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박정범)은 건설현장에서 한철 내내 일하고 받을 노임을 몽땅 떼였다. 정신병을 앓고 있는 누나와 그 딸까지 건사해야 하지만 살고 있는 집은 지난여름 폭우에 절반이 쓸려내려갔다. 건설 현장 동료들은 정철이 중간에서 임금을 가로챈 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일거리가 없는 겨울철, 일당 8만원을 주는 된장공장에 겨우 자리를 얻는데, 예비신부인 사장 딸은 시댁으로부터 3800만원짜리 TV를 혼수로 요구받는다.
<산다>의 제목 앞에는 어떤 말이 생략된 것처럼 보인다. 포스터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새겨져 있다. 그 자리에 ‘가까스로’나 ‘괴물처럼’이라는 단어를 넣어도 무리가 없지만 더 적절한 단어는 ‘그냥’이 아닐까 싶다. 정철은 대단한 선의나 특별한 악의를 갖고 사는 게 아니라 그냥 살아보려 있는 힘을 다한다. 이들에겐 못되게 사는 것보다 그냥 사는 게 더 어렵다. 하청에 재하청으로 이뤄지는 건설공사처럼 정철이 당하는 착취는 재착취로 이어진다. 악한 자본가가 문제가 아니라, 구조가 문제다. 자본의 속성은 보이지 않는 손처럼 사람들을 옥죄는데 <산다>에 이르러 그 손은 마치 눈에 보일 듯 가공할 실체로 다가온다.
인물들은 알지만 관객은 모르는 과거사가 앞날에 대한 불안을 잡아당기도록 한 플롯은, 시간과 관계 맺는 이 작품의 영화적 성취에 대해 두고두고 음미할 가치를 남긴다. 억압받는 이들의 육체적 물성(物性)을 힘세게 담아낸 화면은 이 영화를 최근 몇해 사이 한국영화가 가본 적 없는 자리로 끌어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