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이 있어 사연을 보냅니다. 저는 서울 사는 초등학교 교사 준수(이승기)입니다. 제게는 인기 기상 캐스터로 활약하고 있는 현우(문채원)라는 친구가 있습니다. 알고 지낸 지 18년 된 ‘고환’ 친구입니다. 그래서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그 친구의 오피스텔 비밀번호까지 압니다. 가끔 청소도 해놓고 옵니다. 자주 만나 밥도 먹고 술도 마십니다. 하지만 정작 그 친구는 제가 “결정적일 때 흥분이 안 되는 남자”라고 하더군요. 그러고 보니, 그녀 곁에서 얼쩡대는 다른 남자가 마음에 걸립니다. 같은 회사 상사인데 유부남(이서진)입니다. 저 역시 다른 여자들을 안 만나본 게 아닙니다. 만나는 여자마다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었는데 무슨 문제가 있는지 100일을 못 넘기고 헤어졌습니다. 그때마다 현우가 생각나더군요. ‘썸’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데 이런 저는 ‘그린 라이트’인가요? 내년 1월15일 개봉하는 <오늘의 연애>(감독 박진표)를 보시고 한번 생각해봐주세요.
-촬영장에서 서로 어떻게 불렀나.
=이승기_이름. 배역 말고 실제 이름.
-동갑인가.
=문채원_내가 86년생, 승기가 빠른 87년생. 2009년 드라마 <찬란한 유산>을 같이 찍었는데, 그때 나이가 3개월 차이난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처음 인사 나눴을 때 누나라 부르겠다고 했는데…. (웃음)
이승기_흐흐흐.
-두 사람 모두 로맨틱 코미디, 그것도 주연은 처음이다.
=이승기_개인적으로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좋아하고, 잘하고 싶다. 배우의 다양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장르이니 말이다. 첫 영화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액션이나 블록버스터 같은 대형 프로젝트는 경험이 없어 잘할 자신이 없었다. 반면 이 영화는 채원이와 잘 만들어갈 수 있겠다 싶었다.
문채원_승기와 달리 나는 원래 로맨틱 코미디를 안 좋아했다. 올해로 29살인데, 서른이 되기 전엔 그래도 로맨틱 코미디를 한번 하고 싶긴 했다. 로맨틱 코미디에 출연한 내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때 <엽기적인 그녀>의 전지현씨 같은 개성 있는 캐릭터를 만났다. 누가 그러더라. 서른이 넘어 로맨틱 코미디를 하면 나보다 어린 애랑 해야 한다고. (웃음) 지금 이 작품을 만난 게 행운인 것 같다.
-영화 속 준수와 현우는 ‘썸’을 타고 있는 18년된 친구다.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어떤 캐릭터로 다가왔나.
=이승기_준수는 현우한테 한없이 잘해줄 것 같은 친구다. 이런 장점들이 현우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랑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채원이가 연기한 현우가 매력 많은 캐릭터라 부딪히면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이 나올 수 있겠다 싶었다.
문채원_준수는 뚝심 있다. 이야기 중간마다 재미를 주기 위해 찌질한 모습도 보여주지만, 전반적으로 할 거 다하는 남자이지 않나.
이승기_우리 세대는 ‘까도남’ 같은 남자가 인기가 많다. 여자에게 까칠하고 도도하게 구는 남자. 준수는 그 반대의 남자다.
문채원_까도남은 별로.
이승기_응. 무엇보다 ‘까도남’은 나와 어울리지 않잖아. ‘까도남’이 유행하는 지금 세대의 연애관에 진정한 사랑의 매력과 깊이를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
문채원_현우는 오랜 친구인 준수에게는 선머슴 같은 모습을 보여주다가도 직장 상사 동진 앞에서는 여우처럼 행동하고. 거칠게 행동하지만 한편으로는 여리기도 해서 항상 누군가가 보살펴줘야 하는 여자다.
-상대 캐릭터로 캐스팅됐다는 얘길 들었을 때 어땠나.
=이승기_솔직하게? 하하. 정말 좋았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는 배우의 연기력만큼이나 친분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평소 채원이와 친하고, 채원이 얼굴이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문채원_(한쪽 팔을 하늘 높이 들며) 와우! (폭소) 승기가 한다고 했을 때 제일 좋은 캐스팅이라 생각했다. (웃음) 소탈한 매력을 잘 보여줄 수 있는 데다가 달콤한 매력도 있거든. 다른 친구가 캐스팅됐다면 배우로서 매력 있네 정도 생각했겠지만 승기만큼 준수와 현우의 관계를 보여주진 못했을 것 같다. 언제 친해지겠나.
-촬영하기 전 얼마나 만났나.
=이승기_드라마 <너희들은 포위됐다> 촬영 때문에 감독님도, 채원이도 거의 만나지 못했다. 다른 여배우였다면 친해져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을 텐데 채원이는 비슷한 시기에 경력을 시작해 함께 잘돼서 꾸준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사실 채원이와 다시 작업을 하는 탓에 얼마나 친해질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친해져서….
문채원_촬영 첫날 주사 부리는 장면을, 나흘 만에 키스, 아니 뽀뽀하는 장면을 찍었다. (웃음) 승기는 처음 만나는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대하는 반면, 나는 소극적인 데가 있다. 이번에는 승기와 빨리 가까워지고 싶었고, 그렇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영화에서는 긴장과 거리가 먼 모습인데, 속으로는 엄청 긴장한 상태였다. 시간이 갈수록 편해졌고, 승기에게 자꾸 의지를 하게 되더라.
-영화 속 준수와 현우처럼 두 친구가 오랜 시간 ‘썸’을 타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이승기_나라면 마음에 들면 바로 그냥. (웃음) 상황을 보면 준수가 아주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어릴 때 현우한테 거절당한 뒤 그다음부터 다시 고백하는 게 겁나고, ‘썸’을 다시 타는 게 어렵기도 한 상황이니 말이다. 역할이 사람을 만든다고 오랜 시간 붙어 있다보니 강제로 친구가 된 거다. 나름 다른 여자와 연애도 해보지만 계속 현우에게 눈길이 가고, 마음이 남아 있으니 현우가 데리러 오라 그러면 또 가고. 현우가 싫었다면 안 보고 마는데. (웃음)
문채원_승기 말대로 둘은 친구지만 답이 안 내려진 관계다. 어쨌거나 <오늘의 연애>를 보고 나온 뒤 옆사람이 사랑스러워 보였으면 좋겠다. <나를 찾아줘> 같은 영화는 옆사람이 무서워 보이잖나. (웃음)
-톤을 조절하는 게 어려웠을 것 같다. 너무 가까워지면 연인처럼 보이고, 반대로 너무 멀어지면 친구처럼 보이는 관계니까.
=이승기_늘 현우가 문제를 일으키면 준수가 해결하러 오니까 톤 조절이 그렇게 어렵진 않았다.
문채원_그런 건 있었다. 한쪽 연애가 끝나기도 전에 또 다른 ‘썸’을 타는 지점이 몇 군데 있었는데 그걸 정확하게 표현하는 게 어려웠다. 잘못했다간 공감을 못할 것 같아서. 실제로 18년 동안 친구인 관계가 얼마나 있겠나. 막상 찍어보니 이승기, 이서진, 정준영 등 출연배우들의 매력을 보면서 어려웠던 지점이 조금씩 풀리는 것 같았다. 감독님도 배우를 편하게 따라가주는 스타일이었고.
-주연으로 출연한 첫 작품이라 책임감이 컸을 것 같다.
=이승기_아주 크진 않았다. 드라마를 찍으면서 시청률 압박도 경험해봤고. 배우가 책임감을 크게 가진다고 작품이 잘되는 것도 아니고, 잘 안 될 것 같은데 걱정과 달리 잘되는 작품도 있고.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연기 외적으로 아무리 스탭을 잘 챙긴다 해도 연기를 못하면 주인공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못한 거잖나. 내가 맡은 캐릭터를 정확히 보여줘야 한다는 점에서 부담이 컸다.
문채원_주인공을 맡아 성적이 안 좋았던 경험이 있었다면 부담감이 있었겠지만, 그런 경험이 없어 오히려 부담을 느끼진 않았다. 어떤 그림으로 나와야 한다 같은 정답이 없는 데다가 우리가 열심히 하기만 하면 되니 말이다. 다만, 우리가 기분 좋게 찍어야 기분 좋은 영화가 나올 거라는 건 믿었다. 승기도, 나도 열의를 쏟아부을 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다.
-승기씨는 드라마를 주로 작업하다가 영화를 처음 해보니 어떻던가.
=이승기_큰 스크린으로 보는 영화와 매주 밥 짓다가 보게 되는 드라마는 다르게 접근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대사가 베이스인 드라마와 달리 영화는 주어진 상황을 여러 장치를 통해 표현하는 것이니 말이다. 똑같은 연기를 하면 되지,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영화와 드라마를 가리진 않을 거다. 좋은 작품이라면 뭐든지 하고 싶다. <설해>라는 영화와 한 주 간격으로 개봉하는데 우리 영화 반응이 어떨지 걱정된다.
문채원_승기 요즘 맨날 인터넷 들어가서 확인한다. (웃음)
이승기_누가 알려주더라. 흥행 성적이 매일 밤 12시에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이라는 사이트에 업데이트된다고. 영화가 개봉하면 PC방 같은 데 가서 확인하려고. 집에서는 도저히 못 볼 것 같아. (웃음)
-채원씨는 내년에 서른살이다. 여배우로서 고민이 많은 시기일 것 같다.
=문채원_친구들도, 나도 고민이 많다. 29살이라는 나이가. 이 나이가 되면 많은 정답을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해왔는데, 올해를 보내면서 또 그런 건 아니더라. 아직 아이 같은 면모가 있어 기분이 좋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 감정 기복이 심한 편이다. 그게 미성숙하다는 얘기는 아니고…. 성숙해지는 게 썩 좋은 것만도 아닌 것 같다. 올해 주인공을 맡아 로맨틱 코미디를 끌고 갈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언제나 남 모를 사연을 가진 여성을 연기해왔기 때문이다. 내년에는 신파 같은 것을 하고 싶어질지도 모르겠지만 올해는 작품 속에서 울고 싶진 않았다. 우는 거 지겨워. 맨날 울어. (웃음)
이승기_나도 맨날 울어. 드라마 찍을 때 하루에 세번씩 울었어.
-<오늘의 연애>는 신파가 아니라 다행이었겠다.
=문채원_그럼. 기분 좋은 눈물이 많지.
-파트너에게 점수를 준다면.
=이승기_채원이가 <나를 찾아줘>에서 로저먼드 파이크 같은 미치광이 여자를 연기하면 되게 잘 어울릴 것 같아. (좌중 폭소)
문채원_그런 얘기 좀 하지 말라고. (웃음) 음, 첫 로맨틱 코미디를 승기와 함께해서 너무 좋았다. 몇년이 지난 뒤 다른 이야기로 다시 만나고 싶을 만큼. 그래서 영화가 끝난 뒤 좀더 적극적으로 작업할걸 그랬나 그런 생각도 했다. 사실 승기가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서 진행한 경험이 많아 가식적인 멘트를 할 것 같지 않나. 실제로는 그런 게 없는 친구다. 스스로 오글거려하니까. 말하지 말걸 싶은 얘기는 입 밖에 꺼내지도 않지?
이승기_그럼, 그런 말은 절대 안 하지.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