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니콜스 감독이 지난 11월19일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대부분의 부고기사는 그를 <졸업>과 <클로저>의 감독으로 소개하고 있지만, 83년에 걸친 그의 생애를 보여줄 단어로 빼놓으면 안 될 것이 ‘EGOT’이다. TV(에미 Emmy), 음악/공연(그래미 Grammy), 영화(오스카 Oscar), 그리고 연극(토니 Tony) 등 미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각 분야를 대표하는 최고 권위 시상식의 앞 글자를 조합한 단어로, 네 가지 모두를 석권한 ‘그랜드슬램’을 일컫는다. 경쟁부문 수상만을 따질 경우 니콜스를 포함하여 2014년 현재 오직 12명에게만 허용되었다. 네개 중 하나만 수상해도 가문의 영광인 마당에 그가 거머쥔 상은 모두 15개. 베를린 태생의 러시아계 유대인인 그는 일곱살 때 홀로코스트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와 일생의 대부분을 뉴요커로 살았다. “영어 못해요”와 “뽀뽀하지 마세요”가 할 줄 아는 영어의 전부였던 이민자 소년이 ‘기회의 땅’에서 일군 성공은 미국 대중문화와 쇼비즈니스의 극적인 단면이다.
음악인이 대부분인 EGOT 수상자 중 영화인은 우피 골드버그, 오드리 헵번, 멜 브룩스 감독 정도. 니콜스는 유일하게 그래미를 제외한 모든 상에서 총 10개의 감독상을 수상했는데, 이쯤되면 명실상부한 미국 대중문화에서의 최고 ‘감독’이라 할 만하다. 실제로 엘리자베스 테일러, 더스틴 호프먼, 잭 니콜슨, 메릴 스트립, 에마 톰슨, 로빈 윌리엄스 등 스크린, 브라운관, 무대에서 수차례 그와 함께한 배우의 목록은 길고 묵직하며 두텁다. 우피 골드버그는 길거리 코미디언으로 고군분투하던 자신을 알아보고 <우피 골드버그 쇼>를 연출한 니콜스를 인생의 멘토로 꼽는다(한 토크쇼에서 골드버그가 니콜스의 죽음을 전하려다가 말을 잇지 못하고 슬픔에 잠긴 모습이 전해진 바 있다).
“그들(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리처드 버튼)은 꽤 위압적이었고, 누군가 그들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 필요했다.” 니콜스의 영화 데뷔작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의 제작자이자 작가인 어니스트 레먼의 말이다. 동명의 연극을 원작으로 하는 이 영화로 테일러는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저마다 잔뼈가 굵은 고집스런 배우들을 보란 듯이 조련하는 데 성공한 니콜스는, 두 번째 영화 <졸업>에서는 무명의 더스틴 호프먼을 발탁하여 1960년대 미국의 불안한 청춘의 표상으로 만든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배우들이 그에게 보냈던 무한한 신뢰와 교감은 코미디 듀오 ‘니콜스와 메이’로 시작한 그 자신의 경력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보드빌 코미디를 바탕으로 미국식 즉흥 상황극을 완성한 이들 쇼의 대표작은 지금도 유튜브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정확하고 세심한 니콜스의 (즉흥) 코미디 연기는, 연출가로서 지녔던 그의 자산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1963년부터 27편의 연극, 뮤지컬을 제작, 연출하고, 1966년부터 22편의 영화를 연출한 그의 말년은 무대에서 더 활발했는데, 2012년에는 토니상 수상작 <세일즈맨의 죽음>으로 건재를 과시했고 2013년 말에서 2014년 초에 무대에 올린 해럴드 핀처 원작의 연극 <배신>은 대니얼 크레이크, 레이첼 바이스와 함께하여 화제를 모았다. 지난해 4월에는 <헨리의 이야기>에서 시나리오작가로 호흡을 맞췄던 J. J. 에이브럼스가 제작할 것으로 알려진 프로젝트의 연출을 긍정적으로 고려 중이라는 뉴스가 들려오기도 하여, <찰리 윌슨의 전쟁>이 그의 영화 유작이 될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사회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한 <실크우드>와 <프라이머리 컬러스>, 80년대 말 직장여성의 성정치학을 성공적인 대중영화로 풀어낸 <워킹걸>, 2000년대 초를 풍미한 <HBO> TV영화 <위트>와 <엔젤스 인 아메리카>, 지나치게 무난한 범작 혹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상업영화 <너 어느 별에서 왔니?>와 <울프> 등 부침이 심한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일관된 작가의 인장을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대표작 대부분은 이미 성공한 소설이나 연극을 원작으로 하며(<졸업> <클로저>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촬영 전 배우들과 진행하는 장시간의 리허설을 중시하거나 장르를 불문하고 유머와 위트를 잊지 않는 등 그의 작품은 고상한 시각예술보다는 우아한 코미디에 가깝다. <졸업>은 뉴아메리칸 시네마의 기수로 빠짐없이 언급되지만 50년 가까이 근면한 생산성을 과시한 니콜스는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마틴 스코시즈, 아서 펜 같은 영화 작가로 거론되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다채로운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공통점이라면, 관계의 갈등을 극적으로 부각시키는 (현실적인) 상황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집요한 시선이다. 아마도 ‘니콜스와 메이’에서 그가 완성한 즉흥 상황극 스타일이 그 시발점일 텐데, 유대인 어머니와 아들, 병원 접수원과 응급환자, 장례식장 직원과 유족 등 등장인물의 역할, 관계와 여기서 짐작되는 갈등이 쇼의 처음이자 끝이다. 여기에 풍부한 결을 더하는 것은 작가로서 상황과 인물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분석과 해석, 그리고 배우로서 관객과 소통하는 임기응변이다. 여기에는 또한, 완벽한 이방인으로 새로운 세계에 던져진 채 관찰력을 무기 삼았던 니콜스의 어린 시절도 작용했을 것이다. 니콜스의 필모그래피를 통해 미국 (대중)문화의 궤적을 고스란히 그릴 수 있는 것은 그러므로 당연한 귀결. 60년대의 반문화(<졸업>), 80년대의 페미니즘(<워킹걸>)과 에이즈(<엔젤스 인 아메리카>), 90년대 미국을 뒤흔든 정치/섹스 스캔들(<프라이머리 컬러스>), 혹은 이 모든 것을 한 군데 밀어넣고 사태를 지켜보는 코미디(<버드케이지>) 등 선명한 작가의 인장보다 빛나는, 성실한 관찰자의 해석이 거기 담겨 있다.
신문의 부고담당기자인 <클로저>의 댄은 자신의 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중요한 사람이 죽으면 ‘장기보존실’이라는 이름의 파일을 열고 (미리 써놓은) 부고기사를 찾아요. 전화를 돌리면서 사실관계를 확인하여 최종 수정을 하면서 몇 가지 완곡어법을 동원하죠. ‘유희를 즐겼다’는 건 알코올중독자를, ‘사생활을 중시했다’는 건 동성애자를 의미하는 식으로.” 그런 이름의 파일도, 미리 써놓은 그의 부고기사도 존재할 리 없지만, 그에게 어울리는 표현을 생각해본다. 매체를 넘나든 쇼비즈니스의 위대한 연출가? 그리고 깨닫는다. 불쾌하거나 불편한 대상을 우회적으로 언급하는 완곡어법의 최고급 코스가 풍자와 유머임을 떠올릴 때, 시대의 정수를 아이러니와 코미디로 포착해온 그의 인생 전체가 절묘한 완곡어법이었음을. 그래서 다시 쓴다. 이방인들이 발전하고 완성시킨 20세기 미국 대중문화의 풍부한 수원 중 하나가 자취를 감췄다. 이것은 완곡어법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