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과 거짓말은 위험한 공생관계다. 비밀은 불신을 먹고 자라고 거짓말은 불안 속에 번식한다. <못>은 비밀과 거짓말로 묶이고 얽힌 네 친구가 서로를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 과정을 무거운 걸음으로 따라가는 영화다. 현명(호효훈), 성필(강성봉), 두용(이바울), 건우(변준석)는 자신들의 아지트인 연못에서 10대의 마지막 겨울밤을 자축한다. 성필의 여동생 경미(김원희)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그날 밤 잠시 마을을 다녀오겠다던 건우와 경미가 사라지고 잠시 후 경미는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다. 그리고 4년 뒤, 고향으로 돌아온 현명 앞에 잊고 싶었던 그날의 진실들이 차례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야기, 전개, 캐릭터마저 무난하다. 아니, 익숙하다. 비밀과 거짓말, 소년과 불안이라는 키워드만 묶어놓아도 윤곽이 나오고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못>은 숨겨진 진실을 통해 반전을 꾀하는 종류의 영화는 아니다. 감독은 소년들이 서로를 의심하고 무너져가는 과정의 긴장감을 일정 부분 포기하고 대신 인물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려 애쓴다. 카메라는 느리고 인물들은 정적이고 화면은 깊다.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의 촬영, 조명팀이 빚어낸 장면들은 종종 시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인물의 감정이 격돌하는 과정마저 차분하게 응시하니 때론 지루하게 다가온다. 네 남자배우들의 연기도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되 화학반응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돌이킬 수 없는 결말을 향해 직진하는 뚝심이 나쁘진 않지만 이를 받쳐줄 만한 흡입력 있는 장치가 보이지 않는 게 못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