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이 밝은 밤이었다. 정자에 앉아 달을 보며 손수 빚은 술을 마시자고 산기슭에 모인 무도인들은 내가 신은 앵클부츠를 보더니 난색을 표했다. “힘드실 텐데….” “동네 등산로 정도는 괜찮아요.” “그게… 길이 없거든요.” 이보시오, 무도를 걷는 이들은 도(道)가 아니면 검을 뽑지 않으며 길이 아니면 가지 않는 거 아니었소. 그날 밤 나무뿌리와 덤불에 걸려 비틀거리면서 길이 아닌 길을 오르며, 나는 꿈을 꾸었다, 만화 <비천무>의 진하처럼 대나무 향기 그윽한 죽엽청주를 음미하는 꿈을. 천신만고 끝에 버려진 정자에 오르니, 과연 그러했다, 나는 그저 꿈을 꾸었던 것이다.
제대로 익었는지 모르겠다며 무도인들이 꺼낸 술은 맥주요, 신경 써서 마련했다며 내놓은 안주는 하몬이었다. “저, 전통 무예를 하면 전통주를 마시는 거 아니었….” 달빛에 비친 무도인들의 눈빛은 서늘했다. “저희는 맥주 좋아합니다.” 아, 네. 그렇게 술잔을 기울이며 무도인들은 살찌는 법을 논하기 시작했고, 며칠 전에야 90kg을 간신히 넘겼다는 사제는 수련이 부족하다며 호되게 꾸지람을 당했다. “근데, 무예를 하면 살이 빠지는 거 아니었….” 일제히 술잔을 입에서 떼고 나를 보는 무도인들의 눈빛은 매서웠다. “사나이로 태어났으면 몸무게 100kg은 넘겨봐야지요.” 아, 네.
무인의 도를 논하는 <그 남자의 무술 이야기>라는 책은 이렇게 말한다. “무술하는 사람들은 잘 먹어야 한다. 파워를 키우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체중을 늘리되 그 체중을 부담스럽게 여기지 않을 만큼의 체력을 같이 키우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술인의 식사 습관은 다이어트와는 맞지 않는다.” 그 사제는 화장실에 가야겠다는, 자기 체중의 반이 넘는 나를 문자 그대로 짊어지고 산길을 내려갔다. 그러니 무거운 자는 강하고 강한 자는 무거운 법, 하여 무예로써 몸이 가벼워지리라는 건 하룻밤 꿈에 불과할지니… 그들이 어떤 무예를 연마했는지는 비밀에 부치련다(다만 보법(步法)을 중시하는 유파였다고만 말할 수 있겠는데, 옛 무인들은 “손으로는 3푼을 치고 발로는 7푼을 친다”(手打三分步打七)고 했으니 한국의 전통 무예 대부분은 보법을 중시한다). 아무튼 무도인의 도라는 것은 범인(凡人)이 짐작하는 바와는 한참 멀고도 다르다는 이치를 깨달은 달밤이었다.
무도라 함은 먼 옛날부터 그토록 기이했던가. 대충 수백살은 먹었을 것 같은 칠선(七仙)이 아직도 정정하게 나오는(심지어 그중 한명은 새삼스럽게 늦둥이를 봐서 그 딸이 20대) <아라한 장풍대작전>을 보면 기이하기는 기이하되 현재와 그리 다를 것도 없다. 산중에 살다 보니 아침밥 지으면 점심때가 되고, 점심 해서 상 치우면 피곤하니까 한숨 자고, 일어나면 해 저물어 저녁 먹어야 했다니, 이건 그냥 2014년의 리얼리티 프로그램 <삼시세끼>다(그 와중에 고기를 안 먹으면 어찌 무술을 하냐고 푸념하면서도 새로 들어와서 만만한 제자한테는 상추만 먹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무릇 회식이라면 고긴데). 어찌하여 사랑은 변하는데 사람만 변치 않는가.
아니, 변해야 한다. 그러니까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낸다는 거다. 그 옛날 신선은 이슬과 풀씨만 먹고도 육십갑자의 내공을 쌓았는지 몰라도 미세 먼지 창궐하는 현대 한국의 인간은 지방을 먹어야 무거워진다, 아니, 강해진다. 그리하여 새로운 시대의 무도인들은 지방과 나트륨의 보고, 크림소스 파스타보다도 무섭다는 짜장면집 근처에 둥지를 틀었으니, 바야흐로 삼김(三金) 시대가 재래했다. 택견과 검도, 쿵후 사범이 동일 건물주 중국집 사장님 아래 머리를 조아리고 사는 <김관장 대 김관장 대 김관장>이다.
사람이 운동을 하면 너그러워지나 보다… 자기한테만. <그 남자의 무술 이야기>도 포화지방 말고 올리브기름과 등푸른생선으로 살을 찌워야 한다고 했는데 이 사범들은 탕수육과 군만두로 회식을 하고 짜장면과 짬뽕을 나눠 먹으며 강호의 정을 쌓는다(나한테는 맥주 끊으라더니 밤새 술 마시고 새벽에 빅맥으로 해장했다고 자랑하는 헬스 트레이너에게 항의하자 그가 말했다, 난 그래도 돼요, 근육량이 많으니까. 그리고 눈으로 말했지, 하지만 넌 안 돼). 그 영화에서 바보 노릇 하다가 하얀 바지저고리에 하회탈을 쓰고 동네 건달 상대로 영웅의 정체를 드러냈던 택견 사범 신현준은 그로부터 6년 뒤에 바보 노릇 하다가 하얀 바지저고리에 각시탈을 쓰고 일제를 상대로 영웅의 정체를 드러내니(드라마 <각시탈>), 스스로 강해진 자는 더욱 강한 자를 찾는 것이 무도인의 숙명이런가.
실제 고수들의 이야기를 엮은 책 <한국의 무림 고수를 찾아서>에 의하면 해방 직후 국내 무술계엔 절대고수 다섯명이 있었다. 청도관, 송무관, 연무관, 무덕관, YMCA 권법부(마지막이 조금 만화 제목 같지만 혼란한 시대의 세련된 이름이라 믿도록 하자)의 대사범들. 하지만 이들은 후세가 짐작하는 것처럼 서로 도전하여 승자가 패자의 도장 간판을 떼는 일은 없었다고 하니, 한 남자 최배달이 동네방네 간판 털고 다니는 영화 <바람의 파이터>는 어디까지나 일본의 이야기라 전해진다. “기술을 완성하려면 한번에 천개를 연습하라”는(예를 들면 발차기를 한번 시작했다 하면 천번을 하기 전까지는 뻗은 다리를 거두지 말라는) 말을 남긴 최배달은 영화가 끝날 무렵 숙적을 꺾고 더욱 강한 적을 찾아나서는데, 그렇게 찾은 강적이… 황소. 타고난 힘만 셌지 발차기 천개 연습한 적도 없어 스킬 전무한 황소 47마리를 산속에서 거지꼴이 되도록 수련한 인간이 이겨먹고, 그중 4마리가 즉사했다고 자랑. 우계(牛界)에 길이 남을 절대악 사우론이 되셨습니다.
영화 <돌려차기>는 태권도란 먼저 공격하지 않고 맨손과 맨발로 방어하는 무술이라고 가르치지만, 대부분 사람은 강해지고 싶어서 무도에 들어선다. 남자가 많은 곳에 있고 싶었던 친구한테 끌려가 석달 태권도를 수련했던 나는 100m를 20초에 달리던 15년 인생 끝에 최초로 19초를 끊었다. 1초만큼 강해졌다. 하지만 친구가 애인을 만들면서 더불어 도장을 그만두고 나니 내 생에 그런 찬란한 순간은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안녕, 19초의 환희여, 짧아진 1초의 기쁨이여.
장풍은 잡기에 불과하지
무도인들이 청출어람의 제자를 얻기 위해 필요한 두세 가지 유혹의 무기
합법성
<한국의 무림 고수를 찾아서>에서 초기 태권도 사범 지승원은 진정한 무술은 사라지고 스포츠만 남은 현실을 탄식하며 말한다. “태권도는 발생 초기 삶과 죽음을 결판 짓는 무술로 출발했던 겁니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다. 태권도로 삶과 죽음을 결판 짓다가는 잡혀간다. 맞고는 살 수가 없다며 애들을 패다가 유치장에 갇힌 <돌려차기>의 용객(김동완)이 깨달은 것도 그런 이치, “싸움하면서 주먹 쓰면 깜빵에 가지만 운동하면서 주먹 쓰면 대학에 간다”이다.
장풍
<아라한 장풍대작전>의 상환(류승범)은 유독 장풍에 집착한다(스승들이 장풍을 많이 쓰기는 한다. 제목이 괜히 ‘장풍대작전’이겠는가). 자운(안성기)은 고수로 만들어주겠다는데도 더럽게 말 안 듣는 상환을 장풍으로 유혹한다. “교습비는 장풍의 급과 크기에 따라 달라지는데 말이야….” 참고로 <한국의 무림 고수를 찾아서>의 당랑권 고수 이덕강에 따르면 장풍은 무술이 아니라 ‘잡기’라고 한다.
명언
그 옛날 도련님이었(지만 지금은 그냥 거지꼴)다며 어른한테 꼬박꼬박 반말 쓰는 <바람의 파이터>의 최배달(양동근)은 그 옛날 머슴이었(고 지금도 그냥 머슴꼴)던 범수(정두홍)의 명언에 반한다. “힘없는 정의는 무능이요,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다.” “천번을 수련하면 극진에 이르고.” “무사는 명분이 없으면 칼을 뽑지 않는다.” (근데 사실 칼도 없음.) 무인들은 자신의 무용담을 하도 많이 되풀이하다 보니 입담이 좋다는 설이 있는데, 궁극의 발연기를 시전하면서도 명언에만은 무게가 실리는 정두홍을 보면 그럴 법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