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용 감독은 꾸준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왔다. 독립장편영화 <고갈>(2008) 조감독과 <똥파리>(2008) 제작부를 거친 뒤 단편 <얼어붙은 땅>(2010)으로 칸국제영화제 시네파운데이션에 초청됐던 그는 이후 <밤벌레>(2012), <도시의 밤>(2012) 등을 만들며 ‘아이들’에 대한 관심을 이어왔다. 그의 첫 번째 장편 <거인>은 바로 그 지난 시간들을 결산하는 듯한 느낌의 영화다. 힘겨운 시간을 보내던 아이들은 이제 드디어 치유의 시간을 갖고자 한다. 지난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탕웨이의 남편’이기도 한 김태용 감독과 동명이인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시민평론가상과 올해의 배우상(최우식)을 수상하며 작품 그 자체로 더 각인된 것은 물론이다.
-<거인>은 거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알고 있다.
=나 역시 그룹홈에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그때 겪었던 일들이 주요한 모티브가 됐다. 처음에는 그를 둘러싼 인간 군상에 대해 그리고 싶었다가 영재(최우식)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한명을 오롯이 드러내면서 내가 느낀 감정을 진실되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동안 영화에서 줄곧 그려온 소외된 아이들에 대한 관심은 여전하다.
=무엇보다 성폭력 등 소재적인 측면에서 접근하지 않으려 했다. 또한 일련의 성장영화에서 볼 수 있는, 아이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고통에 순응하고 살아가는 모습도 거부하고 싶었다. 그것은 모두 어른들의 시선이다. 최대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서글픈 영악함마저 끌어안고 싶었다.
-혹시 참고한 성장영화들이 있나.
=다르덴 형제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들이다. 인물을 지켜보며 따라가는 호흡이라는 측면에서, 인위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그들의 시선이 좋았다. 한국영화 중에서는 변영주의 <발레교습소>(2004)와 노동석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2006)가 개봉 당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진정성 있는 성장영화들이라고 생각한다.
-최우식은 영화 속 영재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친구다. 그런 캐스팅은 어떤 의도였나.
=우식은 부유한 가정의 막내로 예쁨을 받으며 자란 친구다. 그래서 마음도 건강하다. 게다가 해외에서 살던 친구라 나와는 정반대의 삶을 살았다. 게다가 나보다 3살밖에 어리지 않아 현장에서 티격태격하는 일도 많았다. (웃음) 정말 나 같은 친구가 영재를 연기했다면 관객이 부담스러워했을 것이다.
-영화에서 “난 영재가, 너 말하는 것처럼 살았으면 좋겠어”라는 선생(박주희)의 대사가 좋더라.
=세상 사람들 모두 자기 말에 속아서 사는 경우가 많다. 나 또한 신부가 되려고 아등바등 산 적이 있는데, 과연 나는 내 말에 책임지고 살 수 있을까, 배운 대로 살 수 있을까, 내 말에 속지 말자, 몇번씩 생각하고 고민했다. 더이상 부모를 원망할 수 없는 나이가 돼가고 있고 다들 각자 자신을 책임지며 살고 있는데, 나 혼자 정신적으로 크지 못하고 그저 몸집만 ‘거인’처럼 우뚝 서 있다는 생각에 만든 영화다.
-그런 점에서 <거인>은 당신의 이전 단편들의 연장선이면서, 어떤 정리나 결산같은 의미가 드는 ‘성숙한’ 영화다. 스스로 어떤 ‘변화’라고 생각하나.
=시나리오 쓸 때는 완전히 분노하고 썼다. (웃음) 영재의 대사처럼 책임지는 어른이 아무도 없는 거다. 그 책임감이 중요했다. 스무살 때 <똥파리> 제작부였는데, 이번에 우정출연해주신 양익준 감독님이 어린 스탭들을 보면서 “<똥파리> 때 네가 저 또래였어” 그러시는 거다. (웃음) 나도 이제 점점 누군가를 책임져야 하는 어른이 돼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애초에 없었던 라스트신을 만들었다. 인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