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FF 37.5]
[STAFF 37.5] 좀더 많은 일본인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2015-04-10
글 : 김성훈
사진 : 오계옥
<그라운드의 이방인> 일본 프로듀서 리키다케 도시유키

필모그래피

2015 <그라운드의 이방인>

“리대웅.” 다큐멘터리 <그라운드의 이방인>의 김명준 감독과 조은성 프로듀서가 리키다케 도시유키 일본 프로듀서에게 지어준 한국 이름이다. 오사카에서 나고 자랐고, 곰처럼 몸집이 커 성에서 따온 ‘리’와 오사카(大阪)에서 따온 클 ‘대’ 그리고 곰 ‘웅’을 조합한 것이다. 리키다케(力武)라는 성이 ‘힘 있는 무사’라는 뜻도 있어 그럴듯한 작명이다. ‘오사카의 곰’ 리키다케 도시유키의 조력이 없었다면 <그라운드의 이방인>은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했을 것이다.

알려진 대로 리키다케 도시유키가 <그라운드의 이방인>과 인연을 맺게 된 건 김명준 감독의 전작 <우리학교>(2006) 때문이다. 그는 가수 이은미, 장사익의 일본 현지 공연을 기획하는 프로듀서이자 오사카 재일동포들이 하나 되는 원 코리아 페스티벌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었다. 영화를 보고 큰 감명을 받은 리키다케 도시유키는 “<우리학교> 일본 공동체 상영을 기획”했고, 그 인연으로 김명준 감독을 몇 차례 만났다. <그라운드의 이방인>을 촬영한다는 소식을 듣고, 간사이공항에 차를 가지고 나가 스탭들이 머물 숙소도 알아봐주고 운전사, 통역사, 스케줄 매니저까지 두루 자처했다. 그런 그에게 김명준 감독은 “일본 프로듀서를 맡아줄 것”을 제안했다. 리키다케 도시유키가 자신의 일도 아닌 <그라운드의 이방인>을 바쁜 시간 쪼개가며 도왔던 건 어떤 사명감 때문이 아니다. “<우리학교>가 좋았다.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도 그래서다. 아무 일이나 다 할 생각이었다.”

멀티플레이어를 자처한 그에게 내려진 특명은 “재일동포 야구단을 다시 찾는 일”이었다. 제작진이 가진 유일한 단서였던 일본 주소와 전화번호가 옛날 것이라 복잡한 데다가 문화가 달라 아무리 일본어가 유창해도 현지인이 아닌 이상 그들을 카메라 앞에 서게 하는 건 만만치 않은 일이다. 그가 김명준 감독과 조은성 프로듀서의 솔직한 말을, 듣는 사람에게 거부감 없이 전달하는 데 특별히 신경 쓴 것도 그래서다. 수소문해가며 한명씩 어렵게 모았기 때문일까. 촬영이 끝난 지금도 기억에 남는 사람이 많다. “1982년 재일동포 학생야구단 멤버였던 이효범씨를 만나기 위해 북규슈까지 간 적 있다. 배준한씨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양시철씨는 까다로운 사람이었는데 만나면서 가까워졌고. 야구를 잘 몰랐는데 그들을 만나면서 야구와 재일동포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됐다.”

재일동포가 많이 살고 있는 오사카 이쿠노구에서 가까운 아베노구에서 살고 있는 까닭에 “재일동포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는 리키다케 도시유키에게는 작은 바람이 있다. “<그라운드의 이방인>을 좀더 많은 일본인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큐멘터리든, 극영화든 기회가 된다면 일본 촬영 프로듀서로 일하고 싶은 마음도 크”다. “리키 형님은 큰일을 하실 분”이라는 김명준 감독의 말이 그를 보증한다.

닛산 바네트

리키다케 도시유키 프로듀서가 7, 8년째 타고 다니는 작은 승합차로, <그라운드의 이방인> 진행에 있어 일등 공신. 제작진의 발이 되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재일동포 야구단 멤버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갔다. “원래 이 차와 승용차 두대를 몰고 다녔다. 무역업을 했던 아버지의 회사가 도산하면서 이 차를 승용차 삼아 타고 있다”는 게 리키다케 도시유키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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