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포커스] 공정한 계약서가 필요한 시대
2015-05-25
글 : 이예지
연극 < S다이어리 >에 대해 2차 저작물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한 박성경 시나리오작가
2004년 개봉한 영화 < S다이어리 >의 포스터.

총 4400억원의 부가가치를 창출했으나 작가에게는 1850만원만 지급되어 논란이 일었던 동화책 <구름빵> 사건을 기억하는가. 콘텐츠 산업 성장 이면의 저작권 사각지대를 조명한 이 사건은 여전히 긴 소송 중이다. 이를 계기로 수면 위에 오른 ‘매절계약’은 출판사가 저작자에게 일정 금액만 지급하고 향후 저작물 이용을 통해 얻는 수익은 독점하는 계약으로서, 저작자 입장에서는 2차 저작물의 권리 전부를 넘기는 것이다. 이러한 관행적 계약 및 갑과 을의 2차 저작물에 대한 권리를 둘러싼 갈등은 비단 출판업계의 일만이 아니다.

2004년, 153만 관객을 동원한 <S다이어리>의 박성경 시나리오작가는 2013년 <S다이어리>가 연극으로 공연 중이라는 소식을 접하고 제작사인 IHQ에 사실을 확인했다. 박성경 작가는 “담당자는 처음엔 자신의 불찰이라며 사과했지만, 원작자로서 제대로 된 계약을 요구하자 내용증명을 보내라고 했다. 이에 IHQ와 극단 익스트림 플레이에 저작재산권 및 저작인격권 침해 내용을 보냈으나 묵묵부답이었고,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운영하는 영화인 신문고에 신고를 접수했다”고 말했다. 영화인 신문고 홍태화 사무국장은 “당시 관행에 따르면 2차 저작권의 범위는 영상물에 한정된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이사, 변호사와 노무사 등이 배석한 1, 2차 중재회의는 IHQ에 원작자인 박성경 작가에게 공연권의 대가로 500만원과 향후 극단 익스트림 플레이에서 지급받을 금액의 70%를 지급할 것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IHQ는 “영상뿐 아닌 모든 2차 저작물에 대한 권리를 양도받은 것”이라며 중재안을 거부했다.

2003년 작성된 박성경 작가의 계약서에는 원안에 의해 영화화된 결과물의 모든 권리는 갑에게 영구히 귀속된다는 조항과 함께, ‘시나리오 저작권 양도증’이라는 특약이 별첨되어 있다. 영화인 신문고 심의위원이자 박성경 작가의 담당 변호사인 박형섭 변호사는 “저작권 양도증 특약은 명백히 갑의 우월적 지위 남용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저작권 일체를 가져가는 제8조는 포괄적인 범위와 막연한 기간을 명시하면서 작가에게 지급한 대가에 비하여 막대한 이득을 취하는 것이므로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덧붙여 그는 “양도된 저작권은 저작재산권으로, 저작인격권은 양도가 불가한 고유한 권한이다. 연극 <S다이어리>의 홍보물에 원작자 성명을 싣는 것은 저작인격권인 성명표시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또한 저작권법 제59조 배타적 발행권의 존속기간에 따르면 양도된 저작재산권은 최대 5년간 존속된다. 저작권법 제99조 제2항 ‘저작재산권자는 그 저작물의 영상화를 허락한 경우에 특약이 없는 때에는 허락한 날부터 5년이 경과한 때에 그 저작물을 다른 영상저작물로 영상화하는 것을 허락할 수 있다’란 규정을 유추해볼 때 영구적이며 포괄적인 권리귀속 주장 역시 무효의 소지가 있어 제한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며 법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들을 밝혔다. 한편, IHQ는 “박성경 작가의 시놉시스, 시나리오에 대해서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을 포함한 모든 권리를 양도받았다. 별도로 받은 저작권 양도증에는 ‘재산적 가치를 가지는 모든 권리가 포함된다’고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다. 본사는 저작재산권 전부를 양도받았기에 박성경 작가의 주장을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고 일축했다.

2013년 초연한 연극 < S다이어리 >의 포스터.

박성경 작가는 신문고의 지원을 받아 민사, 형사 소송을 시작했다. 지난 5월7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1차 재판이 열렸다. “저작권법에 따르면 불법의 소지가 충분한 계약서이지만, 이를 토대로 판결을 내리는 것은 판사이기에 계약서 조항의 해석이 관건”이라는 박성경 작가쪽은 특약의 2차 저작물 언급에서 ‘연극’이 빠진 것을 주된 논리로 삼았다. 이 과정 중 초연 후 3년 동안 전국을 순회하며 오픈런으로 공연 중이던 연극 <S다이어리>는, 1차 재판 다음날인 5월8일 제목을 <시크릿 다이어리>로 바꾸고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바꾸며 포스터와 보도자료에서 원작자의 크레딧을 삭제했다. “이러한 ‘눈 가리고 아웅’식 대처는 오히려 악수”라는 것이 박성경 작가의 의견이다. “등장인물과 내용 등 원작과의 유사성을 충분히 입증할 수 있는 상황에서 제목과 이름만 바꾼다는 것은 오히려 그 유사성을 인정하는 방증이다.”

이 사태에 대해 시나리오작가조합 김현정 대표는 “이 사건은 한국영화계에서 시나리오작가가 얼마나 경시받는 위치에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며, “제작사에서 박성경 작가에게 최소한 사전 양해를 구하기만 했어도 이 사태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정 대표는 “시나리오작가조합 명의의 탄원서 제출과 조합 차원의 전폭적인 지지를 결의, 탄원서를 작성 중이며 타 영화 관련 단체들에도 연대서명과 동참을 요청할 계획”이라며 향후 대응 방안을 밝혔다. 2차 저작물에 대한 권리로 속앓이한 것은 박성경 작가뿐만이 아니다. <싱글즈>(2003)의 권칠인 감독 또한 협의 없이 만들어진 뮤지컬 <싱글즈>가 공연되는 것을 지켜본 경험이 있다. 권칠인 감독은 “뮤지컬 <싱글즈>가 영화 <싱글즈>의 연출을 그대로 차용한 장면으로 광고하는 것을 처음 접했을 때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계약상 2차 저작물에 대한 권리를 인정받지 못했기에 뮤지컬화 자체를 몰랐던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와 유사한 박성경 작가 사태에 대해 “작가들의 경우는 생업이 불가한 수준의 각본료를 받는다. 그런데 2차 저작물에 대한 권리까지 박탈당하면, 작가들이 영화산업에서 이탈하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다. 창작자들의 몫을 인정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영화산업의 미래도 있을 것”이라고 첨언했다.

2013년 5월 이행협약을 체결한 시나리오 표준계약서는 이러한 피해사례를 수렴하여 수정되는 중이다. 시나리오 표준계약서의 주석서를 쓴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전 정책위원장 전영문 PD 역시 박성경 작가 사태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당시 계약은 부당계약이었다. 시나리오 표준계약서는 작가의 저작권을 지킬 수 있는 조항을 포함한다. 갑은 2차 저작물 작성권과 타 매체권에 있어서 을과 협의를 거쳐야 하며, 별도의 대가를 지불하여야 한다.” 그러나 표준계약서는 권고되되 강제되지 않기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전영문 PD는 “시나리오 표준계약서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고시를 통과하면 분쟁 시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으나, 의무는 아니기에 작가들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말한다. 박찬욱 감독은 “나 역시 한명의 작가로서 한국 시나리오작가들이 정당한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설령 박성경 작가의 당시 계약이 모든 권리을 양도하는 것이었다 할지라도, 저작권을 중시하고 보호하려는 현 시대적 맥락에서 법원이 전향적으로 해석해주길 바란다”며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뜨거운 감자인 2차 저작물에 대한 권리는 결국 누구의 품으로 돌아갈 것인가. 각자가 가져야 할 정당한 몫을 가지게 되는 공정한 산업을 기대해본다.

2015년 5월7일 1차 재판 이후 제목을 <시크릿 다이어리>로 바꾼 포스터.

“시나리오작가 전부의 문제다”

<S다이어리> 박성경 작가

-심경이 어떤가.

=신인작가들은 독배인 줄 알면서도 먹어야 하는 심경으로 계약서에 서명한다. 그 후 10년이 지난 어느 날 라디오에서 연극 <S다이어리>의 티켓을 선물로 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내 창작물이 연극이 되어 공연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내 창작물이 내 의사와 무관하게 2차 저작물이 된다는 것은 헤아릴 수 없이 고통스러운 일이다.

-IHQ와 어떻게 작업을 시작하게 됐나.

=IHQ가 주최한 시놉시스 공모전에서 <전도연의 섹스다이어리>라는 트리트먼트로 당선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각본 작업한 것이기에 나는 원안자이자 각본 작가다. 당선된 원안 트리트먼트에 대해서도 저작권 등록을 해놓은 상태다.

-민사, 형사 소송을 강행했다.

=이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나리오작가 전부의 문제다. 다른 작가들의 권익을 위해서라도. 제2, 제3의 사례기 나오면 내가 좋은 선례가 되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든다. 앞으로 다른 작가들에게 나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법원이 좋은 판례를 남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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