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bituary]
[obituary] 미스터 스팍을 떠나보내며
2015-03-06
글 : 듀나 (영화평론가·SF소설가)
레너드 니모이(1931~2015)
<스타트렉> 시리즈에 스팍으로 출연한 레너드 니모이.

뾰족한 귀를 가진 지구인과 벌컨인의 혼혈 ‘미스터 스팍’으로 기억되는 배우 레너드 니모이가 향년 83살로 세상을 떴다. 1950년대부터 여러 TV시리즈물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그는 혼혈 항해사 스팍 캐릭터로 스타 반열에 올랐다. 연출자로서도 두편의 <스타트렉> 시리즈를 연출하기도 했던 그는 최근까지 J. J. 에이브럼스가 리부트한 <스타트렉> 시리즈에도 특별 출연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렇기에 SF 장르의 가장 선명하고 매력적인 캐릭터 중 하나였던 그의 사망 소식에 수많은 팬들이 깊은 애도를 표하고 있다. 영화평론가이자 SF소설가인 듀나가 그에 대한 추모의 글을 보내왔다. 그의 존재감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 그 이상이었음을 보여준다.

레너드 니모이가 지난 2월27일, 83살로 자택에서 세상을 떴다. 사인은 만성 폐쇄성질환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오랜 흡연으로 인한 발병 사실을 공개했던 그는 죽기 며칠 전까지 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죽기 며칠 전 그는 유언이라도 하듯 공식 트위터에 다음과 같은 마지막 트윗을 남겼다. “인생은 정원과 같다. 완벽한 순간은 있을 수 있어도 영원히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은 기억뿐이다. LLAP(장수와 번영이 있기를).”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에 애도를 표했다. <스타트렉>에 같이 출연했던 윌리엄 샤트너와 조지 다케이와 같은 그의 연기 동료들은 뉴스가 뜬 지 얼마 되지 않아 트위터에 작별의 글을 남겼고 심지어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백악관에서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공식 메시지를 보냈다. 그중 가장 상징적인 애도의 제스처는 국제우주정거장에 체류하고 있는 미국인 우주비행사 테리 버트의 것으로, 그는 지구가 보이는 창에서 니모이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장지와 약지 사이를 벌리는 벌컨 손인사를 하는 자기 손을 찍어 인터넷에 올렸다.

레너드 니모이는 평생 134편의 영화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했고 12편의 작품을 감독했으며 이외에도 사진집과 앨범, 회고록, 시집을 냈다. 가장 유명한 <스타트렉> 시리즈 이외에도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에 잠시 고정 출연하기도 했고 <인베이션 오브 바디 스내처즈> 시리즈 중 가장 암울한 2편에 나오기도 했다. 그는 UFO나 빅풋과 같은 소재를 다룬 다큐멘터리 시리즈 <In Search of…>의 호스트를 맡기도 했는데, 이 작품의 소재 선택과 스타일은 <X파일> 시리즈와 <블레어 윗치>(1999)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엉뚱하게도 그가 감독한 작품들은 <스타트렉> 시리즈 몇편을 제외하면 대중적인 일반 드라마가 많았는데 그중 가장 히트작은 프랑스 코미디의 리메이크인 <뉴욕 세 남자와 아기>(1987)이다.

충분히 다채로운 경력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사람들은 ‘미스터 스팍’이라는 단 하나의 이름으로 레너드 니모이를 기억한다. SF시리즈 <스타트렉>은 시청률 부진으로 시즌3 만에 종영되었지만 그 뒤에 나온 영화 시리즈와 끝도 없는 재방영 덕택에, 미스터 스팍은 미국 SF 문화에서 불멸의 존재가 되었다. <스타트렉> 이후 그의 경력 대부분은 어느 정도나마 <스타트렉>의 이미지와 연결되어 있었다. <In Search of…>의 호스트로서 그가 적역이었던 이유도 아무리 프로그램이 허황된 주제를 다룬다고 해도 그의 믿음직한 스팍 이미지가 그 의혹을 지워주기 때문이었다. 그가 이후에 출연했던 SF 계열의 작품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도 없다.

아이작 아시모프는 60년대 이후 여성 SF작가가 급증한 이유를 두고 “미스터 스팍의 귀 때문이다”라고 말한 적 있다. 반쯤 농담이었겠지만 내용 없는 농담은 아니었다. 레너드 니모이가 무뚝뚝한 심각함으로 연기한 미스터 스팍의 개성과 매력은 기존 할리우드 SF의 공식을 완전히 뒤엎는 것이었다. 철저하게 이성과 논리를 추구하는 뾰족한 귀의 지구인/벌컨인 혼혈인 우주인의 인기는 SF 장르에 다양성과 복잡성의 문을 열었다. SF에 관심이 없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미스터 스팍을 통해 이 장르에 관심을 가졌고 그 안에 뛰어들었다. 여성 작가나 비백인 작가의 증가와 같은 건 그중 정상적인 현상이었다. 그보다 비주류의 현상이라면, 팬덤 사이에 커크/스팍 팬픽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면서 슬래시 팬픽의 끈적거리는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 스팍은 과학자, 엔지니어, SF 기크들의 영웅이었다. 별과 별 사이를 오가며 외계인 미녀와 데이트를 하고 외계 괴물과 레슬링을 하던 공식적인 주인공인 제임스 타이베리우스 커크 선장은 기존의 SF물의 백인 남자 액션 주인공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니모이의 미스터 스팍은 SF 장르에 최적화되어 있었다. 그는 이성과 과학을 추구했고 무엇보다 지구인들로 부글거리는 우주선 안에 홀로 남은 아웃사이더였다. 이런 그의 냉정한 성격은 종종 자폐인이나 아스퍼거 증후군의 증상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실제로 자폐인 생물학자 템플 그랜딘은 스팍의 열렬한 팬이다. 종종 60년대 사회문제를 우주로 끌어들였던 오리지널 시리즈에서 그는 늘 믿을 수 있는 정확한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 쪽이었다. 니모이가 세상을 뜨자 과학자, 엔지니어 집단에 속한 수많은 사람들이 니모이의 죽음에 애도의 메시지를 보낸 것도 니모이의 스팍이 그들의 세계를 대표했으며 니모이 역시 그들을 존중했기 때문이었다.

1대 <스타트렉> 출연자로서 그는 반세기 동안 팬덤의 무게를 짊어져야 했다. 니모이는 두편의 회고록을 썼는데, 제목은 <나는 스팍이 아니다>와 <나는 스팍이다>였다. 니모이와 미스터 스팍이라는 캐릭터 사이의 애증을 짐작할 수 있다. 캐릭터의 인기가 배우로서의 경력과 자신의 이미지를 가로막는다고 생각한 니모이는 극장판 2편에서 자신을 죽여달라고 제작진에 요청하기도 했다. 요청은 받아들여졌지만 분노한 팬들의 아우성 때문에 스팍은 3편에서 부활했고, 심지어 3, 4편의 연출은 니모이 자신이 맡았다. 여기서 아서 코난 도일과 셜록 홈스의 관계를 떠올리는 분이라면 미스터 스팍이 언젠가 자신의 모계 조상 중 한명이 셜록 홈스라는 암시를 흘렸음에 재미있어할 것이다.

그가 세상을 뜨기 몇년 전 J. J. 에이브럼스가 <스타트렉> 오리지널 시리즈를 리부팅했고 미스터 스팍 역은 재커리 퀸토가 물려받았다. 비록 많은 팬들은 퀸토의 미스터 스팍이 오리지널의 희미한 복사품이라고 불평하지만, 그의 연기는 니모이 연기 진수의 상당 부분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비록 배우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만든 캐릭터와 연기 스타일은 다른 배우를 통해 대를 이어 시리즈에서 살아남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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