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 x cross]
[trans × cross] 나는 음식과 식문화를 통해 인문학을 하려는 사람
2015-03-23
글 : 윤혜지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

“당신이 먹는 것이 곧 당신이 누구인지 알려주는 시대”라는 말로 tvN <수요미식회>가 문을 열었다. 매주 특정 음식을 소재로 해 미식을 논하는 프로그램이다. 패널 중 눈에 띄는 이는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다. <농민신문> 사회부에서 13년간 기자로 일하는 동안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는 꾸준히 음식과 식문화를 탐구했고, 개인 블로그와 몇권의 저서를 통해 식문화의 기원과 맥락에 대한 상세하고 정확한 해설을 해왔다. 김재환 감독의 <트루맛쇼>(2011)에선 “시청자가 천박하니까 방송도 입맛도 천박해진다”는 직언을 날렸고 JTBC <미각스캔들>에 고정 출연하며 음식에 대한 환상을 와장창 깨부수기도 수차례, 마침내 <수요미식회>에서 그는 막힘없고 거침없는 미식일기를 펼쳐 보인다. 평소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가 자주 찾는다는 파주 인근의 한 커피숍에서 그와의 만남을 청했다. 커피에 곁들여 나온 초콜릿만 가지고서도 너끈히 한 시간은 말을 늘어놓을 수 있는 입담, 그건 단순한 말재간이 아니라 음식의 근본과 역사에 대한 애정이고 관심이었다.

-오늘 점심 메뉴는 무엇이었나.

=<수요미식회>팀과 돈가스를 먹었다. 다들 맛있다고 하더라. 난 별로였다. 고기 간이 약하고 소스가 산뜻하지 않았다. 다른 데는 해물탕에 돈가스가 들어 있었다. 대충 섞어놓으면 퓨전이라고 하는데 그런 건 그냥 괴식이지. (웃음) 그렇게 해서 맛있는 집이 거의 없다.

-녹화 전 패널들끼리 주제에 맞는 식당을 미리 찾아가나보다.

=다 미리 가본다. 나는 웬만한 집은 이미 다 가봐서 어디에 어느 식당이 있다고 자문을 해주곤 한다. 다들 나름의 방식으로 준비를 해오는데 나는 김유석씨가 참 인상 깊다. 자기가 해야 할 이야기에 대한 아우트라인을 정리한 대본이 나온다. 물론 다들 대본대로 안 하지만. 김유석씨는 항상 대본을 연구해온 사람이잖나. 어찌나 꼼꼼하게 자기 대본을 만들어오는지. 대본 플레이는 저렇게 하는 거구나 싶더라. (웃음)

-<수요미식회> 출연은 어떤 경로로 이루어졌나.

=한회만 출연하고 끝내려고 했는데 첫회 녹화 중에 작가가 계속 나와주면 안 되겠냐고 하더라. 분위기가 좋은 것 같아서 계속 출연 중이다. 그런데 첫회 ‘소고기 등심구이’편을 녹화할 때 내가 “모 식당은 기름 맛으로 먹는 거지 고기 맛으로 먹는 게 아니다”라고 하니까 조금 전까지 맛있다고 하던 패널들의 의견이 막 흔들리는 거다. (웃음) 전문가라고 하니까 이분들이 내 눈치를 볼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더라고. 그 뒤로 맛에 대한 평가는 줄이게 됐다.

-입맛에 솔직한 것이 <수요미식회>가 여느 맛집 탐방 프로그램과 다른 점인데.

=그렇기는 하다. 수많은 맛집 탐방 프로그램이 무조건 ‘맛있다, 최고다’라고 한다. 나도 자주 출연 제의를 받았는데 요즘은 덜하다. 항상 맛없다는 얘기만 하니까 방송작가들이 나에게서 원하는 말을 못 들으리란 걸 눈치챈 것 같다. (웃음) 정작 문제는 그런 프로그램들이 음식을 ‘영약’ 취급한다는 점이다. 특정 음식을 먹으면 질병이 치유된다는 식으로 설명을 한다. 한의사며, 의사며, 요리사며 전문가라고 나와 있는 패널들도 동조만 하고 있다. 전형적인 약장수들이다. 나도 똑같이 그러고 있을 순 없지. 그런데 모 프로그램에는 속아서 출연했다. 재래된장에 관한 인터뷰라고 해서 그 기원과 테이스팅 방법에 대해 얘기를 했다. 그런데 편집을 교묘하게 하는 바람에 내가 죽염된장, 간장이 건강에 좋고 어느 병에 효과가 있다는 식으로 효능을 설명하는 것처럼 방송이 나갔다. 그 뒤로 방송 출연을 더욱 조심한다.

-굳이 기호를 감출 필요는 없지 않나.

=나는 음식과 식문화를 통해 인문학을 하려는 사람이고, 내가 <수요미식회>에서 하는 얘기도 품평이 아니다. 소비자는 이 음식을 왜 먹고자 하는가, 이 가게는 왜 이 음식을 내는가, 하는 식으로 식문화가 가진 사회적 맥락과 의미를 파악하는 데 집중한다. 인문학의 기본은 ‘나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이다. 나는 이 음식을 왜 먹게 되었는가, 한국인은 왜 이 음식을 맛있다고 하는가. 프로그램에 나온 식당이 잘되든 말든 전문가로서의 나의 의무는 소비자가 스스로의 판단 기준을 세울 수 있게 돕는 것이다.

-태도는 꼿꼿한데 관점은 유연하다. ‘김치찌개’편에서는 “중국 산둥이 김치 배추의 원산지이기 때문에 중국산 김치라고 해서 무조건 맛이 없는 것이 아니”라고 했고 “맛이 다양하게 섞여 있는 음식인 만큼” 조미료에도 관대한 태도를 보였다.

=대개 그 나라 음식은 그 나라 식재료로 만드는 게 가장 맛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아닌 경우도 많다. 가장 맛있는 식재료는 가장 좋은 조건에서 자란 것이다. 숨길 이유가 뭐 있나. 중국산 김치는 맛이 없을 거라고 밀쳐버리는 순간 우리는 김치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을 잃어버리게 된다. 말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한국 음식이 최고라면서 ‘한식 세계화’를 외치는데 한국 음식, 한국의 식문화에 대한 민족주의적 오해가 참 많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치킨을 많이 먹게 된 것도 맛있어서가 아닌 그저 닭고기가 많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많이 먹는 것을 맛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안정을 추구하려는 심리인 거다. 그런데 많이 주어진 것을 맛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사회는 뒤집어지고 다수가 불안해한다. 혁명이다. 나는 치킨 맛없으니까 소고기 먹을래. 그런 사회가 내가 원하는 사회다. (웃음) 한국 사회는 너무 서로에게 무난하다. 이런 게 음식을 통한 인문학적 해석인 거지.

-시인, 기자, 미술평론 등 여러 가지 방식의 글쓰기에 관심을 가진 것으로 알고 있다. 음식이라는 소재를 파고들게 된 처음의 계기는 어떤 것이었나.

=시인 멋있잖나. 이왕 쓰는 글, 사람들에게 강력한 인상을 남기고 죽어야 하는데 난 그런 시인은 못 될 것 같았다. 소설도 힘들 테니 잡문이나 쓸 요량으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다. 경험의 폭을 넓혀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얘길 듣고 연극도 해봤다. 그러다 먹고살 길 찾아 일단 <농민신문>에 기자로 들어갔다. 내가 농사에 대해 뭘 알겠나. 처음엔 2, 3년쯤 있을 생각이었는데 너무 편해서 13년이나 있었다. (웃음) 다만 여기에서 뭐라도 하나 건져야겠다 싶어서 음식에 대한 글쓰기를 시작했다.

-‘맛 칼럼니스트’라는 호칭은 직접 붙였나.

=오래전 <경향신문> 기자가 만들어줬다. <농민신문> 때부터 나랑 알고 지내던 사람인데 자기네 신문에 나를 <농민신문> 기자라고 쓰기 뭐하니까 붙여준 명칭이다. (웃음)

-기자로 오래 일해서인지 리서치와 분석적인 식견이 눈에 띈다.

=항상 취재에 바탕한 근거 있는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인문학적 상상력을 조금 보태서. 미술, 음악, 영화를 통한 글쓰기처럼 음식에 대한 글도 결국 인간과 세상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다. 처음엔 아무것도 없었는데 20년이 넘도록 차근차근 하다보니 나름의 영역을 만들게 됐다. 요즘엔 후배들도 종종 음식 글쓰기에 관심을 보인다. 나는 하지 말라고 한다. 내가 일등하고 있어서 들어와봤자 나한테 치일 테니까. (웃음) 자기만의 새 영역을 개척하란 소리다.

-몸소 취재를 다니며 사진도 직접 찍는다.

=원래는 안 찍으려고 했다. 글쓰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사진까지 어떻게 내가 찍나. 존경하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고 김수남 선생께서 나를 많이 아끼셔서 제자 백지순씨와 협업하게 해주셨다. 그래서 같이 일도 좀 해봤다. 그런데 막상 하려니 힘든 부분이 있어서 나중엔 사진도 내가 찍었다. 하지만 사진 찍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직접 찍은 사진에서 작가의 시선과 현장의 생생함이 느껴져서 좋았다.

=상황에 대한 정확한 묘사로 접근했는데 하다보니까 내 마음을 담고 싶어진다. 그러려면 마음을 만족스럽게 담을 수 있는 카메라를 찾게 된다. 성격상 어디 한번 빠지면 쭉 빠지니까 이러다 글 안 쓰게 될까봐 걱정되더라. (웃음) 현장에서 한방 딱 건져내는 것이 얼마나 짜릿하고 매력적인가. 그 유혹을 안다. 다만 나의 사고는 서정적이기보다 서사적이다. 사진보단 글이 맞다. 사진에 집중하다 글감으로서의 취재를 놓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요즘엔 카메라를 두고 다닌다.

-탐방할 지역식당은 어떻게 찾나.

=지역의 식당들은 그 땅의 식재료를 가지고 요리하는 곳을 찾아가는 편이다. 해당 지역의 농업기술센터나 시청, 군청에 물어보면 안다. 군청 앞 식당도 대체로 오래되고 맛있는 곳이 많다. 서울에선 누군가 만날 때 그 사람에게 식당을 정하게 한다. 그렇게 하면 거의 겹치지 않으니까.

-개인 블로그와 몇권의 저서를 통해서도 민초들의 식문화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드러내왔다.

=윤봉길 의사에 관해 취재할 때가 있었는데 그때 그분의 저서 <농민독본>을 처음 읽었다. “우리 조선은 농민의 나라입니다. 과거 4천여년 동안 단 하루도 농업을 아니하고 산 적이 없습니다”라고 쓰여 있다. 그 이후로 나의 세상이 바뀌었다. 찡하게 전율이 왔다. 그래, 이 땅에서 가장 많이 살다간 사람은 농민이지. 그 나라의 음식을 이야기하려면 가장 많이 먹는 것을 말해야 하는 게 아냐? 그 뒤로 농민의 음식을 연구했다. 그런데 기록이 없더라. 글을 몰랐을 테니까. 그때부터 연구가 시작됐다. 대한민국의 음식을 말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대한민국은 노동자의 나라다. 그들이 많이 먹는 음식을 정리해야 대한민국의 음식이 정리되는 거다. 그런데 한식 세계화 정책으로 발간된 <아름다운 한국음식 100선>에 보면 표지에 신선로가 있다. 청와대 대표 요리다. 그런데 누구 신선로 먹어보신 분? 없다. 한국 대표 음식이 신선로일 리가.

-새로 연구해보고 싶은 음식이나 식재료, 식문화가 있는지.

=대중이 갖고 있는 음식에 대한 판타지를 비틀어보고 싶다. 취재에 바탕한 근거를 제시하고 나의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새로운 기준의 판타지아를 만들어보고 싶다.

진짜 우리 음식에 대한 책

미식입문서로 이만한 책도 없다.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의 최근 저서 <서울을 먹다: 음식으로 풀어낸 서울의 삶과 기억>(정은숙 공저)은 1994년부터 기획한 책이다. 한복선 궁중요리연구가가 본인의 저서를 통해 “아름다운 우리 음식은 점점 잊혀져가는 반면 뼈다귀해장국, 부대찌개, 쇠머리국밥 등 국적 불명의 경박한 음식들이 우리 식탁을 대신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한 것에 도리어 안타까움을 느껴 진짜 우리 음식에 대한 책을 구상했다고 한다. 책을 통해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는 “뼈다귀도 그렇고, 감자도 그렇고, 감자탕은 태생에서부터 하층민의 음식이었다. 쇠뼈의 설렁탕도 못 먹고, 쌀밥도 못 먹던 사람들의 음식이었다. … 이 감자탕을 서울음식에 넣자 생각한 것은 그 하층민이 가장 큰 집단으로 모여 살았던 곳이 서울이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이후 농촌을 떠나 서울로 와 노동을 팔았던 그 수많은 사람들에게 돼지등뼈와 감자는 안주 겸 끼니가 되어주었을 것이다”라고 썼다. 그의 책 사이사이엔 우리 사람들과 우리 음식에 대한 진한 친근함이 스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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