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이정재] 완성된 남자
2014-12-01
글 : 이주현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빅매치> 이정재

이 남자는 100%다. 태도도, 외모도, 자기 일에 대한 열정도. 이 말에 딴죽을 걸고 싶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언제 어디서나 흐트러짐 없는 자기 세계를 구축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이정재는 100%의 남자다. <빅매치>는 그런 이정재를 만날 수 있는 영화다. <빅매치>에 오락영화, 액션영화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도 있지만 굳이 ‘이정재의’ <빅매치>라고 표현하고 싶은 이유도 액션과 코미디를 완벽히 자기 것으로 소화해버린 이정재의 놀라운 연기 때문이다. 이정재는 <도둑들> <신세계> <관상>에서 연이어 호연을 펼쳤고, 세 영화 모두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러면서 그는 데뷔 20주년이었던2013년을 화려하게 보냈다. 지난해 영상자료원에선 이정재 특별전이 열렸고, 올해는 뉴욕아시안영화제에서 이정재 특별전이 열렸다. “운 좋게 계속해서 영화를 찍다보니 그런 의미 있는 행사를 마련해준 것 같은데 막상 연기하는 입장에선 20년이라는 시간이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았다.” 이정재는 담담하게 말했지만 20년 동안 꾸준히 제 확신을 믿으며 연기해온 배우는 실상 많지 않다. 최호 감독과 함께한 <빅매치>는 이정재가 “지금이 아니면 앞으로 이런 캐릭터는 못할 수도 있겠다”는 마음으로 임한 작품이다. 정체불명의 에이스(신하균)로부터 형(이성민)이 납치당하자 형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격투기 선수 최익호. 이정재의 익호는 단순하고, 강하고, 포기를 모른다. 그리고 유쾌하다. 엄청난 양의 액션을 감당한 것도 놀라운데, 이정재는 리얼하고 유머러스하고 강렬한 액션을 골고루 선보인다. <1724 기방난동사건> 이후 6년 만에 보는 이정재의 코미디 연기도 더 단단히 야문 느낌이다. 100% 오락 영화 <빅매치>에서 우리는 100%의 남자를 보게 될 것이다.

-<관상> 이후 시나리오가 많이 들어왔을 것 같다.

=그렇게 많이는 아니고. 요즘은 배우들도 많고, 스타 캐스팅보다는 기획에 맞춤한 캐스팅이 강화된측면이 있어서 실질적으로 시나리오가 많이 들어오진 않았다. 대신 <신세계> <관상>을 보신 분들이 ‘이정재가 센 것도 어울리네’라는 생각을 하시는지 센 역할이 많이 들어오더라.

-<관상>의 수양대군 캐릭터가 워낙 강렬해서 차기작으로 무엇을 선택할지 궁금했다. 비슷한 캐릭터, 비슷한 장르를 좀처럼 연이어 선택하지 않는 배우이긴 하지만 오락영화 <빅매치>는 좀 의외의 선택처럼 보인다.

=<빅매치>를 결정하기 전에 먼저 최동훈 감독의 <암살> 출연이 얘기돼 있었다. 그런데 <암살>이 프리 프로덕션 기간도 워낙 길고 캐릭터도 강해서 조금 쉬었다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터에 <빅매치>를 만났다.

-쉬어가는 캐릭터라기엔 <빅매치>에서 고생을 너무 많이했다.

=캐릭터는 쉬어가는 거였는데 몸은 고단했지. 어깨 인대도 끊어지고.

-처음엔 신하균이 연기한 에이스 역할을 제안받았다고 들었다.

=‘에이스 역에 캐스팅하고 싶습니다’라는 얘기를 듣진 않았다. 시나리오를 보내주어서 읽었고, 재밌어서 영화사 분들과 만남을 가졌다. 개인적으로는 에이스보다 익호쪽에 끌렸다. 익호는 지금이 아니면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흔 넘어서 그렇게 몸 만드는 게 쉽지 않다. (웃음) 이 정도 타이밍에 몸 만들어서 시원하게 치고받고 달리는 액션 한번 보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감독님한테 익호 얘기를 꺼냈더니 “저희는 에이스를 하실 줄 알았는데… 근데 진짜 익호 하실 수 있겠어요?”라더라.

-익호는 만화적인 인물이다. 최호 감독이 <슬램덩크>의 강백호 캐릭터를 참고해 만든 것으로 아는데, 단순하지만 집념 하나는 끝내주는 이 인물을 어떻게 표현하려 했나.

=박장대소하게 만드는 인물은 아니지만 위트가 중간중간 들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형을 구해야 한다는 목표만 보고 너무 심각하게 달리면 영화도 무거워지니까. 위트를 줄 수 있는 포인트를 찾는 게 숙제였다. 액션 신도 마냥 세게만 갈 수 없었다. 박정률 무술감독이 <아저씨>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했던 분이라 세게 가자면 한도 끝도 없이 세게 갈 수 있다. 그런데 내 입장에선 <아저씨>나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감성이 묻어나는 액션은 피했으면 했다. 동작 자체에도 좀더 위트가 있었으면 했고.

-액션에 위트를 넣은 장면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준다면.

=초반 경찰서 장면에서도 그냥 치고받고 도망갈 수 있는데 어떻게든 안 때리고 도망치려는 설정을 더했다. 그러면 개구리처럼 뛰어다니며 도망치는 액션이 나올 수 있다. 형광등에 폴짝 뛰어 매달리는 것도 위트를 가미한 동작이고. <아저씨>의 원빈은 경찰서 탈옥하는 데 4초? 7초? 그쯤 걸렸을까? (웃음) 물론 익호도 격투기 선수니까 후다닥 퍽, 그렇게 빠져나올 수 있겠지만 그러면 시원한 맛은 있어도 위트를 살릴 순 없었을 거다.

-코미디 장면을 좀더 얘기하면, 불법 도박장의 노래방 장면이라든지 보아와 한강 둔치에서 야릇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몸싸움 장면이라든지, 유치할 수 있는 장면들을 배우들이 잘 살려냈다.

=그럼, 유치하지. 시나리오 보면서 이거 어떻게 찍나 싶었다.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는 건 정말 하기 싫었는데…. (웃음) 하지만 그 신을 덜어내자고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배우의 역할은 감독이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지 잘 이해하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보이게끔 하는 것이다. 그래서 더 많이 아이디어를 내려고 했던 것 같다.

-영화 초반 상의 탈의한 익호의 모습이 보여진다. 파이터로서의 덩어리감이 느껴지는 근육이 인상적이었다.

=육식 위주로 하루에 6끼를 먹었다. 소화가 잘되는 체질도 아니어서 먹는 게 정말 고됐다. 오전 8시부터 3시간 간격으로 먹었다. 그런데 운동량이 많아서 생각만큼 근육이 잘 붙지 않았다. 욕심 같아선 몸을 더 불렸으면 했다. 80~82kg까지 불리고 싶었는데 77kg에서 더 불지 않더라. 액션이야 촬영 때 끊어 찍을 수도 있고 미흡하면 다시 찍을 수도 있지만 몸은 벗겨놓으면 다 보이는 거라 속일 수가 없다. 익호의 몸을 보여주는 장면이 초반부에 나오는데, 관객이 우람한 익호의 몸을 한번 보고 나면 그다음에 옷을 입고 나와도 우람했던 몸에 대한 기억을 계속 가지고 가게 된다. 그래서 벌키(bulky)한 몸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앞서 얘기가 나왔지만, 촬영 전 오른쪽 어깨 인대가 파열됐다.

=오전에 웨이트트레이닝을 두 시간 반쯤 하고 점심 먹고 격투기 훈련을 네 시간쯤 하는 생활을 5개월 동안 매일 반복했더니 몸에 무리가 왔다. 그러다 인대가 끊어져 병원에 갔더니 당장 수술해야 한다더라. 야구 선수들이 자주 당하는 부상이기도 한데, 그럼 시즌 중에 어깨 인대가 파열된 선수들은 어떻게 하냐고 의사한테 물었다. 주사 맞고 뛴다더라. 그럼 좋다, 나도 촬영 끝나면 수술하겠다고 했다. 매니지먼트사에서도 그러고 주변에서도 몸부터 챙기라는 조언을 많이 했지만 촬영 앞두고 하차할 수는 없었다. 이미 캐스팅 기사도 다 떴고, 영화사 입장이란 것도 있으니까.

-그 통증을 안고 5개월 동안 촬영한 건가.

=사실 카메라 돌아갈 땐 아픈 줄 몰랐다. 카메라 꺼지면 욱신거렸지. 촬영 끝나자마자 다음 날 바로 수술했다.

-<빅매치>에선 처음부터 끝까지 강(强)으로 내달리는 연기를 보여준다. 보통은 힘 조절을 하기 마련인데 이번엔 그럴 수가 없는 작품이었다.

=처음부터 계속 치닫다가 끝나버리는 영화라 연기 역시 그럴 수밖에 없었다.그래서 이 영화는 러닝타임이 두 시간 넘어가면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을 감독님께도 전했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처음에 80%를 보여주고 중간에 90%를 보여주고 마지막에 100%를 보여주려고 하지 마라. 처음부터 100%를 다 써버리고 다음 일은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해라. 처음부터 모두 소진하라는 거다. 인간의 능력은 생각보다 엄청나서 120%, 140%까지 자신의 능력을 뛰어넘는 무언가를 더 보여줄 수 있다는 얘기다. <빅매치>에서도 그렇게 작업했다. 처음부터 세게갔다. 다음 일은 그때 가서 또 쥐어짜내 더 좋은 걸 만들어 보여주면 되니까.

-어느덧 40대가 되었다. 배우로서, 평범한 한 개인으로서 나이 들어 좋은 점은 뭔가.

=조금 더 둥글둥글해지는거? 일할 때는 경험치가 쌓이다 보니 좀더 예민해지는 게 사실이다. 예전엔 안 보였던 모퉁이의 문제들까지 다 보이니까 더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나이를 먹으니 시각이 넓어지는 것도 같고.

-일상생활에서 좋은 건 없나.

=약간의 여유?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재밌게 살 수 있겠다는그런 마음, 여유가 좀 생긴 것 같다.

-현재 <암살> 촬영 중이다. 영화 때문에 15kg을 뺐다고.

=촬영하며 가장 말랐을 때가 62kg였고, 64kg대에서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다. <빅매치> 할 때가 77kg이었다. 이렇게 빠진 적은 중학생 때 이후 처음이다. 소금 안 먹고 산 지 6개월쯤 됐다. (웃음)

-<암살>은 1930년대 친일파 암살 작전을 위해 모인 사람들의 이야기로 알려져 있다.

=그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무엇을 위해 목숨까지 던졌는지, 혹은 살기 위해 인간은 얼마나 비열해질 수 있는지,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가 될 것 같다.

-<암살>에선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원 염석진을 연기한다. 어떤 캐릭터인가.

=최동훈 감독님이 “이정재씨가 맡은 캐릭터는 영화 홍보할 때 극도로 노출을 아껴야 할 것 같다”고 하시더라. 내 캐릭터를 얘기하다보면 영화의 중요한 내용들이 밝혀지게 된다. 그런 점에서 영화 홍보를 적극적으로 할 수 없어 뭔가 손해보는 느낌이다. (웃음) 영화 개봉 전까진 베일에 싸여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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