에 이어 최다 출품작 수를 경신했다. 그중 37개국 66편의 영화가 경쟁부문에서 상영된다. 특별프로그램도 마련된다. 이름난 감독의 단편을 소개하는 ‘시네마 올드 앤 뉴’ 섹션에서는 알랭 레네의 <밤과 안개>, 웨스 앤더슨의 <호텔 슈발리에>, 테리 길리엄의 <홀리 패밀리> 등 서로 다른 온도의 작품이 이름을 올렸다. 멕시코의 숏쇼츠필름페스티벌과 연계해 마련된 멕시코 특별전에는 알폰소 쿠아론의 <세상의 종말을 위한 4중주>, 카를로스 레이가다스의 <프리즈너스> 등이 상영된다. 이자벨 위페르와 잔 모르가 주연한 <아, 사랑이란>,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주연의 <뒤에 달린 눈> 상영으로 영화제의 문을 연다. 상영작 중 경쟁작 몇편을 미리 살폈다.
기다림에 대한 두편의 영화가 있다. <마이크>의 기다림이 섬뜩하고 아프다면 <좋은 꿈 꿔>의 기다림은 지리멸렬하다. <마이크>에서 형은 이발하러 간 동생을 기다린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동생을 데리러 형이 미용실로 향하면서 극은 다른 국면을 맞는다. <좋은 꿈 꿔> 역시 형과 어린 동생의 이야기다. 두 형제의 아버지는 어려운 살림에도 늘 코가 삐뚤어질 때까지 술을 마셔대는 난봉꾼이다. 곯아떨어진 아버지를 수레에 싣고 집까지 데려오는 건 두 형제의 몫이다. 두 영화는 영원과도 같은 기다림을 보여주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음을 확인하게 한다.
<암탉>과 <멀고 먼 여정>은 대사 없이 진행되는 극영화다. <암탉>은 시적 영화의 계열에 닿아 있다. 폭압적인 아버지, 그로 인해 불안에 떠는 어머니 밑에서 자란 아이와 그들을 둘러싼 불모의 땅을 흑백 화면과 클로즈업을 활용한 인상적인 이미지로 표현한다. <멀고 먼 여정>은 대사 없이 이뤄지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대사를 중심으로 이어지는 극영화의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간다는 점이 독특하다. 신체의 일부분이 떨어져나가 자율운동을 벌이는 기상천외한 일을 겪게 된 한 남자의 미스터리를 코믹하게 그린다.
<더 리턴>과 <유령 열차>는 ‘돌이킬 수 없는 돌아옴’을 다루고 있다. <더 리턴>에서는 오랫동안 집을 떠났던 형이 돌아온다. 돈독하던 형제의 우애는 동생이 형의 비밀을 목격하면서 깨진다. <유령 열차>에서 두 형제의 관계는 처음부터 서먹하다. 이는 어릴 적 함께 놀던 친구 샘의 실종과 관련 있다. 형제가 샘이 실종된 장소를 다시 찾으면서 벌어지는 미스터리 스릴러다. 극영화가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애니메이션 한편이 눈에 띈다. <상처난 얼굴>은 고립된 등대를 지키는 노인과 그곳에 배치된 젊은이 로익의 이야기다. 실사로 착각할 정도로 정교하게 빚은 인형과 세트가 특징적이다. 극이 진행되는 동안 로익의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이 낮게 깔리는데, 그 덕에 애니메이션으로는 드물게 명상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