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왕>은 바로 세상의 중심에서 패션을 외치는 한 왕따 소년의 이야기다. ‘간지’에 눈뜬 후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가 되기로 결심한 기안고 ‘빵셔틀’ 우기명(주원)의 인생을 건 도전과 라이벌 원호(안재현)와의 런웨이 배틀, 그리고 그의 곁에서 언제나 이름을 불러주는 전교 1등 은진(설리)은 만화가 아니라 생생한 우리 주변의 존재가 된다. <패션왕>은 누적 조회수 5억뷰, 26주간 네이버 웹툰 1위, 평균 회당 조회수 440만건, 기록만으로도 화제를 모은 동명 웹툰을 스크린으로 옮겼다. 형형색색 캐릭터들의 매력과 패션의 향연, 그리고 각종 패러디 열풍과 신조어를 낳았던 원작이 어떻게 실사로 옮겨질지 팬들의 기대가 컸다. <선물>(2001)로 데뷔한 이후 로맨틱 코미디 <작업의 정석>(2005), 호러영화 <두사람이다>(2007), 그리고 중국과의 합작영화 <이별계약>(2013) 등 다양한 행보를 보여온 오기환 감독은 “영화를 통해 아이들의 이름을 찾아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개봉하고 첫 주말을 통과한 기분이 어떤가? 평가들과 반응은 접해봤나.
=웹툰 팬들의 평가는 안 좋고, 영화부터 접한 관객의 평가는 좋다. (웃음) 이미 단단한 팬덤이 형성된 원작을 영화화할 때의 어쩔 수 없는 현상 같은데, 나로서는 원작으로부터 살짝 거리를 둬도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2시간 안팎의 상영시간으로 기승전결의 흐름을 짜야 하는 감독의 처지를 좀더 이해해주길 바라는 입장이다. (웃음)
-맨 처음 웹툰을 접했을 때 느낌이 어땠나? 영화로 옮기는 데 있어서 주안점은 뭐였는지. 기본 골격은 무협지의 구조를 가져온 것 같다. 스승(김성오)이 제자 우기명을 통해 자신의 옛 꿈을 이루고, 그들이 다다르고자 하는 ‘절대간지’의 세계는 궁극의 비급처럼 생각된다.
=일단 웹툰의 정서를 물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는 당연히 아니고. (웃음) 그래도 가르치는 학생들이나 주변의 아이들을 좀 아니까 특별히 ‘격차’가 느껴지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세대를 초월해 보편적으로 통할 만한 플롯의 ‘척추’를 찾는 게 가장 힘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연출자의 숙명 아닌가. 힘들어도 애써봐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무협지와 같은 수련과 상승, 그리고 몰락과 재기 같은 흐름을 탔다. 하지만 절대간지는 어떤 실체가 있는 것이라기보다 찾아가서 닿아야 하는 어떤 것이다. 그리고 웹툰을 시각화하는 데서 오는 트러블은 별로 없었는데, 그 척추를 찾는 데서 오는 농도와 밀도에 대한 스트레스가 컸다.
-그럼에도 무엇보다 ‘의상’에 대한 부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을 것 같다.
=가장 큰 문제는 비용이었다. 좋아 보이는 건 역시 비싸더라. (웃음) 다 돈이었다. 진짜 제대로 차려입고 등장하면 그것만으로도 몇 백만원이 들어간다. 게다가 다시 입고 나올 수 없으니 한번 입고는 끝이다. 더불어 균형감이 중요했다. 어쨌건 전문 모델이 아니라 고교생이기에 적당한 화려함을 추구해야 했다. 그렇게 날마다 의상 체크하는 것이 정말 큰 스트레스였다. 의상 담당 연출부는 촬영현장이 아니라 거의 의상실에 상주해야 했다. 원칙적으로 한 장면, 한 인물에 맞는 의상을 직접 디자인한 것 3벌, 협찬받은 것 3벌, 그리고 혹시나 모르니 그냥 개인이 가지고 있는 3벌, 그렇게 총 9벌을 준비하고 들어갔다. 처음에는 ‘고를 옷이 없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엄청나게 불안해하고 헤맸지만 그렇게 쌓이고 쌓여 중반 이후 선택할 수 있는 의상 후보들이 100벌이 넘어가니까 좀 안심이 됐다. <명량>의 이순신 장군은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라고 했다는데, 나에게는 아직 100벌의 의상이 남아 있습니다, 하는 기분이었다. (웃음) 그처럼 의상에 대한 부분만큼은 정말 많은 경험을 했다. 강형철 감독이 <타짜: 신의 손> 인터뷰를 하면서 “앞으로 <타짜> 시리즈 만들 사람은 고생할 것”이라고 했는데, 누군가가 또 패션에 관한 영화를 한다면 나를 찾아와서 조언을 구하면 좋을 것이다. (웃음)
-더불어 어떤 특정 세대에 집중된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사전 모니터 작업을 게을리할 수 없었을 것 같다.
=영화를 완성한 다음 최종 상영시간이 119분이었는데, 중•고등학생 모니터 시사를 가져보니 싫어하는 장면들이 몇 군데 있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감안해 편집하고 보니 최종적으로 114분이 됐다. 큰 트러블이라고 부를 수준이 아니긴 했는데, 그 5분도 사실은 영화에서 굉장히 큰 부분이다. 그런 것들을 사전에 체크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웹툰 팬들의 마음에 들게 만들까, 그게 아니라 웹툰에 대해 전혀 모르는 일반 관객에게 초점을 둘까, 그렇게 노선이 애매할 때는 보다 사전작업을 치밀하게 하는 것이 불안감을 해소하는 방법인데, 그러지 못한 아쉬움이 조금 있다.
-그 5분은 대략 어떤 내용인가.
=감정의 신파가 큰 5분이다. 그 5분이 빠지면서 눈물샘을 자극하는 요소는 좀 얕아졌지만, 뭐 <패션왕>이 울게 만드는 영화는 아니니까 과감하게 덜어냈다. 어둡거나 무거운 요소를 최대한 줄이면서 거슬리는 것 없이 이야기가 쫄깃쫄깃하게 진행되면 다행이라 생각했다.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에서의 무게추 혹은 척추가 중요했다.
-줄곧 이야기하는 플롯의 ‘척추’라는 게 뭔가? 아마도 기명의 흥망성쇠를 통해 ‘왕따’라는 학원 문제를 건네는 것 같다.
=<패션왕>은 패션을 통해 재미를 추구하는 한 축과, ‘무기명’이 ‘우기명’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찾는 과정이 또 다른 한축이다. 후자를 통해 ‘왕따’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었다. 그들은 과연 자기의 이름을 갖고 있을까. 주변에서 왕따당하는 아이들의 이름을 적극적으로 불러주고 말을 건넸다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대화라는 것도 먼저 이름을 호명해야 성립된다. 내가 먼저 “기명아!”라고 불러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야이, 새끼야!”가 된 것이다. 말하자면 왕따는 이름이 없는 아이들이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줘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은진이 계속 우기명의 이름을 부르고, 기명이 위기에 처했을 때 제대로 도와주지 못한 창주(신주환)도 기어이 우기명의 이름표를 주워와 건넨다. 바로 그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그것이 패션과 어떻게 만난다고 봤나.
=지금 우리 사회는 다들 너무 이름 없는 삶을 사는 것 같다. 저마다 이름이 불리는 세상을 살아야 한다. 나 또한 드디어 인내심에 한계가 온 것 같다. 그러니까 우기명 같은 친구들도 리액션만 하지 말고 어떤 식으로든 적극적으로 액션을 해야 한다. 패션은 바로 그 액션의 촉매다. 패션이 아니라도 하다못해 요리든 마술이든 제도화된 교육을 넘어 자기만의 우회로를 찾아야 한다. 표면으로는 코미디를 추구했다면, 그 내면으로는 기명처럼 자신의 길을 적극적으로 찾아보라는 제안을 하고 싶었다.
-그런 기명의 모습에 감독 자신의 지난날도 어느 정도 겹쳐 있나.
=그냥 내가 기명이라고 생각하고 찍었다. (웃음) 물론 많은 사람들이 기명의 처지에 공감하며 영화를 볼 것이다. 나 또한 없이 자란 편이기에, 없는 자들에 대한 연대의식 같은 게 좀 있다. 개인적으로 영화아카데미를 다니던 중 집이 쫄딱 망해서 다시 회사 생활을 4년 정도 했다. 당시 허진호 감독 같은 영화아카데미 동기들을 보면, 멀쩡한 대기업을 다니다가 영화의 꿈을 위해 다 포기하고 뒤늦게 삶의 행로를 바꾼 경우가 대부분인데, 나는 영화감독의 꿈을 키우다 다시 눈물을 머금고 회사로 돌아갔으니 정반대였던 것이다. (웃음) 뭔가 이런 시스템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그때 좀 깊이 했던 것 같다.
-기명의 왕따 시절 영상이 저마다의 휴대폰으로 퍼져나갈 때의 모습이 요즘의 끔찍한 현실과 겹친다.
=그 영상은 연출부와 배우들이 알아서 찍고 난 컨펌만 했다. 그건 내 연출 밖의 현실이라고 생각했다. 저마다 스마트폰으로 찍어온 영상을 조그맣게 볼 때는 “좀더 센 거 없어?” 그랬는데(웃음) 나중에 편집하면서 막상 큰 스크린으로 보니 너무 충격적이더라. 그리고 그게 실제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굳이 보여줘야 하나 말아야 하는 고민까지 했는데, 어쩌면 거기에 뜻하지 않게 이 영화의 진정성이 담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그 영상을 나중에는 기명의 어머니(이일화)까지 함께 보게 된다.
=어머니까지 그 영상을 보다가 기명의 얼굴과 마주친다. 영상과 두 모자의 얼굴까지 그 3개가 한데 만나는 건데, 모두의 맨 얼굴 같은 현실이라는 점에서 내게는 꼭 필요한 장면이었다. 처음부터 두 배우에게도 “이 장면이 제대로 안 나오면 2, 3일 동안 계속 찍을 수도 있습니다” 하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웃음) 그런데 다들 연기를 잘해서 세 테이크 만에 끝냈다. 그 순간의 ‘케미’가 장난 아니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실제로 그런 일을 겪는 아이와 부모들이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에 그 이면이 보여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작업의 정석>과 <두사람이다>, 그리고 중화권 배우들과 함께한 <이별계약>까지 매번 큰 격차가 느껴지는 행보의 작업들을 해왔다. <패션왕>은 거기에 어떤 의미를 더할 수 있을까.
=나로서는 전혀 ‘의외’의 작업이 아니었다. 오히려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확신이 들게 한 영화였다. 언제나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고 싶고, 새로운 환경에서 작업해보고 싶다. 그런 점에서 <패션왕>은 좋은 기회였고 즐거운 작업이었다. 그런 식으로 연출자의 외연을 계속 더 넓혀나가고 싶다. 한 우물만 파면서 진득한 장인의 길을 추구하는 것도 좋지만, 나는 좀 다른 쪽이다. 농담처럼 얘기하자면 밥도 늘 같은 식당에만 가서 먹는 사람 싫어하고, 맛있었던 치즈라도 다음에는 꼭 다른 치즈를 맛보고 싶어 한다. (웃음) 감독으로서 새로운 걸 하고 싶어 하고 외연을 확장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살아왔던 것 같다. 앞으로도 표류하면 안 되고, 부유하는 것도 싫고, 유영하는 감독의 길을 걷고 싶다.
오기환 감독은 인터뷰 내내 집착이라 할 정도로 반복적으로 ‘이름’에 대해 얘기했다. 거기에 담긴 자신의 진심을 봐주길 바랐다. “여러 종교에서 기도를 할 때도 꼭 신도의 이름을 호명한다. 아이 이름 하나 짓는 데도 얼마나 많은 공을 들이나. 그만큼 이름은 중요하다. 난 지금도 아내와 아이의 이름을 꼭 부른 다음 ‘사랑해’ 하고 말한다. (웃음) 그래서 원작의 기안 작가가 지은, 이름을 기입한다는 의미의 ‘기명’이라는 이름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러면서 “여기까지 내 얘기에 동의가 된다면, 다들 소리내서 자기 이름을 불러보라고도 말하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호명’으로 시작하고 끝나는 <패션왕>을 두고 “요즘 말로 ‘힘쇼’(힘내십쇼) 하는 영화였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의 마지막 바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