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희극과 비극이 뒤섞이고 교차하는 영화 <간신>
2015-05-20
글 : 이주현

극도의 폭정을 일삼다 폐위된 조선의 10대 왕 연산군은 창작자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사극의 단골 주인공이다. <간신> 역시 연산군 시대를 배경으로 폭군의 광기를 원없이 보여준다. 하지만 <간신>은 주인공의 자리를 연산군의 지척에서 왕을 쥐락펴락했던 간신 임숭재에게 내준다. 갑자사화가 일어나고 1년 뒤인 1505년, 연산군(김강우)이 정권을 다스린 지 11년. 왕의 유희를 위해 미녀를 모집하는 채홍사로 임명된 임숭재(주지훈)와 임사홍(천호진) 부자는 전국 각지의 여성들을 강제로 징집해 왕에게 바친다. 그렇게 끌려온 여성들은 운평이라 불렸다. 기생은 말할 것도 없고 양반집 자제도 예외일 수 없다. 운평들의 명부인 <장화록>은 “강한 자는 적고, 약한 자는 적히”는 권력 구도를 반영한다. 임숭재는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 그러면서 미색을 갖춘 단희(임지연)를 운평으로 뽑아 수련시킨다. 임숭재, 임사홍 부자가 세를 넓혀가는 것에 초조해진 장녹수(차지연)는 명기(名妓) 설중매(이유영)를 통해 단희를 견제하려 한다.

<간신>은 왕 위의 왕이 되려 한 간신의 욕망을 주된 이야기로 가져가면서, 역사적으로 덜 알려진 채홍사에 관한 이야기를 버무린다. 권력에 아부하는 간신과, 자의든 타의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쳐야 했던 여인들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민규동 감독은 역사의 주변부에 머물러 있던 피지배자들의 시선으로 역사를 쓰려 한다. 그 시선은 종장에 이르러 두드러진다. 간신들은 끝까지 아귀다툼을 벌이고, 운평들은 왕의 간택을 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자신을 내던지는데, 그 지옥도의 마지막 장은 꽤나 쓸쓸하다. 그렇다고 허망하진 않다. 오히려 최고의 비극은 왕에게 돌아간다.

<간신>은 정사와 야사, 정박과 엇박, 희극과 비극이 뒤섞이고 교차하는 영화다. 전체 톤의 불균질함은 <간신>의 매력인 동시에 모험수다. 노출과 폭력의 묘사에서도 민규동 감독의 모험은 계속된다. 영화에서 섹스는 연산군의 광기를 보여주는 장치에 불과하다. 노출보다 폭력의 측면에서 <간신>은 진정 ‘19금’ 사극이라 할 수 있는데, 연산군의 기이하고 잔인한 행동, ‘인간 백정’이나 다름 없는 폭군과 간신의 칼부림이 노골적으로 재현된다. 500년도 전의 이야기지만 현세에 대한 적절한 풍자 같아 쓴웃음이 나올 때도 있다. 주지훈, 김강우의 에너지는 영화에서 차고 넘치지만 여배우들의 에너지가 그에 미치지 못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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