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 윤형주, 송창식, 이장희, 김세환 등 한국 대중음악에 포크 바람을 불러일으킨 무교동 음악 감상실 쎄시봉. 김현석 감독의 신작 <쎄시봉>은 1960년대 후반 최고의 ‘핫플레이스’였던 쎄시봉을 스크린으로 불러들인 작품이다. 물론 쎄시봉 멤버들이 주인공은 아니다. 김현석 감독은 근태(정우, 김윤석)와 자영(한효주, 김희애)이라는 가상의 두 남녀를 주인공으로 설정해 <쎄시봉>이라는 사랑의 악보에 수놓는다. 김 감독은 “누구나 순애보를 가지고 있다. 평소 발현하지 못하며 살고 있을 뿐. 쎄시봉 멤버들이 젊게 사는 이유도 늘 사랑하며 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 영화 주제는 사랑합시다일 수도 있겠다. 사랑하는 마음보다 더 좋은 건 없다”고 개봉을 앞둔 소감을 말했다.
-영화가 첫 공개됐는데 기분이 어떤가.
=잘 모르겠다. 그냥….
-쎄시봉 멤버들은 영화를 봤나.
=윤형주 선생님만 프로모션 쇼케이스를 도와주면서 미리 보셨다. 나머지 분들은 VIP 시사회 때 보실 예정이다. 윤형주 선생님 반응은 어땠냐고? 무척 좋아하시더라. (웃음) 관객 반응이 ‘핫’한 것도 좋아하시고.
-4년 전 방영된 예능 프로그램 <놀러와>에 출연한 쎄시봉을 보면서 영화로 만들어야겠다 생각했다고 들었다. 방송에 다시 소개된 그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나.
=그분들이 되게 젊게 사시잖나. 그게 신기했다. 저렇게 젊게 사시는 비결이 무엇일까 궁금하기도 했고. 원래 쎄시봉 음악들을 좋아했는데 그중 <웨딩케이크>를 즐겨 들었다. 경쾌한 원곡과 달리 송창식 선생님이 가사를 쓴 번안곡은 되게 슬프다. 경쾌한 곡이 어쩌다가 슬픈 노래로 바뀌었나 상상하면서 영화 <쎄시봉>이 시작됐다. 쎄시봉의 복고 열풍을 이용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웨딩케이크> 말고 또 좋아하는 노래가 있나.
=<사랑이야>와 <우리들의 이야기>도 좋아한다. 어릴 때 음악 취향이 앞서가진 않았던 것 같다. 당시 우리 또래는 록음악 하면 메탈리카 이런 걸 들었는데, 그냥 클래식한 음악들을 좋아했다. 새로운 음악을 시도하기보다 검증된 음악을 들어야 시간 낭비를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영화는 쎄시봉 멤버들이 주인공이 아니다. 실존 인물들을 소재로 하면서 실존 인물이 아닌 근태와 자영이라는 가상 인물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이유가 무엇인가.
=실제 쎄시봉 멤버들은 워낙 많이 알려졌다. ‘그분들이 이래서 레전드입니다’ 같은 얘길 하는 건 의욕이 안났다. 새로운 허구가 개입할 여지가 없으니 가상 인물을 주인공으로 설정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실제 있었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먼저 배치해놓고, 가상 인물이 이렇게 저렇게 개입할 수 있지 않을까 상상력을 발휘했던 거다. 그러는 편이 창작의 재미가 있었다.
-쎄시봉 멤버들이 영화화를 흔쾌히 허락했다던데.
=그렇다. 그만큼 생각이 깨어 있고, 젊게 사시니까 가능했던 것 같다.
-시나리오는 한번에 쭉 써지던가.
=컴퓨터 앞에 앉기까지가 힘들었다. 만 2년 걸렸다. 20대 시절의 그들이 만나 함께 음악을 하는 에피소드를 생각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창작이 개입하는 건 그들의 40대 시절 이야기였다. 머나먼 미국 땅에서 20년만에 재회했을 때 근태와 자영 사이에 있었던 진실은 무엇일까. 그 끝을 알아야 이야기가 오락가락하지 않고 목적지까지 당도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근태의 40대 시절을 연기한 (김)윤석 선배가 애써 참아왔던 눈물을 흘리는 순간을 향해 영화가 가는 거다. 그걸 정리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자료를 조사할 때 무엇을 취하고 버릴 것인지 나누는 기준은 무엇이었나.
=굵직한 에피소드가 되게 많았지만, 우리는 트윈 폴리오에 집중했다. 영화를 보면 연도가 구체적이지 않고, ‘60년대 후반’식으로 애매하게 표기된 것도 사건들을 필요에 따라 재배치했기 때문이다. 가령 트윈 폴리오가 대마초 사건 때문에 해체된 게 아닌데 영화적 맥락에 따라 재배열했다.
-40대 근태 역을 맡은 김윤석을 가장 먼저 캐스팅했다고 들었다. 비슷한 이미지를 가진 한효주와 김희애가 20대와 40대 시절을 각각 연기한 민자영과 달리 오근태를 맡은 정우와 김윤석은 이미지가 너무 다르지 않나.
=(김)윤석 선배가 그동안 ‘19금 영화’를 많이 하지 않았나. <황해>의 ‘면가’ 이런 거. (웃음) 그런 김윤석이 멜로를? 순애보를? 세상에. 이같은 효과를 기대한 것도 있고. 20년 전 그 사건 때문에 근태의 인생이 바뀐 거잖아. 순박했던 사람이 차가운 눈빛이 된 변화를 정우와 윤석 선배를 통해 보여줄 수 있겠다 싶었다.
-근태는 참고한 모델이 있나.
=이현세 만화 속 남자주인공? 남자들의 판타지지. (웃음) 예전에는 멜로영화가 많았는데 어느 순간 순애보가 많이 사라진 것 같다. 옛날에는 내가 <광식이 동생 광태>의 광식이나 근태 같았다. 30대 때도 그런 모습이 좀 남아 있었고. <시라노; 연애조작단>(2010)을 하고 난 뒤 더이상 멜로를 하기 싫었던 건 내가 건조해져서였던 것 같다. 그래서 다른 걸(<열한시>) 해보기도 했지만, 그런 나에 대한 안티 기제로 나온 게 <쎄시봉>이었던 것 같다.
-자영이 “근태야, 날 위해 뭘 해줄 수 있니?”라고 물었을 때 근태가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를 부른다. 순수한 근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집 한채 사주겠다는 말만 했어도…. (웃음)
=한심하잖아. (웃음) 근태니까 가능한 거다. 그 순간 자영에게 평생 노래해주고 싶은 거지.
-그러고 보면 근태는 <광식이 동생 광태>의 광식, <스카우트>의 호창 등 당신 영화 속 지질한 남자들의 계보도에 포함시킬 만하다.
=그 남자들이 지질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 앞에서는 모두 불완전하잖나. 근태가 바보가 아니라 누군가를 좋아하면 바보가 되는거다. 사랑 앞에서 불완전한 남자들의 성장담을 얘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자영은 마냥 착한 여자는 아니다. 그런 자영을 한효주가 연기하니 꽤 매력적이었다.
=의도한 건 아니다. 좋은 배우와 함께 작업했을 때 얻을 수 있는 희열감 같은 건데…. 시나리오를 쓸 때 여자 캐릭터를 100% 이해하지 못한다. 작가로서 못 채우는 부분도, 배우에게 의지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 자영은 착하진 않지만 이해가 가는 여자인데, 효주씨가 잘 표현했다.
-영화는 근태와 자영의 안타까운 사랑을 그린 멜로드라마다. 둘의 사연이 <웨딩케이크> 가사를 떠올리게 한다.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에서 <웨딩케이크>가 나올 때 등장하는 컷들이 가사의 내용이잖나. 재미있었던 건 민자영이 <웨딩케이크> 가사를 쓴 것으로 설정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윤형주, 송창식 선생님이 함께 쓴 건데, 그분들이 자영이 쓴 것으로까지 허락해 주셨다.
-근태와 자영이 통금 시간을 앞두고 텅 빈 도로를 힘차게 달리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쥴 앤 짐>에서 세 남녀주인공이 달리는 장면처럼 찍어놨더라.
=편집 때 잘린 장면인데, 통금 시간에 걸리기 전에 두 사람이 본 영화가 <쥴 앤 짐>이었다. 극장에서 개봉 안 했으니 프랑스문화원 같은 데서 봤다고 치고. 영화를 본 자영이 근태에게 “잔 모로 같은 여배우가 되고 싶어”라고 말했다. 다 찍어놓고 잘랐다.
-송창식(조복래), 윤형주(강하늘), 이장희(진구) 등 실존인물 캐스팅에도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실제 쎄시봉 멤버들의 캐릭터가 각양각색이다. 윤형주는 ‘엄친아’였고, 송창식은 노래 천재였고. 송창식과 윤형주는 노래 위주로 오디션을 보고 뽑았다. 강하늘씨가 지금은 주목받는 배우로 성장했지만 영화를 찍기전에는 아니었던 까닭에 오디션을 거쳐야 했다.
-진구와 장현성이 20대 시절과 40대 시절을 각각 연기한 이장희가 가장 중요했을 것 같다.
=정말 신경 썼다. 영화의 화자이기도 했고, 개성 강한 그들 사이에서 리더 같은 사람이었고. 이장희 선생님이 부르면 쎄시봉 멤버들이 다 모인다더라. 사실 진구는 처음에 반대했다. 잘생겼잖아. 캐릭터 조합에서 잘생긴 건 윤형주한테 몰아줘야 했다. 그런데 진구의 소속사 BH엔터테인먼트 손석우 대표가 만나보라고 해서 만났다. 실제로 정말 웃기고, 능글맞더라. 그가 배우들을 데리고 골목대장을 했다. 배우들 사이의 ‘케미’가 좋았던 건 진구의 노력 덕분이다.
-1960년대 장면은 1.85:1로,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장면은 2.35:1로 찍었다. 시대별로 각기 다른 화면비로 촬영한 이유가 무엇인가.
=콘티 작업할 때 나는 이 영화 전체가 2.35:1, 이모개 촬영감독은 1.85:1이라고 생각했다. 40대 시절에 꽂혀 있었기 때문에 미국 캘리포니아의 풍경을 넓은 화면비로 보여주고 싶었다. 무엇보다 투숏(two shot)을 찍을 때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감이 좀더 멀어져 보이고, 두 주인공 남녀의 어색한 감정을 강조하고 싶었다. 반면, 이모개 촬영감독은 20대 시절에 꽂혀 있어서 풀스크린 느낌의 1.85:1로 찍고 싶어 하셨고.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시대별로 각기 다른 화면비로 찍기로 했다. 현재와 과거의 교차편집이 몇 장면 있긴 하나 대체로 과거와 현재가 시간순으로 분리되어 있으니까 어렵진 않았다. 화면비를 나누기로 결정하기 전에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보지 않았는데, 화면비가 자유자재로 변하는 그 영화를 보니 이상하지 않겠다 싶었다.
-미국 촬영은 처음 아닌가. 어땠나.
=해외 촬영의 로망이 있지 않나. 할리우드에서 찍는 건 특히 그렇다. 인상적이었던 건 정말 칼같이 진행된다는 것이다.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어야 하고 휴식을 취해야 한다. 우리도 표준계약서를 썼지만 그들은 우리보다 더욱 엄격하더라. 제일 중요한 장면이 공항 시퀀스였는데 사람이 많아 오후 6시까지 무조건 끝내야 했다. (김)윤석 선배가 티케팅을 하는 장면을 찍으니 5시58분에 끝났다. 나머지 2분 동안 (김)희애 선배가 주저앉는 장면을 찍어야 했다. 그래서 윤석 선배를 찍는 동안 B카메라가 레일을 깐 뒤 대기한 다음, 정 시간이 부족하면 날린다 싶은 심정으로 희애 선배 장면을 후다닥 찍었다. 시간에 쫓겨보니 오히려 집중할 수 있어 좋았다.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감독 이은)의 연출부, <섬>(감독 김기덕)의 조감독을 하면서 누구보다 빨리 찍는 것을 가까이서 지켜봐왔고, 실제로도 빨리 찍는 걸로 유명해 미국의 방식이 아주 낯설진 않았겠다.
=그렇지. 한국에서도 늘 그랬으니까. 빨리 찍으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이 밤새우려고 해서 못 견뎌했다. (웃음)
-시퀀스마다 쎄시봉 음악들이 적절하게 배치된 것 같다.
=<웨딩케이크>는 내러티브에 큰 영향을 끼쳤고.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는 각색하면서 눈에 띄었다. 영화를 보면 이렇게 슬픈 노래일 줄 모를 거다. <하얀 손수건>과 <조개 껍질 묶어> <딜라일라>처럼 배우들이 불러야 할 곡은 저작권료가 비쌌다. <백일몽>이나 <웬 더 세인츠 고 마칭 인>(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은 저작권료가 없는 곡이었고.
-전작 <열한시>가 흥행에 실패하면서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결과적으로 <열한시>를 한 게 <쎄시봉>을 하는 데 도움이 됐다. 가족이 있었더라면 다시는 멜로를 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안 했을 텐데. (웃음) 그럼에도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같은 결정을 할 것 같다.
-차기작은 무엇인가. 역시 잘할 수 있는 장르를 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도전을 할 것인가.
=어떤 이야기가 될지 모르겠지만 내가 쓴 시나리오로 하고 싶다. 시나리오작가이기도 해서 시나리오를 쓸 때 이미 연출을 하고 있더라. <열한시>가 현장에서 힘들었던 건 시작부터 하지 못해 헷갈렸던 게 있었기 때문이다. 직접 쓴 시나리오로 연출을 할 때는 모르는 것 없이 배우들에게 다 전달할 수 있었다. 물론 아직 내공이 안 쌓여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앞으로는 직접 쓴 시나리오로만 연출할 생각이다.
개봉을 앞둔 김현석 감독은 무덤덤했다. 전작 <열한시> 때도 무덤덤했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그때 무덤덤했던 것과 지금은 다른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 말에는 잘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다시 꺼내 들었다는 자신감과 전작의 흥행 실패를 극복하겠다는 굳은 각오가 느껴졌다. <쎄시봉>이 관객으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진 모르겠지만, <광식이 동생 광태>의 광식, <스카우트>의 호창 같은 사랑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김현석표’ 남자들을 다시 만날 수 있게 된 건 무척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