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호의 오! 마돈나]
[한창호의 오! 마돈나] 흠모와 혐오 사이의 스타덤
2014-12-12
글 : 한창호 (영화평론가)
엘리자베스 테일러 Elizabeth Taylor
<버터필드 8>

흔히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절대미의 배우라고 말한다. 다른 미덕들은 차치하고, 이상적인 외모 자체를 타고났다는 의미다. ‘천재’라는 말이 타고난 재능(天才)이든, 태생적인 그 무엇(Genius)이든, 하늘에 의해 결정난 것이라면, 절대미의 외모도 넓게는 ‘천재’의 범위에 속할 테다. 할리우드의 단 한명의 천재를 꼽자면, 아마 많은 영화인들이 엘리자베스 테일러라고 답할 것 같다. ‘미인’은 테일러라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임을 증명하는 시도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테일러의 아름다움은 신화가 됐다. 신화의 역사는 조지 스티븐슨 감독의 <젊은이의 양지>(1951)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그 신화는 늘 불안을 동반한 채 종종 사회에 위협이 되기도 했다.

<젊은이의 양지>, ‘절대미인’ 테일러의 신화

테일러는 그리스 신화의 빛나는 미인인 키르케처럼 ‘죄를 짓게’ 만드는 존재다. 오디세우스가 그랬듯, 죄를 지어서라도 가까이 머물고 싶은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젊은이의 양지>는 바로 그런 ‘위험한’ 이야기를 한다. 영화는 시어 도어 드라이저의 소설 <미국의 비극>을 각색했는데, 신분 상승을 꿈꾸는 청년(몽고메리 클리프트)의 추락을 그리고 있다. 테일러와 클리프트는 모두 그리스의 조각 같은 미모로 탄성이 나오게 했다. 특히 당구대가 있는 방에서 두 연인이 처음 만났을 때, 교대로 제시되는 클로즈업 장면은 ‘할리우드의 이상적인 커플’의 탄생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테일러는 클리프트와 공연할 때 가장 빛났다. 세상의 많은 연인들을 설레게 했을 당구 장면의 기억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우디 앨런은 <매치 포인트>(2005)에서 당구를 탁구로 바꾸어 그 장면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 당구를 치며 가난한 청년은 너무나 아름다운 여성 때문에, 인생 전체를 걸어야 할 모험에 발을 들여놓는다.

이 영화를 찍고 있을 때 테일러는 17살이었다. 그런데 서른이 다 된 클리프트보다 더 어른스러워 보였다. 이미 조숙했고 관능미가 넘쳤다. 테일러 앞의 클리프트는 오히려 미소년 같았다. 특히 사랑하는 장면에서의 주저하지 않는 태도는 당대의 동년배 여배우들, 이를테면 그레이스 켈리, 혹은 오드리 헵번과는 대단히 달랐다. 테일러에 비하면 다른 스타들은 여전히 미숙한 소녀, 또는 어색한 연기자 같았다. 성적 관계의 주도권을 쥐는 여성, 그럼으로써 남성 역할의 경계를 침범하는 위협적인 존재, 더 나아가 1960년대의 소위 ‘성 해방’의 시기에 자의든 타의든 이런 변화의 상징적 배우로 성장해가는 데, <젊은이의 양지>는 암시적인 작품이 됐다.

적극적인, 혹은 공격적이기도 한 여성으로서의 이미지는 <자이언트>(1956)에서 다시 확인된다. 여전히 조지 스티븐슨 감독의 작품이다. 텍사스 대농장의 여주인으로 등장하는 테일러는 등장하자마자 남성들의 영역, 곧 농장 사업에 개입함으로써 극에 긴장감을 몰고 온다. 남편(록 허드슨)이 “이 일은 남자들만의 일”이라며 여성의 제한된 자리를 환기시키지만, 그녀는 그런 관습을 수용하길 거부한다. 말하자면 <젊은이의 양지>에서의 연인 사이의 적극성이 이젠 사회적 영역으로까지 확장된 것이다.

악명 높은 남성 편력과 스타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아역스타 출신이다. 부친은 화상이었고 모친은 전직 배우였다. 이들이 런던에서 갤러리를 운영할 때 테일러가 태어났다. 2차대전의 전운이 감돌 때, 부모들은 미국으로 돌아와 LA에 갤러리를 열었는데, 여기의 손님 중엔 할리우드의 인사들이 많았다. 이들이 테일러의 미모에, 특히 유명한 ‘푸른 눈동자’에 감탄하여 아역배우 오디션에 참가하길 권했다. 푸른색에 간혹 보랏빛이 도는 테일러의 눈은 사파이어보다 아름답다고들 했다.

10살 때 데뷔했고, 이후 정규교육은 거의 받지 못하며 세트장에서 살았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신작 <맵 투 더 스타>(2014)에 잘 묘사돼 있듯, 테일러도 다른 아역스타들처럼 외로움과 과로에 시달렸고, 일찍 술과 약에 손댔다. 16살 즈음엔 아역도 아니고, 그렇다고 성인도 아닌 어정쩡한 신분의 위기 속에서 배우를 그만두려 했다. 이때 만난 감독이 빈센트 미넬리다. 성인배우로서의 가능성을 알린 <신부의 아버지>(1950)를 통해서다. 테일러에 따르면, 배우로서의 자신을 받아들인 게 이때였다. 그때 나중에 여덟번이나 하는 첫 결혼도 했다. 첫 남편은 힐튼 집안의 재벌 2세다. 이 결혼을 계기로 ‘악명 높은’ 파트너 바꾸기가 시작된다. 테일러는 7명의 남자와 8번 결혼했다(리처드 버튼과는 두번 결혼).

테일러는 속된 말로 부자들이 차 바꾸듯 남자들을 갈아치웠다. 청교도적인 윤리를 미덕으로 여기던 미국 사회에서 테일러의 행동은 스캔들이(었)다. 그런데 테일러가 의도했든 그러지 않았든, 결과적으로 그녀의 행동은 남성 중심의 권위주의에 조그만 균열을 냈다. 일부 남성들의 파트너 바꾸기에 상대적으로 관대하던 미국인들이 테일러의 행동에는 왜 그렇게 불쾌감을 드러냈을까? 프로이트라면 소원 성취를 이룬 ‘여성’에 대한 살기의 질투라고 하지 않을까? 더 나아가 스캔들이란 게, 숨어 있어야 할 사회적 억압의 출현에 대한 신경질적인 집단반응인데, 그렇다면 그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 테일러의 행위는 결과적으로 문명의 허약함을 드러내는 불안의 기폭제였다. 말하자면 테일러의 스타성은 미모 덕분이기도 하지만, 1960년대에 불어닥친 사회적 변화의 한 부분으로서 기능한 데 더 크게 기인했다. 스타에겐 이렇게 당대의 긴장이 새겨진다.

테일러는 존재 자체가 통념을 무시하는 사회적 불안이었다. 그런 위험한 이미지는 1950년대 말의 작품에서 이미 표현됐다. 이를테면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감독 리처드 브룩스, 1958)에서 테일러는 일시적이긴 하지만 시부(媤父)와의 사랑도 암시하는 불량한 역할을 소화한다. 다시 몽고메리 클리프트를 만나, <지난여름 갑자기>(감독 조셉 맨케비츠, 1959)에선 사촌과의 근친상간적 불안을 연기하기도 한다. 제도의 경계를 위반하며 불안을 자극하는 ‘여성의 역할’로 인기를 얻을 때, 지금은 잊힌 영화지만 <버터필드 8>(감독 대니얼 만, 1960)로 아카데미 주연상도 받았으니, 이때가 전성기였다. 1966년엔 당시 남편이었던 리처드 버튼과 공연한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감독 마이크 니콜스)를 통해 또다시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테일러의 미덕을 파노라마처럼 보려면 영화적으로 수작이라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대작인 <클레오파트라>(감독 조셉 맨케비츠, 1963)가 제격일 것 같다. 여기선 영웅들인 시저, 그리고 사실상 시저의 아들이나 다름없는 안토니우스 사이를 거침없이 오가며 위험한 사랑을 주도한다. 눈을 떼지 못할 미모는 여전하다.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