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한국을 방문했던 로건 레먼은 ‘샤이 보이’라는 별명을 얻어갔다. 상대(정확히는 전현무 아나운서)의 무안한 칭찬과 짓궂은 장난에 얼굴이 새빨개져선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웃음만 흘렸던 소년은 그사이 어른이 되어 있었다. <퓨리> 홍보차 로건 레먼이 한국을 찾았다. 티 없이 맑은 얼굴과 크지 않은 몸집은 레먼을 여전히 10대 소년으로 오해하게 만들지만, 그의 눈빛과 연기와 태도엔 확실히 여유와 강단이 보태졌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으면서 역할의 변화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 같다. 이전보다 성숙하고, 깊이 있고, 복잡한 배역들이 들어오는데, 이젠 열여덟살 때 연기했던 순수한 캐릭터들을 연기하는 게 좀 지루해졌다.” 최근에서야, 정확히는 대런 애로노프스키의 <노아>와 데이비드 에이어의 <퓨리>에 이르러서야 “성숙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성인배우가 된 느낌이 든다”고도 했다. ‘퍼시 잭슨’의 그림자와 귀엽기만 한 남동생 이미지는 <노아>를 통해 싹 지웠다. 결핍감과 질투심과 원망으로 가득 찬 노아의 둘째아들 함은 로건 레먼의 성장을 확인하게 해준 캐릭터였다. 그리고 그는 <퓨리>로 다시 한번 자신이 좋은 배우로 무럭무럭 자라고 있음을 증명한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한 전차부대 이야기를 그린 <퓨리>에서 레먼은 부대의 막내 노먼으로 출연한다. 노먼은 행정병으로 지원했으나 전차부대로 떨어진 입대 8주차의 신병. 총을 쏜 적도 없고 사람을 죽여본 적도 없는 노먼은 워 대디(브래드 피트)와 부대원들을 만나 차츰 ‘머신’으로 변해간다.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이 영화는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경우는 매우 드물다. 캐스팅이 되기까지 그 기간이 꽤 길었는데, 영화에 너무나 출연하고 싶어 초조한 마음에 데이비드 에이어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출연시켜주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 만약 캐스팅이 안 된다면 한동안 다른 작품엔 출연하지 않겠다’고 얘기했을 정도다.” 결국 레먼의 절실함이 통했다. 하지만 캐스팅의 기쁨은 “10초”밖에 지속되지 않았다고 한다. “덜컥 캐스팅이 되고 나자 부담감과 책임감으로 두 어깨가 무거워졌다.” 브래드 피트가 제작자이자 배우로 참여하는 데다 샤이아 러버프, 마이클 페나, 존 번탈처럼 한 인상(!)하는 연기파 배우들과 넉달 반 동안 동고동락해야 했으니 꽤 긴장됐을 법도 했을 것이다.
“촬영은 전혀 재밌지(fun) 않았다. 이 작품을 재밌게 찍었다면 오히려 영화의 진정성을 훼손하는 일이 됐을 거다.” 좁은 탱크를 “제2의 집” 삼아 연기해야 했고, 브래드 피트에게 연이어 따귀를 얻어맞는 장면을 찍어야 했고, 남자배우들에 둘러싸여 연기해야 했다(“난 여자들이 있는 현장이 좋다”). 재미있는 현장도 아니었고, 편한 현장은 더더욱 아니었다. “촬영 전 만난 군인들이 해준 말이 있다. ‘정말 싫은 것도 받아들여라.’(Embrace the suck) 그 말을 귀담아 들었고, 노먼의 상황에 몰입했다.” 실제로 레먼을 한번이라도 만나본 사람은 ‘노력’이라든지 ‘몰입’이라든지 하는 단어가 그저 쉽게 가져다 쓰는 수식어가 아님을 알 것이다. 놀랍게도 그를 만난 모든 이가 허례허식 없고 진지한 이 청년을 칭찬했다. 연기에 임하는 태도나 작품을 선택하는 자세 역시 진지하기 그지없다. “반복하는 건 재미없다. 이전에 하지 않은 새로운 배역에 도전하고 싶다.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의 폭이 좁은 편이다. 아직은 정해진 차기작이 없다.” 그의 다음 정거장은 아직 알 수 없지만, 분명 그는 새로운 곳으로 도약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