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그건 돌이킬 수 없어.” 사랑 때문에 가족을 떠난 남자는 이번 사랑만은 영원할 거라고 생각한다. ‘영원한 사랑’이라는 말이 얼마나 거대한 무게를 가지고 있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질투>는 이 남자의 잘못된 확신이 불러오는 파국을 담담히 응시하는 영화다. 열띤 감정에 사로잡혀 연인의 고독과 불안감을 미처 헤아리지 못한 남자는, 텅 빈 방에 홀로 남고서야 비로소 그녀가 느꼈을 감정들을 체감하게 된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말마따나 “젊은 베르테르”의 운명을 따르게 된 남자를 연기하는 건 프랑스 배우 루이 가렐이다. 제멋대로 헝클어진 곱슬머리와 깃 세운 코트, 무심한 표정이 트레이드 마크인 이 배우는 아버지 필립 가렐의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는 연출에 어떤 서정성을 덧입히는 역할을 한다. 그저 거리를 걷는 장면에서조차 영화의 공기를 압도해버리는 존재감은 루이 가렐의 타고난 재능이라 할 만하다. ‘스타’ 배우를 기용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그의 아버지 필립 가렐이 종종 자신의 영화에 루이 가렐을 출연시키는 건 단지 그들이 핏줄로 이어진 존재이기 때문만이 아니라는 짐작이 드는 까닭은 그래서다.
‘가렐’ 부자가 함께한 다섯 번째 작품인 <질투>는 루이 가렐에게 더욱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작품이다. 그는 이 영화가 “가렐가(家)에 대한 정신분석학적인 영화”라고 말한다. <질투>의 모티브가 영화 촬영 2년 전 세상을 떠난 그의 할아버지 모리스 가렐에게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배우였던 모리스 가렐에겐 연인이 있었고, 그들과 종종 즐겁게 어울리곤 했던 필립 가렐은 아버지의 여자친구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어머니를 질투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질투>에서 루이 가렐이 연기하는 건 그의 할아버지 모리스 가렐의 젊은 시절이며, 극중에서 그의 어린 딸로 출연하는 아역배우는 아버지 필립 가렐의 유년 시절을 변주한 셈이다. “아버지는 나에게 할아버지를 연기하라고 했다. 할아버지의 ‘영혼’을 연기하라고 한 거다.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관계, 그리고 할아버지와 내가 맺고 있던 관계가 있었기에 이 영화를 우리가 함께 만든다는 건 매우 사적으로 느껴졌다.” 루이 가렐은 가족의 역사를 탐구하는 작품이기도 한 <질투>에 참여하며 “모순과 비극, 드라마와 따뜻함, 더불어 어떤 다정함”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세상의 어떤 가족이라도 품고 있을 삶의 질곡을, 자신의 가장 사적인 경험을 통해 표현해내는 것. 그건 루이 가렐이 <질투>를 통해 도전하고 성취할 수 있었던 새로운 예술의 영역일 것이다.
포스트 누벨바그의 아이콘인 아버지 필립 가렐이 그랬듯, 루이 가렐 역시 ‘사랑’이라는 테마에 깊은 관심을 보여왔다. 그가 출연한 대부분의 작품에서 대개 루이 가렐은 누군가의 연인으로 등장해 사랑의 복잡다단한 감정을 경험하곤 했다. 과도하게 어머니에게 집착하는 <내 어머니>(2004)의 소년, 오랜 여자친구를 갑작스러운 사고로 잃고 방황하는 <러브 송>(2003)의 이스마엘, 연인이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더라도 그것은 개인의 자유라고 말하는 <평범한 연인들>(2005)의 프랑수아 등이 있을 것이다.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영화 <몽상가들>(2003)에서조차 그는 쌍둥이 남매 이사벨(에바 그린)과 정신적인 사랑을 나누는 관계였다. 그러나 이들 영화 가운데 그 어떤 작품에서도 완전한 ‘해피엔딩’은 없다. 그와 다섯편의 작품을 함께한 감독 크리스토프 오노레는 “루이 가렐은 카메라 밖에서 더 밝고 유쾌하지만, 그가 지닌 특유의 멜랑콜리함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오노레의 말처럼 배우로서 루이 가렐이 지닌 매혹의 지점은 그가 태생적으로 지닌 ‘분위기’에 있다고 할 만하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루이 가렐의 무심한 표정은 그를 지켜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상상의 여지를 열어준다. 말하거나 표현하는 것보다 더 많은 요소들을 담고 있는 듯한 그의 얼굴은 서로의 마음을 탐구하는 사랑영화에 적합하고, ‘지금, 여기’ 외엔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을 두지 않을 것만 같은 나른한 분위기는 세상을 위해 행동하는 개인보다 자기만의 세계로 자꾸만 침잠하는 인물의 이야기로 루이 가렐을 이끌곤 한다. <파리에서>(2006)에서 루이 가렐과 함께 출연했던 로맹 뒤리스가 현대 프랑스영화의 거친 남성성을 대변하는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면, 루이 가렐이 대변하고 있는 거대한 한축은 서정성이라 할 만하다.
<질투>와 더불어 최근 개봉을 앞둔 <생 로랑>(4월16일 개봉)은 10여년 전 <몽상가들>에서 느꼈던 루이 가렐의 퇴폐적인 관능미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브 생로랑의 오랜 연인, 피에르 베르제에게 ‘남창’이라는 악담을 듣기도 했던 자크 드 바셰(루이 가렐)는 젊은 시절의 생로랑에게 마약과 변태적인 성적 취향의 세계를 일깨워준 인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70년대 파리의 나이트클럽에서 악명이 높았던 이 옴므파탈을 루이 가렐이 연기함으로써 실존 인물과는 다른 방식의 어떤 인물이 탄생하게 되었다고 베르트랑 보넬로 감독은 말한다. “루이 가렐은 자크 드 바셰라는 복잡한 인물에 가벼움과 현대적인 느낌을 더했다. (중략) 자크같이 기묘하고 퇴폐적이며 타락한 인물은, 비도덕적이고 깨끗하지 않은 사람으로 묘사할 수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루이는 그를 그렇게 표현하지 않았다.” 이브 생로랑의 까다로운 심미안을 충족시킬 만큼 좋은 취향을 가지고 있었던 동시에 그의 어두운 내면을 자극하는 위험한 존재. 루이 가렐이 구현해낸 자크 드 바셰는 아름답지만 가져서는 안 될 위태로운 예술품처럼 그리 길지 않은 등장만으로도 이브 생로랑과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나는 베르트랑 보넬로 감독에게 이렇게 말했다. ‘진짜 사랑 이야기를 만들어보자’고. 데이비드 호크니가 그린 자크 드 바셰의 초상화를 본 적이 있는데, 젊은 남자가 왜 이렇게 조용하고 사랑스러운 매력을 지니고 있는지 이해하고 싶었다. 그리고 어떻게 이 남자가 이브 생로랑을 파국으로 이끌게 되었는지도.” 그에 따른 루이 가렐의 해석은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아서, 베르트랑 보넬로는 이브 생로랑을 연기한 가스파르 울리엘과 루이 가렐 사이에 오가는 화학작용을 더 오래 보고 싶다는 생각에 기존의 계획보다 자크 드 바셰의 출연 분량을 늘리게 되었다고 말한 바 있다.
필립 가렐과 크리스토프 오노레, 그리고 베르트랑 보넬로. 루이 가렐이 프랑스영화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감독들의 사랑을 받게 된 데에는 물론 그 자신의 역량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겠지만, 유년 시절부터 너무도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예술적 수혜를 받고 자라났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배우 출신 할아버지와 영화감독인 아버지, 연극배우인 어머니를 둔 루이 가렐은 그것이 영화 현장인지도 알지 못한 채 여섯살 무렵 아버지의 영화 <구원의 키스>(1989)에 출연했다. 하지만 그가 영화의 매력에 빠진 진정한 계기는 프랑수아 트뤼포의 앙투안 드와넬(<400번의 구타>의 주인공으로, 그 뒤로도 여러 편의 트뤼포 영화에 출연한 가상의 인물. 트뤼포의 가장 중요한 페르소나로 평가받는다) 시리즈를 본 뒤였다. “나는 영화 속 장 피에르 레오(앙투안 드와넬을 연기한 배우이자, 루이 가렐의 대부)처럼 살고 싶었다. 누구보다 자유롭고, 누구보다 거칠고, 누구보다 독립적인 사람 말이다.” 그렇기에 ‘배우’로 살아가기로 결심한 루이 가렐의 다음 목표는 배우를 넘어 아버지 같은 연출자가 되는 것이다. “켄 로치, 페드로 알모도바르,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영화” 같은 작품들을 만들고 싶다는 그의 열망은 실현될 수 있을까.
Magic hour
하얀 슈트를 입은 어둠의 연인
낮에는 흰 가운을 입고 결벽적으로 깨끗한 공간에서 옷을 만들던 이브 생로랑(가스파르 울리엘)에게, ‘밤’은 그의 숨겨왔던 내면의 욕망이 살아나는 시간이다. 여느 때처럼 나이트클럽에서 친구들과 웃고 즐기며 샴페인을 마시던 어느 날, 그는 운명의 사랑을 만난다. 최근 국내외를 통틀어 이토록 관능적으로 나이트클럽 장면을 담아낸 영화가 있었을까. 정신없이 춤추는 사람들을 천천히 훑고 지나가는 카메라의 움직임을 따라가다보면, 그 끝엔 이브 생로랑의 가운만큼이나 하얗고 기품 있는 슈트를 입은 한 신사가 서 있다. 이브 생로랑의 어둠의 연인, 자크 드 바셰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그 장면의 여운이 굉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