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모그래피
<아빠의 휴가> 감독 왕웨룬, 2014 공동 제작 <지취위호산> 감독 서극, 2014 포스트 프로덕션 프로듀서 <적인걸2: 신도해왕의 비밀> 감독 서극, 2013 포스트 프로덕션 프로듀서 <용문비갑> 감독 서극, 2011 포스트 프로덕션 프로듀서 <워리어스 레인보우2: 최후의 결전> 감독 웨이더셩, 2011 SFX, 액션 프로듀서 <적인걸: 측천무후의 비밀> 감독 서극, 2010 포스트 프로덕션 프로듀서 중국 TV드라마 <나의 연대장, 나의 연대> 감독 캉홍레이, 2008 SFX 프로듀서 <존 라베: 난징대학살> 감독 플로리안 갈렌베르거, 2009 특수분장 코디네이터 <적벽대전: 거대한 전쟁의 시작> 감독 서극, 2008 SFX 프로듀서 <집결호> 감독 펑샤오강, 2007 공동 프로듀서 <소년은 울지 않는다> 감독 배형준, 2007 프로듀서 <청연> 감독 윤종찬, 2005 프로듀서 <아나키스트> 감독 유영식, 2000 프로듀서 <은행나무 침대> 감독 강제규, 1996 프리 프로덕션 코디네이터
“베이징에 가면 이치윤 프로듀서를 만나라.” 중국과 공동 제작 경험이 있는 한국 제작자와 프로듀서들은 입을 모은다. 중국어가 유창하고, 한국과 중국의 영화산업 모두를 경험해봤고, 중국 메이저 영화사 화이브러더스와 펑샤오강, 오우삼, 서극 같은 중국 거장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기까지 해, 조언을 구할 때 그만한 적임자가 없다는 얘기다. 지난 11월17일 강제규 감독의 <장수상회> 막바지 촬영을 응원하는 한편, 강제규 감독과 함께 기획•개발하고 있는 중국영화 <나쁜놈>의 한국 배우 캐스팅을 위해 서울에 들른 이치윤 프로듀서를 만났다. 한국과 중국 양국을 오가며 한•중 공동 제작 영화를 만들고 있는 그를 소개한다.
“명함 챙기는 걸 깜빡했네요.” 베이징 왕징 거리에 위치한 북한 음식점 평양 옥류관에 들어온 이치윤 프로듀서가 머리를 긁적이며 미안해했다. 그게 무슨 대수냐는 듯 한국영화아카데미가 주최한 중국 프리 비즈 교육에 참가한 한국 프로듀서들은 자신의 가방에서 수첩을 주섬주섬 꺼내 차례로 그의 연락처를 받았다. 수첩과 필기도구가 없었던 프로듀서 몇몇은 자신의 스마트폰 카메라로 이치윤 프로듀서 연락처를 찰칵 찍기도 했다. 마침 옥류관 여종업원들이 부르는 노래도 <반갑습니다>. 명함 빠뜨리고 다니는 걸 보니 성격은 그리 치밀하지 않은 듯하고, 불룩 나온 배, 작은 키, 패딩 점퍼 차림 등 외모는 영락없는 동네 아저씨인데, 대체 그가 어떤 사람이기에 한국 프로듀서들이 그에게 우르르 몰려간 걸까. 옆자리에 앉았던 한 프로듀서가 귀띔해줬다. “중국에 간다고 하니 중국과 공동 제작했던 경험이 있는 프로듀서나 감독들이 알려줬다. 베이징에 가면 반드시 이치윤 프로듀서를 만나 조언을 구하라고 하더라.”
“펑샤오강, 오우삼, 서극 등 중국 거장 감독이 편하게 찾는 한국인 프로듀서다.”(강제규 감독) “특수효과, 색보정, VFX 등 후반작업 슈퍼바이저 역할이 가능한 몇 안 되는 프로듀서.”(명필름 이은 대표) “중국어가 유창하고, 중국 영화산업과 문화를 잘 알아 현장에서 한국과 중국 스탭들의 가교 역할을 한다.”(해인 임승희 의상감독) 오랫동안 그와 함께 일한 사람들의 말대로 이치윤 프로듀서는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한•중 공동 제작 프로젝트에 주로 참여해왔다. 중국 올로케이션 촬영으로 진행됐던 <아나키스트>(2000)를 시작으로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이 공동 제작한 <청연>(2005)에서 프로듀서를 맡았고, 중국으로 건너가 <집결호>(2007)에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그 이후 <적벽대전: 거대한 전쟁의 시작>(이하 <적벽대전>, 감독 오우삼, 2008), <적인걸: 측천무후의 비밀>(2010)과 <지취위호산>(이하 감독 서극, 2014) 등 중국 대형 프로젝트에서 SFX 프로듀서, VFX 프로듀서, 포스트 프로덕션 프로듀서로 각각 작업해왔다. 모두가 중국과 손잡으려고 혈안이 된 지금, 이치윤은 펑샤오강, 오우삼, 서극 같은 쟁쟁한 중국 감독들의 작품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한국 프로듀서다.
공부보다 현장이 좋았던 중국 유학 시절
이치윤 프로듀서는 화교 학교 출신이다. 가족 중 중국인은 없다. 할아버지와 가까운 중국인의 도움을 받아 화교들만 갈 수 있는 화교 학교에 동생과 함께 다녔다. 초등학생 때 자연스럽게 중국어를 배울 수 있었다. 그가 다시 중국과 인연을 맺게 된 건 중앙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던 1993년. 한•중 수교가 맺어진 다음해였다. 어릴 때 배웠던 중국어를 다시 익혀보자는 요량으로 베이징에 여행도 할 겸 어학 연수하러 갔다. 그곳에서 우연히 베이징전영학원이 외국인 학생을 뽑는다는 공고에 이끌려 응시했다. “면접 때 영화감독이었던 교수님들께 ‘감독보다 프로듀서가 되고 싶다’고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지원자 대부분 연출 지망생들이라 교수님들께서 ‘학교에 프로듀서할 친구도 필요하다’고 붙여주셨다.” 운이 좋게도 베이징전영학원에 들어간 그는 수업보다 학교 선배였던 강문(<귀신이 온다>(2000) 등 연출), 왕샤오솨이(<북경 자전거>(2000) 등 연출) 같은 6세대 감독의 촬영현장에 가는 걸 즐겼다. “공부는 잘 못했다. (웃음) 선배들의 촬영현장에 놀러가고, 영화진흥공사 통신원도 좀 하고, 영화 월간지 <스크린>에 중국 관련 글도 보냈고, 그 밖에도 다른 아르바이트도 열심히 했다. 유학 갔으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했는데….” 공부보다 촬영현장을 더 좋아했고, 학교보다 바깥일에 더 관심이 많았던 그는 확실히 프로듀서 체질이었다.
하지만 당시 중국 대륙은 유학생인 그에게 기회의 땅은 아니었다. 산업의 틀이 갖춰지기 훨씬 이전이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한국 영화산업은 1세대 프로듀서들의 활약에 힘입어 활력 시장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그는 약 3년간의 중국 생활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1996년, 그가 찾았던 곳은 영화발전소. 강제규 감독이 1994년 설립한 제작 집단이었다. 그는 절친이었던 중앙대 영화과 친구와 함께 영화발전소 2팀으로 들어갔다. 당시 강제규 감독의 눈에 비친 이치윤 프로 듀서는 “새로운 에너지를 가진 친구”였다. 강제규 감독은 “당시 영화발전소에 중앙대 영화과 후배들이 많았다. 이치윤은 과 후배의 절친이었다. 베이징에서 영화 유학 갔다왔다고 해서 신기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러시아나 미국으로 영화 유학을 갔던 시대가 아니었나”라고 떠올렸다. <은행나무 침대>(1996)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던 강제규 감독은 이치윤 프로듀서에게 중국 작가를 추천해달라고 요청했고, 그로부터 강문 감독의 아내인 링다이 작가를 추천받았다. “청화대 기숙사에서 두달 동안 시나리오를 썼다. 이치윤, 손장현(<마이웨이> <미스터 고> 중국 프로듀서) 두 친구가 손발이 되어줬다. 통역도 해주고, 시나리오도 봐주고, 영화 얘기도 많이 했다”는 게 강제규 감독의 회상이다.
<은행나무 침대>와 함께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참여한 또 다른 영화는 <아나키스트>(감독 유영식, 출연 장동건•정준호•김상중 등)였다. “원래는 중국 부분 로케이션으로 진행됐다. 제작자 이준익 감독님과 함께 상하이를 열흘 정도 다녔는데 여러 이유로 올로케이션 촬영을 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중국 로케이션이 생소했던 1999년, 그는 라인 프로듀서로 중국 촬영을 진두지휘했다. 그가 중국어를 할 줄 알아 중국 촬영 진행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충무로에 알려지면서 중국과 공동 제작하는 프로젝트들을 하나씩 맡게 됐다. <청연>(감독 윤종찬, 2005)에 합류해 전체 촬영분량의 50%를 차지하는 중국 로케이션을 진행했다. MK픽쳐스에 들어가 <소년은 울지 않는다>(감독 배형준, 2007)와 여러 이유로 제작되지 못한 <아리랑>(감독 정지영)의 프로듀서를 맡았다. 명필름 이은 대표는 “<아리랑>을 진행하면서 중국 전문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중국일을 함께하자고 제안했다”고 떠올렸다. 이치윤 프로듀서가 합류한 뒤 MK픽쳐스는 중국 보리문화그룹과 함께 한•중 합작회사 동방명강을 설립해 중국 극장 사업도 진행했다. “상장회사로서 MK픽쳐스는 해외 사업도 진행해야 했다. 그중 하나가 중국 극장 사업이었다. 하지만 MK픽쳐스는 제작사로서 강점이 있는 회사였고, 나 역시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까닭에 결과적으로 극장 사업과 잘 맞지 않았던 것 같다.”
오우삼 감독, 서극 감독과 일하다
MK픽쳐스의 극장 사업은 결과적으로 잘 풀리지 않았지만, 발품을 판 덕분에 이치윤 프로듀서는 화이브러더스의 왕중군, 왕중뢰 형제와 펑샤오강 감독과 인연을 맺게 된다. <천하무적>(2004)을 막 끝낸 펑샤오강 감독은 오래전부터 준비했던 <집결호>를 제작하려고 했다. “하지만 전쟁을 표현하기엔 당시 중국 스탭의 역량이 부족했다. 이때 <태극기 휘날리며>를 보고 모두 한국 스탭의 힘으로 제작됐다는 사실을 알게 돼 강제규 감독에게 도움을 청했다.”(펑샤오강) 강제규 감독은 이치윤 프로듀서와 <태극기 휘날리며>에 참여했던 특수효과팀(데몰리션 정도안 대표), 특수분장팀(메이지 신재호 대표), 사운드(블루캡 김석원 대표) 등 한국 기술 스탭 25명을 <집결호>에 추천했고, 그들의 기술이 완성도를 높여준 덕분에 <집결호>는 중국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집결호>의 흥행은 한국에서 활동하던 이치윤 프로듀서의 영화 인생에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했다. 펑샤오강 감독이 오우삼 감독에게 그를 추천한 것이다. “<집결호>가 개봉되기도 전에 오우삼 감독님의 신작 <적벽대전>에 합류하게 됐고, <적벽대전>이 끝난 뒤 왕중군, 왕중뢰 형제로부터 서극 감독의 <적인걸: 측천무후의 비밀>을 함께할 것을 제안받았다.” 화이브러더스와 서극 감독의 신뢰를 얻은 덕에 이치윤 프로듀서는 현재 후반작업 중인 <지취위호산>을 포함해 서극 감독의 최근 작품들에서 포스트 프로덕션 프로듀서를 연달아 맡을 수 있었다.
그와 함께 일한 중국 영화인들은 “중국어를 잘하는 데다 한국과 중국의 영화 시스템을 잘 알아 커뮤니케이션하기가 편하다”며 만족해했다. 완다 기획개발팀 아비 광만 카이 팀장은 “중국인들과 영화를 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이치윤 프로듀서처럼 중국에 살면서 중국어를 배우면 우리는 마음을 열 것”이라고 말했다. 강제규 감독은 “통역이 정확하다. 그래서 중국 파트너와 대화를 하다보면 상대방의 신뢰가 느껴진다”고 평가했다. 이치윤 프로듀서는 중국 영화인들로부터 ‘한국과 중국을 잇는 미들맨’이니 ‘다리 역할’이라는 표현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처음에는 중간 역할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제작자나 감독과 기술 스탭을 잇는 역할은 프로듀서의 여러 역할 중 하나인데, 왜 다리 역할만 강조해서 말을 하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우스웠던 고민이었다. (웃음)”
이제는 중국 영화계의 주인 될 터
후반작업 프로듀서를 주로 맡았던 이력도 중국 영화인들이 꾸준히 그를 찾는 이유다. 이치윤 프로듀서는 “규모가 큰 프로젝트는 프로듀서가 여러 명 있다. 한국 기술 스탭들을 매칭하는 역할을 주로 했던 까닭에 VFX 프로듀서나 포스트 프로덕션 프로듀서 같은 크레딧을 주로 올렸다”고 말했다. 명필름 이은 대표는 “한국 후반작업 업체의 성격과 후반작업 프로세스를 잘 알고 있는 까닭에 중국 프로젝트 성격에 맞는 한국 기술 스탭들을 잘 매칭시킨다. 기술적 완성도를 높이기 원하는 중국 제작자들이 그를 많이 찾는다”고 전했다. 반면, 아이템을 기획•개발해 제작을 총괄하는 경험이 아직 없는 건 과제로 남았다. “제작자가 하는 일을 크게 펀딩, 캐스팅, 스태핑, 제작 진행으로 구분한다면 지금까지 주로 해왔던 역할은 스태핑이었던 것 같다. 프로듀서로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 위해서 창의적인 작업을 할 때라고 생각한다. 중국 영화인들 역시 이런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주는 것 같다.”
지난 8월 이치윤 프로듀서는 아내와 딸 둘을 베이징으로 불러 살림을 합쳤다. 기러기 생활을 한 지 9년 만이다. 집을 베이징으로 완전 이주한 건 가족과 함께 생활하겠다는 의지인 동시에 중국 영화일에 집중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그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고민도 많았다. “<적인걸>에 합류하기 전 휴식 시간이 있었다. 그때 중국과 한국 동료들에게 물었다. 한국에 들어갔다가 다시 중국으로 나오는 게 맞는 건지, 아니면 중국에서 계속 영화를 하는 게 맞는 건지. 지인들이 중국에서 일을 하는 게 나을 것이라고 조언을 해줬다.” 그래서 후반작업 업체 AZ웍스, HFR 이용기 전 대표와 함께 영화후반작업업체 이채영시기술유한공사를 설립해 사업을 시작했다. 중국 영화인들은 그의 중국 정착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지금까지는 중국 영화계의 손님이었다. 가족을 불러 중국에서 살게 된 이후 친구나 가족으로 생각해주는 것 같다.”
그는 현재 강제규 감독과 함께 블록버스터 <투파창궁>(투자•배급 완다)을 기획•개발 중이다. 명필름과 함께 <건축학개론>과 <시라노; 연애조작단>의 중국 리메이크를 공동 제작할 계획도 있고, <나쁜놈>(감독 손하오)은 화이브러더스와 함께 진행하고 있다. 많은 한국 영화인들이 그가 중국 영화계와 꾸준히 비즈니스할 수 있는 비결을 궁금해할 것 같다. “중국에 오는 한국 영화인 대부분 중국에서 하고 싶은 일을 먼저 얘기한다. 그러다보니 자꾸 한국 기준을 그들에게 얘기하게 되고, 잘될 수 있었으나 소통의 어려움 때문에 어그러진 일도 많았다. 중국 영화인들과 일을 하고 싶다면 그들이 내게 원하는 게 무엇일까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첫 제작 영화 <나쁜놈>은 어떤 프로젝트인가
지금까지 VFX, 액션 등 기술 파트와 후반작업 프로듀서로 활동해왔다면, <나쁜놈>은 이치윤 프로듀서가 제작자로서 첫발을 내딛는 작품이다. 제주도에 놀러온 중국 관광객들에게 벌어지는 일을 그린 이야기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화이브러더스와 함께 공동 제작하며, <집결호> 때 펑샤오강 감독의 조감독이었던 손하오 감독이 메가폰을 잡는다. 그리고 펑샤오강 감독과 강제규 감독이 제작 총괄을 맡아 손하오 감독을 지원한다. 내년 3월 제주도에서 촬영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