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풍경은 흑백영화를 연상시킨다. 까만 하늘에 흰 눈이 떨어지는 밤과 쌓인 눈에 햇빛이 부서지는 낮의 풍경이 특히 그렇다. ‘한겨울의 클래식-프랑스 고전영화 특별전’이 12월19일부터 2015년 1월9일까지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다. 유성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1930년부터 누벨바그가 꽃피기 직전인 1960년을 아우르는 14편의 흑백영화가 상영된다. 하얀 눈 위를 밀고 간 검은 타이어 자국 역시 겨울의 풍경인 것처럼 아름답지만 어딘가 씁쓸하고, 씁쓸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름다운 흑백 영상을 만날 수 있다.
프랑스 고전영화는 유성영화와 함께 출발했다. 무성영화의 감독들이 줄줄이 퇴장하는 와중에도 쥘리앙 뒤비비에와 장 비고는 성공적으로 유성영화 시기에 안착한 감독이다. 공교롭게도 두 감독은 소년기를 다룬 작품으로 이 시기에 발을 디뎠다. 장 비고의 <품행제로>(1933)는 무성영화 기법을 적절히 활용하는 가운데, 강압적인 기숙학교에 대한 아이들의 비밀모의와 이것이 실현되는 순간을 환상적으로 묘사한다. 뒤비비에가 1925년에 이어 두 번째로 영화화한 <홍당무>(1932)에서 가족의 분위기는 <품행제로>의 기숙학교와 유사하다. 빨간 머리 주근깨 소년 프랑수아는 강압적인 어머니와 무심한 아버지 밑에서 고립되어 있다. 밤이 되면 둘로 쪼개진 분신은 그에게 자살을 종용한다.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도 늘 밝고 씩씩하게 행동하려는 프랑수아 캐릭터의 매력 덕에 비극과 희극의 균형이 잘 잡힌 작품이다.
투박한 남성성과 우수에 찬 낭만성을 두루 지닌 배우 장 가뱅 특유의 캐릭터가 빛을 발한 세편의 작품, <망향>(1937), <위대한 환상>(1937), <안개 낀 부두>(1938)가 상영된다. 뒤비비에의 <망향>과 마르셀 카르네의 <안개 낀 부두>는 누아르의 전신이라 할, 음울한 분위기의 범죄물이다. 장 가뱅은 <망향>에서 2년 동안 경찰을 따돌린 수배자 페페로, <안개 낀 부두>에서는 탈영병 장으로 출연한다. 두 작품에서 은신처라 할 공간이 중요한데 <망향>의 미로 같은 도시 카스바와 <안개 낀 부두>의 허름한 선술집 파나마라는 공간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앙리 조르주 클루조의 <21번가의 살인자>(1942)와 조르주 프랑주의 <얼굴 없는 눈>(1960)은 본격적인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다. <21번가의 살인자>는 살인사건 현장에 명함을 남긴 채 사라지는 연쇄살인사건을 다룬다. <얼굴 없는 눈>은 얼굴에 화상을 입은 딸의 피부이식을 위해 여인들을 납치한다는 독특한 소재를 긴장감 있게 그려낸다.
누벨바그의 대표적인 감독 로베르 브레송의 초기작 <죄지은 천사들>(1943), <불로뉴 숲의 여인들>(1945)과 감독의 스타일이 본격적으로 드러난 <소매치기>(1959) 등 세 작품도 상영된다. 감독의 첫 장편, <죄지은 천사들>은 갱생한 범죄자들을 받아들이는 수녀원을 배경으로, 서로 묘하게 연결된 두 여인 안느 마리와 테레즈의 관계를 그린다. 자크 베케르의 <황금 투구>(1952)는 한순간 사랑에 빠진 마리와 목수 만다, 질투심에 불타는 마리의 애인 로랑을 둘러싼 이야기다. 한 여자를 사이에 둔 두 남자의 결투의 스토리이자, 결코 끝나지 않을 두 사람의 영원한 춤을 그렸다는 점에서 <마담 드…>(1953)와도 맥을 같이한다. <마담 드…>는 귀고리의 움직임과 사랑의 움직임을 절묘하게 결합한 막스 오퓔스의 대표작으로 <8명의 여인들>의 외할머니, 다니엘 다리우의 빛나는 모습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