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호의 오! 마돈나]
[한창호의 오! 마돈나] 청춘의 초상, 꽃의 영광
2015-02-27
글 : 한창호 (영화평론가)
Natalie Wood 내털리 우드
<초원의 빛>

내털리 우드가 니콜라스 레이 감독의 <이유 없는 반항>(1955)을 찍은 게 16살 때다. 제임스 딘은 20대였지만 10대 역을 연기했고, 반면에 내털리 우드는 자기 나이 그대로 나왔다. 집에서 사랑받지 못하고 바깥을 떠도는 주디(내털리 우드)는 불량 10대들이 잡혀오는 경찰서에서 처음 등장한다. 그때 그녀는 반항과 증오를 상징하는 붉은색 옷을 입고 있는데, 그 색깔의 지나친 강조는 소녀의 삶이 얼마나 불안에 사로잡혀 있는지 한눈에 알게 했다. 주디는 자기처럼 지나치게 붉은색 점퍼를 입은 짐(제임스 딘)과 운명적으로 결합된다. 그럼으로써 ‘붉은’ 두 배우는 스크린 속의 영원한 커플로 각인된다.

니콜라스 레이와 엘리아 카잔

할리우드는 <이유 없는 반항>의 인기를 십분 활용하여, 내털리 우드를 계속해서 청춘 로맨스의 이상형으로 기용했다. 지금은 잘 기억도 나지 않는 영화들이지만, 당시는 꽤 인기를 끌었던 청춘물, 이를테면 <그가 떠났던 소녀>(The Girl He Left Behind, 1956), <불타는 언덕>(The Burning Hills, 1956) 같은 작품들이 연이어 발표됐다. 죽은 제임스 딘 대신에 탭 헌터라는 젊은 배우가 내털리 우드의 파트너로 반복해서 캐스팅되곤 했다. 내털리 우드는 자신처럼 아역배우 출신인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뒤를 잇는 또 한명의 스타로 대접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때 우드는 스타성을 착취당했다. 만약 존 포드의 <수색자>(1956)에 나오지 않았다면, <이유 없는 반항> 이후의 우드는 소모품이나 다름없었다.

<수색자>에서 우드는 인디언에게 납치되어 삼촌 존 웨인이 오랜 방황 끝에 마침내 찾아낸 그의 질녀로 나왔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존 웨인의 간절한 ‘수색’의 대상인 까닭에 등장 자체는 굉장히 강렬한 이미지로 남아 있다. 불과 1년 전, 미국의 반항적인 10대 소녀를 연기했던 우드는 여기서 인디언 복장을 걸친 납치된 백인 소녀로 등장하는데, 아쉽게도 그 모습은 다시 아역배우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말하자면 <이유 없는 반항> 이후 우드는 성인배우로의 도약을 시도했지만 그 결과는 미성숙한 청춘에 머물렀고, 다시 아역에 가까운 이미지를 연기했을 때 영화계의 주목을 끌어냈다. <수색자>의 우드는 소녀도 아니고, 그렇다고 처녀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에 머물렀다.

따지고 보면 우드의 아역배우로서의 역할이 그만큼 강렬했다. 지금도 크리스마스 때면 종종 방영되는 <34번가의 기적>(1947)에서,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믿지 않는 영리한 소녀 수잔 역을 맡았던 내털리 우드의 모습은 천재소녀의 출현을 알리고도 남을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유령과 뮤어 부인>(1947)을 연출한 조셉 맨케비츠는 자신이 만난 아역배우 중 가장 영리한 소녀가 내털리 우드라고 말하기도 했다. 우드는 그 영화에서 독립적인 여성의 삶을 개척하던 뮤어 부인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어린 딸로 나왔다. 다시 말해 아역배우 내털리 우드에겐 ‘영리하고 귀여운’ 이미지가 각인돼 있었는데, 관객은 그 이미지를 계속 소비하고 싶어 한 것이다.

수많은 청춘물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미성년의 이미지를 떼지 못하고 있을 때 만난 감독이 엘리아 카잔이다. 니콜라스 레이가 소녀 우드를 성적인 매력을 지닌 10대의 우드로 변화시켰다면, 엘리아 카잔은 드디어 우드를 성인배우로 이끌었다. <초원의 빛>(1961)을 통해서다. 당시는 카잔이 매카시즘의 오명에도 불구하고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1951), <워터프론트>(1954), <에덴의 동쪽>(1955) 등의 성공에 힘입어 할리우드의 거물로 행세할 때다. 그는 또 할리우드 메소드 연기자들의 대부였고, 그래서인지 그의 손을 거친 배우들 가운데 스타로 성장한 인물들이 많았다. 이를테면 말론 브랜도, 제임스 딘이 카잔의 메소드 연기를 계승한 스타들이다. 당시에 카잔이 발굴한 메소드 연기의 새로운 스타는 <초원의 빛>에서 우드의 파트너로 나왔던 워런 비티였다.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내털리 우드의 3대 작품으로는 <이유 없는 반항> <초원의 빛> 그리고 <웨스트사이드 스토리>(감독 로버트 와이즈, 1961)가 꼽힌다. 만약 이들 가운데 단 하나의 작품을 고른다면 그 답은 <초원의 빛>일 것이다. 내털리 우드의 최고의 연기가 발휘되기도 했고, 또 그녀의 가장 아름다울 때의 모습이 그대로 남겨져 있어서이기도 하다. 말 그대로 우드는 ‘여신’처럼 빛났다. <이유 없는 반항>이 제임스 딘의 것이라면, <초원의 빛>은 우드의 것이었다. 우드는 메소드 연기 수업을 받은 적도 없고, 이 영화를 찍을 때 카잔으로부터 그런 연기를 요구받지도 않았다. 상대역인 워런 비티는 메소드 연기를 하고, 내털리 우드는 어릴 때부터 익힌 전통적인 연기를 했는데, 그 조합이 최고급의 아름다움을 빚어냈다.

<초원의 빛>은 공황시대를 배경으로, 제도의 억압을 10대들에 대한 성적 억압으로 치환한 사회비판적인 드라마인데, 여기서 우드는 첫사랑의 상처 때문에 정신과 치료까지 받는 ‘순수한’ 소녀 지니로 나온다. 카잔 특유의 드라마처럼 도입부의 사랑에 들뜬 흥분은 뒤이어 사랑의 상실에 대한 불안으로 바뀌고, 최종적으로는 상실의 상처를 견뎌내는 고통의 결말로 이어지는 복잡한 심리극이다. 우드는 여기서 대단히 섬세한 연기로 지니의 급격한 심리적 동요를 소화해낸다. 특히 종결부에서 자신에게 상처를 남긴 비티를 찾아갈 때의 장면은 우드의 최고의 연기 순간으로 평가받는다. 긴장된 눈빛, 가늘게 떨리는 입술과 볼, 살짝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는 어떻게든 상처를 이겨내려는 절박한 몸짓으로 이해됐다. 내털리 우드는 비로소 성인으로 거듭났고, 스타라는 명칭에 걸맞은 연기력까지 갖추게 됐다. 불과 23살 때다.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뮤지컬로 변주한 것인데, 여기서 우드는 푸에르토리코 이주민의 딸 ‘마리아’로 등장한다. 이름도 그렇고 흰색 드레스의 순결한 이미지도 더해져서, 우드는 말 그대로 동정녀처럼 보였다. <초원의 빛>의 유명한 대사인 윌리엄 워즈워스의 시처럼, 우드는 ‘초원의 빛과 꽃의 영광’이 상징하는 청춘의 초상으로 비친 것이다.

불행하게도 우드는 1981년 43살 때, 요트 사고로 죽었다. 사고사인지 아니면 동승했던 남편 로버트 와그너와의 밝혀지지 않은 또 다른 이유에서인지는 지금도 의혹으로 남아 있다. 결국 죽음 자체가 하나의 사회적 사건이 됐는데, 스타들의 죽음 가운데는 사실 이런 일들이 잦다. 우드의 영원한 스크린 파트너였던 제임스 딘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 유별난 죽음도 스타성의 한 부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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