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금슬금, 소리도 없이 누군가가 카페 안으로 슥 들어왔다. 예의 부스스한 머리와 동그란 안경에 보랏빛 점퍼를 걸치고 베이지색 민무늬 스니커즈를 신은 김창완이다. 그런데 표정이 영 멍하다. 얼핏 봐도 방금, 그것도 겨우 잠에서 깬 듯한 얼굴이다. 그도 그럴 것이 김창완은 지난밤 김창완 밴드의 3집 ≪용서≫의 발매 기념 콘서트에 흠뻑 취해 있었다. 공연의 여흥과 숙취의 고됨이 채 가시기 전일 텐데도 그는 힘든 내색이 전혀 없다.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며 달콤쌉싸름한 아포가토를 주문하더니 후루룩 넘기고 말 뿐. 그러고는 내리 음악 이야기를 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꼽을 때면 그는 단 한번도 빼놓지 않고 기타와 공연이라 말해오지 않았던가. 그렇게 가수 김창완으로 살아온 지 올해로 꼭 38년째다. 막내동생과의 사별 이후 그는 더이상 ‘산울림’으로 활동하지 않고 있지만, 2008년부터 ‘김창완 밴드’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이어오고 있다. ≪용서≫는 밴드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만들어가려는 김창완 밴드의 작지만 의미 있는 작업들로 채워진 앨범이다. 배우 김창완에 앞서 그를 세상에 알린 뮤지션 김창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3집 발매 기념 콘서트 바로 다음날 인터뷰 약속을 잡고 은근히 걱정했다. 애주가로 잘 알려져 있는데 혹여나 공연 뒤풀이가 길어져 오늘 못 만나는 거 아닌가 하고 말이다.
=(매니저를 보며) 안 그래도 왜 오늘 일정을 잡았느냐고 말하긴 했다. (웃음) 그래도 어제 일찍 끝났지. 새벽 2시쯤 집에 들어갔으니까.
-평소 공연하는 게 제일 좋다고 말해왔는데.
=사실은 공연 뒤풀이를 제일 좋아한다. (좌중 웃음)
-3일간의 공연 동안 팬들의 반응은 어땠나.
=공연이라는 게 관객 반응에 따라 분위기가 확확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노래하는 사람이 관객 반응에 연연해서는 공연이 원활히 돌아가지 않는다. 관객의 반응에는 어느 정도 무심해질 필요가 있다.
-앨범 발매 쇼케이스 현장에서 ‘이번에야말로 김창완 밴드의 색깔이 나왔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산울림의 레퍼토리가 김창완 밴드의 그것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어차피 산울림의 후광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한두곡씩 김창완 밴드의 레퍼토리를 늘려나가는 중에 이번 앨범이 나왔다는 데 의미가 있다. ‘김창완 밴드의 음악은 이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우리의 음악이 뭔지는 모르겠다. 하다보면 조금씩 정리가 되겠지. 그리고 이전의 우리 음악과 차별화되는 지점이 있지 않겠나. 하지만 우리가 뭐라고 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대중의 평가다. 대중이 우리 음악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우리의 음악이 대중에게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음악적 충격을 줄 수 있을 것인지. 그게 중요하다.
-‘용서’라는 꽤나 묵직한 주제를 앨범명으로 택했다.
=지금까지 앨범을 낼 때마다 든 생각은 ‘비록 세월은 흘렀고 나도 나이를 먹었지만 항상 청춘의 노래를 하자, 나는 젊은 음악을 할 거야, 젊은이들과 함께할 거야’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생각을 버리고 오직 지금의 내 안에 있는 것들을 끄집어내보자는 생각이 들더라. 그러다보니까 용서라는 다소 묵직한 주제가 나온 것 같다. 나도 젊은 척하려면 얼마든지 젊은 척할 수 있다.
-용서라는 큰 주제를 등에 업고 중학교 2학년인 화자가 세상을 향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르는 듯한 노래 <중2>를 타이틀곡으로 꼽았는데.
=일단은 앨범에서 말하고자 하는 용서의 의미가 그 곡에 들어 있다. 다른 이유는, 내가 (스스로를) 청춘(이라고 생각하며 만드는) 음악은 안 하겠다고 말한 것과 지금 시대의 청춘들이 김창완 밴드의 음악을 듣고 팬이 돼주길 바라는 건 다른 문제라는 걸 말하고 싶었다. 내가 내 나이의 감성과 생각으로 젊은 친구들에게 어필할 수 있다는 건 그것대로 의미가 있지 않겠나. <중2>는 그런 의미에서 봐도 타이틀이 될 수밖에 없었다.
-<중2>는 ‘중2가 미워서 만들게 됐다’고 했는데 그 미움의 실체는 도대체 뭔가.
=아이들을 향한 어른들의 편견과 폭력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반성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부모 자식간, 애인이나 친구 사이에도 갈등의 시기는 있기 마련 아닌가. 그 시간을 통해 서로를 미워한다고 생각지 말길 바란다. 오히려 그때가 서로의 관계를 발전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기회일 수도 있다.
-문득 김창완의 중2는 어땠을까 궁금해진다.
=지금 돌이켜보면 잘 생각도 안 나지만, 참으로 한심했지. 다른 애들은 사춘기에 접어들 때였는데 나는 사춘기를 겪으려면 좀 먼 시기였다. (김창완은 또래보다 3년 일찍 학교에 들어갔다.) 일단 애들의 말귀를 못 알아들었고 그러다보니 자꾸만 소심해지고 뭘 해도 수줍고 자신감도 없어졌다. 그게 꽤 오래가더라. 고2 정도 돼서야 조금 극복이 됐다. 그러니까 나의 중2부터 고2까지의 시기는 내 노래 <길>의 노랫말과 꼭 같다. 그런 시절이었다.
-첫 번째 트랙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는 1978년에 발표한 이후 이번까지 세번이나 편곡해 발표했다. 유독 이 곡에 애착이 가는 이유라도 있나.
=나는 수없이 많은 팝송을 몇 십년간 들어온 사람이다. 그런데도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처럼 괴상한 노래는 흔치가 않았다. 그 곡에는 어떤 독창성이 있다. 대체로 세월이 흐르면 처음 곡을 만들 때의 모티브 같은 건 다 잊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어느 비 내리던 날>(1980), <너의 의미>(1984)와 같은 몇몇 곡들은 곡을 만들 때의 상황이나 심정이 시간이 흐른 뒤에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도 통기타로 ‘둥둥둥둥’ 베이스 라인을 깔아가며 연주를 해보던 때, 연주하던 날의 밤풍경, 내가 왜 이 노래를 부르고 싶은가 하는 이유 같은 게 굉장히 또렷하게 기억난다. 이번 앨범에 실린 결과물이 그때의 내 느낌을 상당히 많이 담아냈다. 이제는 더 (편곡을) 안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가 이색적으로 들리는 데는 퓨전국악밴드 잠비나이와의 협연도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잠비나이는 국악적이라기보다는 지극히 현대적이다. 그들 연주를 처음 듣자마자 ‘어휴, 이거 뭐 메탈보다 더 심하네’라고 말했을 정도니까. 원초적인 소리를 찾으려는 팀이다. 그런데 잠비나이의 소리로 시작하는 인트로를 잘 들어보라. (이)상훈(김창완 밴드의 키보디스트)이가 배음을 묘하게 깔아뒀다. 그 소리가 없었다면 지금과는 또 달랐을 거다.
-네 번째 트랙 <아직은>은 나이를 먹더라도 여전히 포기하거나 타협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김창완의 고집이랄까.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번 앨범에서 가장 튀는 곡이 아닐까.
=나로서는 되게 반가운 얘기다. 형식적으로만 보자면 다른 곡들보다는 간단하다. 격한 감정을 군더더기 하나 없이, 무늬조차 없는 말끔한 그릇에 담아낸 듯한 느낌이다. 이 곡은 상당히 도전적이기도 하다. 김창완 밴드가 이번 앨범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음악적 시도와 경향이 담겨 있다.
-이번 앨범에 <무덤나비>라는 조곡을 넣었다.
=지극한 사랑을 노래하는, 죽어서도 당신을 잊지 않겠다는 약속의 의미가 담겼다. 굉장히 성스러운 곡이다. 이 노래는 트럼페스트 배선용의 트럼펫 연주에 힘입은 바가 크다. 아예 작곡을 할 때부터 멜로디가 트럼펫 소리로 들리더라. 나도 굉장히 좋아하는 노래다. 사실 노래도 아니지. 내레이션이니까. 근데 그거 계속 듣게는 안 되더라. 그거 자꾸 들으면 안 지겹나?
-앨범 ≪아리랑≫(2012)에 이어 이번에도 마지막 곡으로 <아리랑>을 넣었다. 한국적 록을 고민하는 김창완 밴드의 계속되는 숙제 같은 건가.
=<아리랑>이 가지고 있는 달관한 듯한 느낌이 왠지 희망을 상징하는 것도 같고 우리 안에 흐르는 은근한 끈기 같기도 하고. 앨범 마지막의 서비스이기도 하다.
-멤버 전체가 다 같이 연주를 해서 한번에 녹음하는 원 테이크 레코딩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각 악기를 따로따로 녹음하는) 멀티 레코딩을 하면 더 정교하게 소리를 담아낼 수는 있겠지만 우리가 원하는 음악은 그게 아니다. 음악은 순간에 완성되는 법이다. 100명이 코러스를 하는 소리와 10명이 곱하기 개념으로 10번을 노래해서 나오는 음은 전혀 다르다. 인물의 어떤 한순간을 포착해내는 사진처럼 우리도 음악의 순간을 잡아내고 싶다. 그래서 원 테이크를 고수한다.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아직은> <무덤나비> <노란리본> <E메이져를 치면> 모두 첫 테이크가 오케이 테이크였다. 그걸 매직 원 테이크라고 하는데 그만큼 만나기 쉽지 않은 순간이다. 사실 첫 테이크에서 어딘가 어색하게 넘어가는 부분도 있게 마련이지만 오히려 그 순간들에 감정이 더 잘 녹아 있다.
-곡 작업은 언제, 어떻게 하는 편인가.
=내키면 한다. 아, 매니저가 언제까지 판 내라고 하면 그때 곡을 쓴다. 그전에는 아무 짓도 안 한다. 미리 써두면 노래도 밥처럼 다 쉬니까. 곡 작업은 할 때 딱 해서 그릇에 담아내야 한다. 마치 요리처럼.
-기타와 공연과 함께 좋아하는 것으로 라디오 방송을 꼽기도 했다. 매일 아침 9시 방송되는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를 15년째 진행 중이다.
=자전거 타고 방송국으로 향할 때 참 행복하다. 물론 전날 공연이 있거나 맥없이 술을 많이 퍼마시면 다음날 아침에 방송하러 가기가 힘든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대부분 방송하러 가는 시간 자체가 굉장히 즐겁다.
-라디오의 어떤 면이 그렇게도 좋은 건가.
=누군가를 늘 만나는 느낌이다. 외로움만큼 슬픈 게 어디 있나. 라디오 방송을 하면서 그런 기분을 느끼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건 굉장한 혜택이다. 내 친구가 ‘남자들의 로망’인 할리 데이비슨(세계적인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미국 최대의 모터사이클 제조사)을 두고 한 말이 있다. ‘할리 타고 가면 외롭지 않아서 참 좋아’라고. 다른 오토바이의 경우는 굴러가는 맛, 스피드감이 좋아서 꼭 달려야만 재미가 있는데 할리는 ‘둥둥둥둥’ 하며 끌고가는 맛이 있다. 천천히 가도 아무런 조바심 없이. 내게 라디오가 꼭 할리 같다. 라디오 안 했으면 굉장히 적적했을 거다.
-김창완의 연기 인생도 올해로 어느덧 30년째다.
=주변에서 나한테 연기 데뷔 30년이라고 말들을 많이 한다. 그런데 다들 말은 그렇게 해도 30년이라는 세월의 무게, 크기를 잘은 모를 거다. 재밌는 게 요즘 서울이나 지방에 촬영하러 가다보면 다 내가 과거에 영화나 드라마 찍었던 곳들인 거다. 이 바닷가에서 뭘 했지, 이 골목에서 그때 그랬지 하면서. 그렇게 시간이 흐른 거다.
-올해 연기 활동은 4월 방영 예정인 MBC 드라마 <화정>으로 시작한다.
=영의정 역이라 일부러 수염도 석달 째 기르고 있다. 가짜 수염 붙이는 게 싫다. 뭐, 드라마는 촬영 현장이 즐거워서 한다. 다른 거 없다.
-영화배우로서 <행복한 장의사>(2000)는 물론이고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2008)에서의 ‘변신’도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2010), <닥터>(2013) 이후 스크린에서 만날 기회가 없었다. 언제쯤 영화에서도 만날 수 있을까.
=이제는 감히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얘기할 수밖에 없게 됐다. 요즘 영화는 관객의 감정이나 볼거리를 미리 재단하려 들고 테크닉만 개발돼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흥행 요소가 없다고 판단되면 아예 제작조차 안 되니. 아름다움은 뒷전이 돼버렸다. 실험적인 시도가 넘치는 영화가 나온다면야 무슨 역인들 마다하겠나. 영화가 문화사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또 얼마나 큰가. 점점 새로운 시도를 해볼 엄두조차 못 내고 있으니 끔찍하다. 그래서 말인데, 영화보다 좋은 공연을 하겠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