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우기가 뿌려대는 빗줄기 속에 놓여진 평창동의 버스 정류장에서, 늦가을 차가운 새벽 바람을 맞고 있는 성북동의 버스 정류장에서, 자신의 상처를 감당하기 버거워 훌쩍 사라져버리는 어린 소녀를 기다렸다. 그렇게 나도 모르게 재섭이 되어가고 있었다….”
김태우 - ‘컨셉북 <버스, 정류장> 중’
남자가 운다. 꺽꺽 소리내어 서럽게 운다. 열일곱 어린 소녀 앞에서 엄마품에 안긴 소년처럼 서럽게도 울어댄다. “어떻게 울어야지, 이런 느낌을 살려서 울어야지 하는 생각도 없었어요.” 어쩌면 꿍 하니 웅크리고 살아왔던 초라한 서른둘 인생을 위한 한 바탕, 어쩌면 찰 것도 빌 것도 없던 마음에 큰 구멍 하나를 내버린 소녀를 향한 한 바탕. 차곡차곡 쌓아왔던 감정들이 분출구를 찾은 순간, 재섭도 김태우도 아무런 계산없이 그렇게 울고 있었다.
우리가 오랫동안 김태우를 알아왔다고 자부해도, 그의 연기를 드라마나 영화에서 수차례 봐왔다고 방심해도, <버스, 정류장>의 김태우는 다르다. “<…JSA>처럼 딴 생각 안 하고 끊임없이 사건과 인물을 따라가는 식으로 즐겨야하는 영화도 있을 거고, 영화를 보면서 내내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영화도 있다고 생각해요. <버스, 정류장>은 후자에 가깝고 저는 그런 영화가 좋더라고요.” 결국 뚜렷하고 단선적인 캐릭터 설정으로 해결될 영화가 아니었기 때문에, 역할에 접근하는 방식 또한 다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저는 인물설정을 완벽히 해버리는 스타일이었어요. 시나리오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고 또 읽고, 한 인물을 온전히 만들어버리는 방식이랄까. 하지만 재섭은 그냥 받아들였고, 공감했고, 설정없이 조금씩 묻어나길 바랐어요.” <…JSA>와의 비교점은 그래서 더욱 명확하게 나뉜다. 소심하고 우유뷰단한 남한 병사 남성식에 대해서는 이런 성격이라면 이렇게 커피잔을 쥐겠지 하는 A=B라는 등식이 성립했다면, 재섭의 행동에는 늘 딱 떨어지는 답이 없었다.
“가령 재섭이 어둡고 닫혀 있는 사람이다, 라고 설정한다면 교무실에서 학생들이 ‘선생님 물어볼 게 있는데요’ 했을 때 ‘그래?… 그건 이런 거야…’식으로 심심하게 대답해야 맞아요. 그런데 재섭이는 ‘어디 물으려고?’라고 시답지 않은 농담을 한단 말이죠. 그렇다고 그게 틀렸냐, 그게 아니라는 거죠. 우리 사는 게 다 그렇잖아요. 지금 기분이 안 좋아도 딴 장소에서 딴 사람 만나면 그 전 감정에 배반하는 감정상태로 대할 수도 있는 거니까. 그게 정말 본인이라면 캐릭터의 일관성에 떨어지니 하는 말은 안 할 거란 말이죠. 그렇다면 중요한 건 내가 얼마나 그 인간에 대해 공감을 하느냐는 거거든요. 게다가 설정없이 자연스러움이라는 걸 핑계로 방심하다보면 재섭이 아니라 인간 김태우가 튀어나올 수 있잖아요. 100% 공감은 아니겠지만 가장 근사치에 가기 위해 노력했어요.”
분명코 <버스, 정류장>의 시네마스코프사이즈 화면에서 운동하는 것은 지금껏 보아오던 김태우가 아니다. 서른둘의 네 번째 영화, 김태우가 이 정류장을 지나치지 않고 내린 건 정말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