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미래로의 회귀
2015-01-15
글 : 김혜리
<백 투 더 퓨처2>

올해는 <백 투 더 퓨처>(1985)의 개봉 30주년이자 <백 투 더 퓨처2>(1989)에서 마티(마이클 J. 폭스)가 타임머신을 타고 착륙한 미래다. 작가 봅 게일과 감독 로버트 저메키스가 그린 2015년 상상도 속 화상통화, 안경형 개인용 정보통신기는 현실화됐지만, 공중부양 스케이트보드는 아직 개발 중이라 한다. 영화 속에서 홀로그램판 <죠스19>를 연출한 스필버그 2세- 1985년생 맥스 스필버그- 는 감독을 직업으로 택하지 않았고, <USA투데이>(사진)가 보도한 ‘퀸 다이애나’는 영국 왕비가 되지 못했다. 마티가 도착한 날짜는 10월21일. 누군가 <백 투 더 퓨처> 3부작을 재개봉할 계획이라면 둘도 없는 길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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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루었도다. 피터 잭슨 감독의 <호빗> 3부작(<뜻밖의 여정> <스마우그의 폐허> <다섯 군대 전투>)이 완결됐다. 빌보(마틴 프리먼)는 차가운 길 위에서 매일 밤 그리던 집으로 돌아왔지만 영화로서는 10년 앞서 구현된 미래 <반지의 제왕> 3부작(<반지원정대> <두개의 탑> <왕의 귀환>)의 시발점으로 귀환한 셈이다. 이 연작과 관련해 생각해보아야 할 첫 번째 문제는 부피와 구성이다. <호빗> 영화 세편의 러닝타임은 총 474분으로 8시간에서 조금 모자란다. 이착륙 준비와 식사를 제외하면 얼추 인천에서 뉴질랜드까지 비행하는 시간과 비슷할 것 같다. 나를 포함해 많은 관객이 간간이 투덜대긴 했지만, 긴 상영시간 자체는 영화의 결함일 수 없다. J. R. R. 톨킨의 원작 <호빗>이 딱 한권이라는 사실도 각색한 영화가 세편이어서는 안 될 절대적 근거는 못 된다. 우리는 단편소설에 기초한 훌륭한 장편영화를 평생 보아왔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연출한 <A.I.>의 원작은 브라이언 알디스의 단편 <슈퍼 장난감은 여름 내내 간다>(Super-toys Last All Summer Long)인데 A4 용지로 출력해보면 8장에 불과하다. 따라서 <호빗>을 뚱뚱한 3부작으로 제작한 결정이 합당했느냐의 질문은 다음으로 수렴된다. 피터 잭슨과 동료 작가들이 <반지의 제왕>에 대한 톨킨의 주석을 참조하고 영화적 호소력을 키우기 위해 추가하거나 보강한 (원작에 없는) 인물과 플롯은 얼마나 잘 만들어졌는가?

우선 <호빗> 시리즈의 인물 배치도는, 피터 잭슨과 작가들의 기본적 목표가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전신’ 거울상을 완성하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추측하도록 만든다. 원래 작고 소박한 어린이용 이야기인 <호빗>을 <반지의 제왕>의 등신대(等身大) 프리퀄로 완성하기 위해 선행 3부작의 주요 인물에 상응하는 캐릭터들이 필요하다고 제작진은 판단한 듯하다. 영화를 위해 새로 창조된 요정 타우리엘(에반젤린 릴리)은 삼각 러브 스토리의 중심이 되어 예전 아르웬(리브 타일러)의 자리를 메우고, 호수마을 영주의 비열한 참모로 만들어넣은 인물 알프리드(라이언 게이지)는 <두개의 탑>의 간신 그리마 웜통과 닮은꼴이다. 카리스마 넘치는 액션 영웅의 수를 보강하기 위해 원작에 없는 레골라스(올랜도 블룸)가 재소집됐고 호수마을 사수 바르드(루크 에반스)의 묘사가 늘어났다. 참나무방패 소린(리처드 아미티지)이 보물에 홀려 저지르는 탈선은 <두개의 탑>에서 세오덴 왕이 오랜 세월에 걸쳐 겪은 우여곡절과 맞먹는 무게를 부여받았는데, 이에 소린은 3부작의 피날레에서 타이틀롤인 빌보를 가리고 실질적 주인공으로 보이게 됐다.

문제는 이들이 각기 대응하는 <반지의 제왕> 캐릭터들의 흐린 복사판처럼 보인다는 데에 있다. 비슷한데 덜 매력적이다. 심지어 동일인물인 레골라스도 마찬가지다. 타우리엘은 의지와 무관하게 결국 민폐를 끼치는 지겨운 여성 캐릭터를 넘어서지 못하고 알프리드는 소름끼치는 악당 그리마로부터 소인배의 면모만 이어받았다. 학예회 연극의 늑대처럼 너무 뻔한 방식으로 졸렬해 미워할 의욕도 안 나는 이 캐릭터는 제법 많은 장면을 잡아먹고는 이렇다 할 매듭도 없이 퇴장한다. 레골라스는 <호빗> 시리즈에 이르면 순전히 기능적 캐릭터로 전락한 인상이다. 그는 능력의 한계를 가늠할 수 없는 액션을 과시하는 동시에 삼각 멜로의 한 꼭짓점을 거들고 막판에는 ‘북쪽의 스트라이더’(아라곤)를 찾아 떠남으로써 <반지의 제왕> 3부작을 가리키는 이정표 역할까지 하느라 바쁘다. 그것도 모자라 어머니에 대한 뜬금없는 언급으로 부자 갈등 가족 멜로까지 추가한다. 그럼에도 이 엘프 왕자에 관해 더 잘 알게 됐다는 기분은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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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작의 주제와 감정을 종합해야 할 <다섯 군대 전투>의 결말부는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상투적인 대사로 감흥을 반감시킨다. 마지막 클라이맥스에서 타우리엘이 울먹이며 “사랑이 이런 걸 줄 알았더라면…”이라고 말문을 열 때, 요정왕 스란두일이 아들 레골라스에게 “엄마는… 널 몹시 사랑했단다”라고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결정적 비밀인 양 전할 때 나는 맥이 탁 풀렸다. 이쯤에서 <호빗> 3부작의 시나리오가 이야기로서 얼마나 만족스러운지 돌아보게 된다. <다섯 군대 전투>를 <반지의 제왕>의 최종편인 <왕의 귀환>과 단순히 견주어보면 자립한 영화로서 기승전결이 미비하다는 점이 가장 눈에 띈다. <반지원정대>와 <두개의 탑>을 보지 않은 관객도 <왕의 귀환> 속 사건과 심리에 무리 없이 몰입할 수 있는 반면, <다섯 군대 전투>는 관객이 전작과 이어본다는 사실을 느긋하게 전제한다. 골룸이 반지에 사로잡히게 된 과거를 방문하는 <왕의 귀환>의 도입부와 마치 2편의 결말을 잘라 옮겨놓은 듯한 <다섯 군대 전투>의 오프닝만 비교해도 작법의 차이가 보인다. 톨킨은 전쟁 묘사에 많은 문장을 쓰지 않았다. 그러므로 중간계 6부작에서 시나리오작가들의 중요한 업무는 전투 시퀀스의 설계다. <다섯 군대 전투>의 액션은 보통 액션 블록버스터에 비교해 결코 처지지 않는다. 서로 다른 특기를 가진 다양한 종족 전사들의 격돌은 볼거리로 충만하고 또렷이 전달된다. 그러나 전황의 큰 흐름을 조망할 수 있었던 <두개의 탑>과 <왕의 귀환>에 비해 <다섯 군대 전투>는 일대일 전투에 집중하며 그래서 결국 어떻게 이쪽이 저쪽을 제압하게 됐는지는 시야 바깥으로 밀려나 있다(우스갯소리지만 ‘다섯 군대’가 누구누구인지에 관해서도 설왕설래가 있다).

인물의 각인과 관련해서도 <호빗> 3부작의 서사는 전체적으로 다소 요령부득이다. 투여된 장대한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중간계의 충실한 추종자가 아닌 보통 관객은 소린과 킬리를 제외한 열두명의 난쟁이를 구별하고 개성을 인지하기 어렵다. 아니, 역설적으로 이 어려움은 영화가 장대해서다. 3부에 걸쳐 서너곳에 흩어진 인물을 순환 편집하는 긴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기억은 자꾸 씻겨나가는 데 시나리오는 강약을 주기보다 더 많이 나열하는 데에 관심이 있다. <호빗> 3부작이 소개한 인물 중 팬들의 앨범에 간직될 만한 인물로는 환경친화적인 갈색의 마법사 라다가스트(실베스터 매코이) 정도를 꼽을 수 있을 듯하다(원작에서는 딱 한줄, 간달프의 사촌으로 언급된다). 그러나 라다가스트의 시퀀스도 자체로서는 유쾌하지만 <호빗>의 전체 여정에서 차지해야 마땅할 비율로 보면 지나치게 길고 겉돈다. 멋지지만 겉돈다는 문제는 <다섯 군대 전투> 중 정겨운 ‘동창회’처럼 들어간 갈라드리엘과 엘론드, 사루만의 액션 시퀀스에도 해당된다.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모험이되 어디까지나 작은 소시민이 중심에 서 있던 소박한 스토리가 먼저 도래한 뒷날의 서사극에 몸을 맞추다가 산산이 흩어진 인상이다.

결국 <호빗> 3부작이 이야기로서 내게 남긴 아쉬움은, 단순하고 자명한 하나의 균열로 거듭 회귀한다. 톨킨에게 <호빗>은 그냥 <호빗>이었고 피터 잭슨에게 <호빗>은 <반지의 제왕>의 프리퀄이었다. 전자는 씨앗이었고 후자는 주석이다. (다음에 계속)

<마다가스카의 펭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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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님, 여긴 어쩐 일로?

베르너 헤어초크 감독은 영화도 삶도 비범한 인물이다. 약속을 지키느라 구두를 먹은 적도 있고 인터뷰 도중 총에 맞고도 “총알이 별로 안 크다”며 대화를 계속한 일화가 전해진다. 무엇보다 화법과 억양이 범상치 않은데 그의 다큐멘터리 관객은 감독이 직접 넣은 내레이션을 통해, 하늘이 두쪽나도 태연한 산신령 같은 말투를 만끽할 수 있다. 헤어초크의 최신작은 놀랍게도 <마다가스카의 펭귄>. 본인의 남극 다큐멘터리 <세상 끝과의 조우>(2007)에서 “펭귄에게도 광기가 있을까요?” 진지하게 질문했던 노장은 <마다가스카의 펭귄>에 자연다큐멘터리 해설자 겸 리포터로 천연덕스럽게 등장한다. 노장의 카메오는 유쾌한 개그와 탁월한 목소리 연기가 넘치는 이 애니메이션의 오디오적 재미 중에서도 백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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