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진우 기자의 손에 휴대폰이 두 대다. “저 이거 말고도 휴대폰 많아요.” 소송이 끊이지 않는 민감한 사건들만 골라 담당하는 대한민국 피소송 전문 기자 주진우는, 제보자들 각각을 상대하는 휴대폰을 따로 둔다. 이렇게 만든 휴대폰이 많게는 무려 40대에 이른 적도 있다고 한다. 20여년 기자생활을 하는 동안 그는 이 많은 통로를 통해 사회의 감춰진 이면을 ‘들었다’. 삼성을 해부하고, MB를 비판하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질문을 던지는 데 있어 지치지 않고 앞장서왔다. 강자 앞에서 쫄지 않은 대가로 그는 100여건의 고소고발에 휘말렸고, 수십여 차례 소환당했다. <주기자의 사법활극>은 무고한 사람들이 소송으로 피해를 당할 경우 알려주는 주진우 기자의 팁이다. 절대 남의 일이라고 치부해버릴 수 없다. 약자가 이유 없이 당하는 세상, 그러니 이 ‘실용서’는 슬픈 우리 시대의 고발서이기도 하다. 쌍용차 해고노동자 복직에 앞장서 광화문에서 일인 시위를 하고 있는 배우 김의성은 이런 주진우를 믿고 지지해주는 사람이다. 병든 사회를 향해 뜻을 같이해 만난 둘은 이제 마음이 통해, 서로를 위해 달려가주는 사람이 됐다. <시사IN>에 재직 중인 주진우 기자의 새 책 출간을 기념해, 김의성이 주진우를 만났다.
김의성_사실 주진우 기자가 여기서 이러고 있을 사람이 아닌데. (웃음) <선데이서울>에나 나올 것 같은 기사도 쓰고, 한국 조폭의 계보도도 파고 그런 주 기자의 재밌는 탐사보도 기사를 보고 싶은데. 지금은 그런 걸 하고 있을 여유가 없으니 자기가 앞에 나가서 싸우는 거 아닌가.
주진우_나는 정말 로맨스를 꿈꾸는 사람이다. 내가 맨 앞에 나서서 정권이나 권력에 돌 던지는 사람이 될 줄은 몰랐다. 다른 기자들이 외면하려고 하니까 나라도 하자 해서 한 건데, 지금의 삶은 내가 꿈꾸던 삶과는 전혀 다르다. 강풀 작가나 류승완 감독, 이렇게 마음 맞는 사람들이 다 같이 만나도 나나 승완 형은 주로 듣고, 김의성 선배가 이야기를 주도하는 편이다. 재밌고 박학다식하다. 기자보다 더 용감하다. 난 말도 잘 못하고, 남의 말 듣는 거나 잘하지.
김의성_지금은 기자가 사실에 대해서 쓰는 게 힘들어진 시대다. 일반 시민들은 더하다. 말을 하는 것,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것을 자꾸 스스로 검열하게 된다. 법, 제도, 공권력보다 주변의 만류나 나 스스로가 검열한다는 게 더 무서운 거다. 그런 지점들을 생각하면 정말 화가 난다. 그럴 때일수록 나라도 더 하자, 광화문에 나가고, ‘굴뚝데이’도 가고. 그렇게 나의 의사를 표현하는 거다.
MB 자서전에 주석서 쓰고 싶네
주진우_금기된 것들을 깨기 위해 바깥에 피켓 들고 나와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건 정말 존경받아 마땅한 일이다. 기자야 원래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니 내가 이러는 거야 대단할 것도 없다.
김의성_난 나에게 힘든 일이 생기면 금방 포기할 것 같다. 할 만하니까 하는 거다. 그런데 할 만하지 않은데도 이렇게 나서는 사람들을 보면 경이롭다. 다른 걸 다 떠나 소송이 얼마나 피말리는 일인가. 소송은 고소하는 입장이라도 힘드는 일이다. 법정에 가면 내가 죄를 지은 것처럼 취급받는다. 그런데 주 기자처럼 당장 감옥에 갈 위기에 처하고, 매일 배상액이 늘어나는 삶은 상상하기 힘들다. 그러니 늘 이 사람은 만나면 응원해주고 싶다.
주진우_소송은 사람을 진 빠지게 한다. 박지만, 박근혜가 나를 고소하고(알려졌듯이 주진우 기자는 박지만 5촌 살인사건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죄로 고소당했다. 최근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이 사건은 다시 대법원에 상고된 상태다), 머리 좋은 검사가 그들의 외아들처럼 옆에서 칼을 휘두른다. 2년 동안 칼춤을 추는데, 거기서 겨우 살아남았다. 솔직히 고통스럽다. 무죄를 받아도, 그래서 뭐? 이런 생각이 든다. 무죄지만 이미 너무 많은 희생이 따랐고 삶은 피폐해졌다. 다시 대법원에도 가야 하고, 이것 말고 다른 소송도 줄을 섰다. 소송은 이제 권력이 국민과 언론의 입을 막는 효과적인 도구가 됐다.
김의성_법을 제일 잘 알고 그 범위 안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 판검사인데, 그들은 정작 조직이나 권력을 보호하느라 바쁘다. 이렇게 되면 누가 법을 신뢰하겠나. 결국 지배받는 사람뿐 아니라 힘을 가지고 쥐고 다스리는 사람에게도 좋지 않은 일이다. 보수도 아니고 이건 그냥 파렴치한 행위지 싶다. 이런 시대에 주진우는 참 특이한 유전자로 대항한다. 한마디로 별나다. 철이 없는 것일 수도 있는데, ‘겁’의 임계점이 높다. 그런데 반면 공감하는 능력은 필요 없이 높다. 그러니 득도 없는 일에 그렇게 겁 없이 행동한다. 강한 사람에게 뻗대는 거다. 잘못 풀렸으면 딱 조폭감인데, 그래서 지금은 피소송의 전문가가 된 거다.
주진우_난 권력을 참 많이 괴롭혀왔다. 세상에는 법 없이 살 수 있는 선량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세월호 참사 앞에서 욕도 많이 했다. 유모차 끌고 우리 아이 잘 살게 해달라고 나온 그런 사람들이 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원을 물었다.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을 부정하는 댓글을 올리면 처벌받고 상대 후보를 욕하면 칭찬받는 나라다. 법이 무고한 사람들을 위협하는 도구가 됐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려주고 싶었다. 여유를 가지면 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책도 낸 거다. 그런데 서점 가면 MB 자서전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MB 전문가로서 내가 그 거짓말로 쓴 자서전 챕터 하나하나 반박하는 주석서를 쓰고 싶다. (웃음)
김의성_주진우라는 사람을 알게 돼서 좋은 점이 많다. 우선 멋진 기자, 만나서 이야기하면 위로가 되는 기자를 알게 돼서 좋다. 실용적으로도 필요한 사람을 얻었다. 난 아이도 없고 나이도 많고 장래에 대한 고민도 많지 않아 잃을 게 없긴 하지만 혹시라도 쌍용차에서 소송을 제기하면 조언을 얻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전문가를 얻은 거다. 일종의 보험 든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런데 이번 책으로 받은 도움은 그보다 더 크다. 무서워하거나 도망다니는 게 능사가 아니다, 이 사람들은 이런 논리에서 국민들을 억압하려고 하지만 당당히 맞서자. 그걸 너무 많이 겪은 주진우가 알려주는 노하우를 통해서 우리도 큰일 안 나는구나, 우리도 당당해질 수 있구나 하는 안도와 용기를 얻었다.
스크린쿼터보다 지금의 검열 문제가 더 심각
주진우_강자한테 강하고 약자한테 약해야 한다, 는 말은 하지만 잘 안된다. 검사들 보면 권력에는 강하고 국민에게는 약하다. 반항해야 한다. 법을 우습게 아는 검사들에게 대드는 사람이 한둘은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가 지금은 나의 일이 아니고, 나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용산, 쌍용, 강정, 세월호 다 결국 우리의 아픈 문제다. 우리 이웃, 형제, 내 이야기가 될 수 있는데, 아픈 문제니 외면하려는 마음이 앞선다. 그럴 때 연대의식이 필요하다.
김의성_내가 엉겁결에 광화문에도 나가고 굴뚝데이도 경험하면서 느낀 건 그 경험이 참 소중하다는 것이다. 연대나 저항, 이런 것들이 소수활동가 중심의 일이 되어버렸다. 금전적 후원을 하는 것도 소중하지만 자기 목소리를 내고 사람들과 손잡는 행동이 필요하다. 지금 영화계도 상황이 심각하다.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에 대한 부산시의 압박의 본질을 보자. 결국 부산국제영화제에 영향을 미치려는 게 가장 큰 목적이다. 그뿐 아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영화제 출품작을 다 사전 검열하겠다는 안을 내놨는데, 정말 상상초월이다. 영화의 사전검열 없앤 게 90년대 초반의 일이다. 영화인들이 어마어마하게 싸워서 해낸 거다. 내가 내 의지로 살아가는 성인인데 왜 누군가가 나의 볼 권리를 박탈하냐, 쟁취해서 지금의 결과를 얻은 거다. 그런데 그걸 다시 하겠다고 한다. 20년도 넘은 그때로 시계를 다시 돌리겠다고 하고 있다. 한 발짝도 양보할 수 없는 사안이다.
주진우_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에서 80년대 군사정권 때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언론이 제일 먼저 넘어가 그들의 입과 발이 돼서 부역을 하고 있다. 영화계는 그 간섭에 가장 저항적인 집단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가장 많이 공감한 이들이 영화인이었다. 광화문 천막농성에서도 영화인들이 연대를 보여줬다. 우리 사회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성명서를 내고 인터뷰를 통해, 글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해왔다. 이미 이런 목소리에 대한 두려움은 MB 때부터 있었고, 유인촌 전 서울시장은 영화인은 좌파고 갈아치워야 한다는 사고방식이었다. 지금은 본격적으로 손톱을 드러낸 거다. 그러니 영화인들이 버텨야 한다. 사상의 자유를 지켜야 한다.
김의성_지금의 사태를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게 정부가 원하는 게 영화제를 보수적인 집단으로, 자신들의 논리대로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은 영화계를 망가뜨리려고 한다. 큰 영화제, 자기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게 싫으니 영화계를 재미없게 만들어서 망하게 하자는 전략이다. 스크린쿼터 때와는 비교 불가할 정도로 중요한 사안이다. 권력을 유지하려는 목적으로 지금까지 영화계가 쌓아온 모든 걸 무너뜨리려고 한다.
주진우_그래서 그런 상식도 없는 사람들과 싸우는 게 제일 힘들다. 광주비엔날레도 마찬가지 경우였다. 얘기한 것처럼 그들은 지금껏 오랫동안 많은 시간 공들여 만든 영화제를 원치 않는 거다. 영화계에 대한 이런 처사는 결국 사회적, 민주적 퇴행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이렇게 병든 사회를, 이 시대를 살아가는 게 너무 괴롭다. 글을 쓰는 기자인데, 이런 걸 보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 할 것 같다. 그걸 다 충실히 못할까봐 안타깝다.
부끄러움이 없는 시대를 버텨가는 법
김의성_당분간은 희망이 별로 없다. 특히 교육 문제는 심각하다. 이 세대의 탐욕을 넘어 다음 세대까지 이 탐욕이 지속되게 하려 한다. 그럼에도 돌연변이처럼 나오는 사람들, 건강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여전히 적지 않다. 멀리서 우리가 하나둘 손을 잡고 그 신호를 포착해나가는 것, 전파를 보내는 것, 기회가 되면 그런 안테나 역할을 하고 싶다.
주진우_선배님이 광장에 나가면 뭘 더 해 줄 수 있을까 생각한다. 직접 같이 하지 못하고 있지만, 도울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다.
김의성_친분이 생기고 지내다보면 ‘의리 존(Zone)’으로 접어드는 시기가 있는 것 같다. 그때부터는 터무니없는 실수를 해도 욕을 하면서도 같이 가는 거다. 주 기자가 감옥 가면 몇번이고 사식 넣어줄 거다. 최대한 안 심심하게.
주진우_퇴행하는 시대, 부끄러움이 없는 시대를 잘 버텨나가야 한다. 당장 걸려 있는 소송이 9개인데, 아니, 이번에 대법원 상고로 10건이 됐다. 오랫동안 준비하고 있는 기사가 있는데, 아마 나오면 소송이 11건이 될 것 같다. 일단 책이 잘돼야 할 텐데. 적어도 MB한테는 지고 싶지 않다.
주진우, <베를린> 디테일의 숨은 공로자
주진우 기자는 영화계와도 인연이 깊다. 류승완 감독과는 특히 막역한 사이다. <부당거래> <베를린> <베테랑>의 리얼한 디테일 뒤에는 주진우 기자의 도움이 있었다. 주진우 기자는 “류승완 감독과 같이 취재를 하는데, 이 양반이 기자보다 취재를 더 열심히 한다”라며 함께한 파트너십을 들려준다. 또한 주진우 기자를 소재로 한 영화도 만들어진다. <특수본>(2011) 등을 만든 황병국 감독이 연출하는 <주기자>는 주진우 기자의 앞선 책 <주진우의 정통시사활극 주기자>가 원작이다. 주진우 기자는 시나리오 단계에서 황병국 감독에게 도움을 준 정도라고 말한다. <주기자>는 현재 캐스팅 단계. “다른 건 다 상관없고 주 기자가 잘생긴 배우였으면 좋겠다. 이름에 ‘빈’자 들어가는 배우가 해줬으면 한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