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아기자기 오밀조밀 따스함을 담다
2015-01-06
글 : 이주현
사진 : 최성열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제작기

“전세는 비쌀까? 100만원은 넘겠지?” “요새 전세 100짜리가 어딨어? 너네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너네 집은 얼마짜린데?” “한… 500?” 장면 전환. 부동산 가게에 붙은 ‘평당 500만원’ 전단지를 본 열살 지소와 채랑은 분당 근처 어딘가 ‘평당’에 500만원짜리 집이 있다고 생각한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10살 아이들은 500만원으로 집을 살 수 있다고 믿을 만큼, 개를 훔쳤다 돌려주면 사례금 500만원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믿을 만큼 순진하다. 원작은 바바라 오코너의 동명 소설. <거울속으로>(2003) 이후 11년 만에 두 번째 장편영화를 만든 김성호 감독을 만나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 완성되기까지의 노고를 들었다.

작은 이야기를 큰 훈훈함으로

소설을 각색하는 완벽한 방법

영미 소설을 영화화한 첫 작품이라는 사실은 그저 하나의 타이틀에 불과하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원작이 어느 나라에서 출간되었는지를 잊게 할 만큼 한국적으로 잘 각색되었다. 바바라 오코너의 원작은 복잡한 이야기를 품고 있지 않다. 아버지가 집을 나갔고, 더불어 11살 소녀 조지아의 집도 사라졌다. 남겨진 차 한대에 의지해 엄마와 동생과 조지아는 살아간다. 조지아는 머리를 굴려 내 집 마련의 계획을 세운다. ‘개를 훔친다→ 개를 돌려준다→ 보상금 500달러를 받는다→ 집을 산다.’ 순진한 생각이다. 가족의 해체와 절대적 가난 앞에 던져진 조지아의 현실을 아이의 시선으로 묘사하는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은 담백함이다. 소설과 달리 영화는 훈훈하다. 소설이 개를 훔친 소녀의 죄책감에 집중한다면 영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 죄책감” 대신 왁자한 소동들로 이야기의 틈을 채운다. 소설과 영화의 온도차는 어쩔 수 없는 선택에서 비롯된 결과이기도 하다. 담백한 원작을 담백하게 영화화하는 게 (자극적인 소재를 찾기 바쁜) 한국 영화계의 현실을 고려하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원작에서 개를 돌려주는 이야기가 참 좋았다. 작은 결말, 작은 클라이맥스일 수 있지만 그 자체로 이야기할 만한 가치가 있겠다 싶어서 시작했다. 메이저 투자배급사에선 싫어하겠다 싶었지만.”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메이저 투자배급사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리스크가 크다, 심심하다, 타깃이 없다”는 게 이유였다. 실제로 좀더 자극적인 이야기를 원한 투자사에선 “(개의 주인인) 노부인이 불치병에 걸려야 한다, 아빠가 시체로 발견돼야 한다, 주인공과 가족이 봉고차에서 자살해야 한다” 등 막장 드라마의 시청률 높이기 작전 회의 때나 나올 법한 이야기들을 의견으로 첨부했다고 한다. 어쨌든 판권을 산 삼거리픽쳐스의 엄용훈 대표도, 김성호 감독도 판권을 산 애초의 이유, 즉 “개를 돌려주는 결말”을 끝까지 지켜냈다. 그 결말을 지키기 위해 김성호 감독은 3년 가까이 시나리오를 붙들고 있었다.

개와 주거니 받거니(!)

개 연기를 지도하는 완벽한 방법

“개(연기)는 별로 걱정 안 했다.” 이런 호언장담은 보통 낭패를 불러오기 십상인데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촬영장에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아이들이 목표물로 삼는 노부인의 강아지 월리의 실제 이름은 개리다. 개리 역시 연기 신인. 김성호 감독은 잭 러셀 테리어에 욕심이 났다(<마스크> <아티스트>에 나온 연기견들이 잭 러셀 테리어다). 광고나 TV에 자주 노출된 프렌치불도그, 불테리어, 페키니즈 같은 개들은 식상할 것 같아서 일찍 배제했다. 잭 러셀 테리어 중에서도 털이 철사처럼 삐죽하게 뻗어난 와이어드 잭 러셀 테리어를 찜했고, 연기견 에이전시를 통해 개리를 만났다. 감독은 활발한 성격과 귀여운 외모의 개리에 첫눈에 반했다. 주인과 떨어져 지내본 적 없는 개리는 연기 훈련소에 입소해 트레이닝을 받았다. 일주일간은 식음을 전폐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더란다. 그러다 2주가 지나자 음식을 먹기 시작했고, 3주째부터 훈련을 소화했고, 그 후엔 주인이 찾아와도 주인을 잘 알아보지 못했단다. 김성호 감독은 개 연기 지도에서만큼은 자신이 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개를 다루는 데 감이 좀 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개를 키우셔서 개와는 친숙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개 연기라는 게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다. “(개의) 시선만 잘 잡아주고, 고개만 제때 잘 돌려주면 된다.” 개가 좋아하는 장난감으로 관심을 끈 뒤 시선과 행동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촬영은 진행됐다. 그런데도 컨트롤이 되지 않을 땐 김성호 감독이 직접 나서서 “개와 주거니 받거니(!) 하며” 연기 지도를 했다. 이런 걸 보면 확실히 동물과의 교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있기는 한가보다. 그렇게 개리는 영화의 귀여움 한축을 담당하며 신인배우답지 않은 명견 연기를 선보인다.

이지원, 이레(왼쪽부터).

아이들이 꼼지락꼼지락

아역과 공생하는 완벽한 방법

김성호 감독은 열살, 일곱살 난 두딸의 아빠다. “10년간의” 육아 경험은 9살 동갑내기인 두 여배우와 함께 영화를 완성해가는 데 분명 긍정적 힘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지소(이레)와 채랑(이지원)은 마치 셜록과 왓슨, 배트맨과 로빈, 우디와 버즈처럼 찰떡궁합을 이룬다. 서로의 모자란 부분을 채워주고 응원해주는 어린 친구들의 우정은 꽤 뭉클하다. 봉고차에서의 삶을 채랑에게 들켜버린 지소는 말한다. “나랑 다니는 게 쪽팔릴지도 몰라.” 채랑은 쿨하게 답한다. “우리 엄마랑 다니는 게 더 쪽팔려.” “엄마들이 좋다는 거 중에 좋은 거 별로 없고, 잘될 거라는 거 중에 잘되는 거 거의 없어”라며 철없는 엄마들을 뒷담화할 때도 둘은 한몸이 된다. 김성호 감독은 지소와 채랑은 소설 속 조지아를 두 인물로 나눈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개를 훔치는 건 극악무도한 일인데, 두 여자아이가 꼼지락꼼지락 움직이고 다니면서 사건을 벌이면 그 모습이 예뻐 보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캐릭터도 상호보완적이지만 실제 두 배우도 상당히 다른 성향을 지녔다고 한다. “이레는 진지하고 심각한 아이다. 카메라 앞에서 까불까불거리며 잘 놀 수 있는 캐릭터는 아니다. 채랑이를 연기하는 배우는 이레가 가지고 있지 않은 모습을 가진 아이였으면 했다. 지원이가 그랬다.” 캐릭터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배우의 성격까지 고려해 캐스팅한 셈이다. 연기 또한 맞춤형 지도를 도입, 두 아역의 최고 연기를 끌어냈다. 이준익 감독의 <소원>에서 조숙한 연기를 선보였던 이레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에서 자존심 강한 홈리스 어린이로 변신한다. 집 없는 설움과 아빠에 대한 그리움을 개를 훔쳐 한방에 해결하려는 지소는 애어른 같아도 그냥 애다. 현실의 이레 역시 9살 어린이다. “성인배우처럼 시나리오를 통째로 외울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매일매일 다음날 찍을 신을 쪼개서 연습했다.” 현장에선 항상 카메라를 켜두었다. 이레의 감정이 쭉 이어지게 했고, 그렇게 자연스러운 반응 숏을 건졌다. 이지원에겐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봐” 하고 멍석을 깔아주면 되었다. “오 마이 가스레인지”라는 대사를 “오 마이 갓김치”로 바꿔도 되냐고 물어보는 맹랑한 9살은 자기만의 독보적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최민수는 무슨 최민수야

최민수와 작업하는 완벽한 방법

아이가 주인공인 영화, 동물이 주인공인 영화, 그리고 최민수가 출연하는 영화. 김성호 감독은 제작보고회 때 이를 두고 “충무로의 3대 어려운 영화”라는 표현을 썼다. 결과적으로 그는 세 가지 고개를 차례차례 무사히 넘었다. 집 없는 아이, 집이 있지만 외로운 노부인, 집 없이 자유롭게 사는 노숙인은 모두 ‘집’이라는 연결고리로 엮인다. 노숙인 대포 캐릭터는 지소의 조력자가 되었다가 조언자가 되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대포 역에) 처음부터 마음에 두고 있던 사람은 최민수였다.” 그런데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다. “최민수는 어때요?”라고 물으면 모두 농담이라는 듯 “최민수는 무슨 최민수야”라는 반응이었다. 최민수를 캐스팅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은 김혜자. “노부인 역으로 김혜자 선생님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때도 차마 말을 못 꺼냈다. <마더>에서 주연하시던 배우가 우리 영화에서 아이들 도와주는 조연으로 어디 출연할까 싶어 꿈도 안 꿨다.” 용기 내 시나리오를 보냈고, 시나리오를 마음에 들어 한 김혜자와 만났다. 그 자리에서 김성호 감독은 노숙인 역에 최민수 카드를 꺼냈다. 김혜자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훌륭한 생각이에요. 역시 감독이라 다른 것 같아요.”

“‘나는 개가 제일 걱정이야.’ 최민수 선배가 시나리오 읽고 맨 처음 하신 얘기다.” 사실 낙천적 성격의 김성호 감독은 별 걱정이 없었다. 정해진 예산, 한정된 시간과 싸움해야 하는 스탭들 입장에선 사소한 대사와 행동에도 이유와 당위를 따지는 배우가 불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김성호 감독은 “배우들이 편하게 연기할 수 있도록 많은 것을 열어놓자”는 마음으로 촬영장에 갔다. 배우가 편해야 좋은 연기가 나온다는 사실을 <거울속으로>와 그간의 단편 작업을 통해 배웠기 때문이다. “최민수 선배가 원래 말씀이 길다. 시간이 촉박했지만 얘기를 잘 들어주었다. 상황을 설명하면 또 잘 이해해주셨다.” 소통은 결국 잘 들어주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따뜻한 판타지가 필요한 어른들에게

관객의 마음을 훔치는 완벽한 방법

“웨스 앤더슨 영화처럼 나왔으면 했는데….” 감독 본인은 성에 차지 않는다고 했지만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촬영과 미술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까지는 아니더라도 혹은 <찰리와 초콜릿 공장>까지는 아니더라도, 신기한 장난감으로 가득한 거대한 놀이공원에 놀러간 듯한 기분이 들게끔 영화는 공간과 소품, 빛과 컬러를 세심하게 배치했다. 건축을 전공한 감독답게 “신마다 원하는 그림 뽑고, 색깔 뽑고, 소품을 뽑아서 스탭들에게 보여주며” 현실과 판타지가 어우러진 세계를 설계해갔다. 영화는 이솝 우화로 시작해 판타지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현실이 녹록지 않을수록 우리는 판타지를 찾는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결코 ‘애들 오락영화’가 아니다. 우화가 필요한, 따뜻한 판타지가 필요한 어른들을 위한 영화다. 김성호 감독의 첫째딸은 이 영화의 편집본을 미리 본 뒤 이렇게 평했다고 한다. “재밌기는 한데 <7번방의 선물>처럼 막 재밌진 않네.” <7번방의 선물>을 집중해서 보며 엉엉 울던 딸에겐 아빠의 영화가 좀 싱거웠던 모양이다. 김성호 감독은 “천만 드는 영화에는 다 이유가 있나보다, 이 영화는 천만까지는 힘들겠다” 싶었단다. 딸의 마음은 완벽히 훔치지 못했지만 코끝이 찡해지는 감동, 그만큼의 온기가 필요한 관객의 마음은 이 영화로 충분히 훔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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