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뉴욕] 서부극의 테마를 빌려온 잔혹동화
2015-05-26
글 : 양지현 (뉴욕 통신원)
마이클 파스빈더가 제작하고 주연까지 맡은 <슬로 웨스트> 개봉
<슬로 웨스트>

요즘 가장 핫한 배우 중 한명인 마이클 파스빈더가 주연과 제작을 맡은 <슬로 웨스트>는 한 평론가의 말처럼 서부영화의 테마를 빌려온 잔혹동화다. 서정적인 동시에 서부극 특유의 잔혹함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이 작품은 그룹 ‘더 베타 밴드’ 출신의 존 매클린의 장편 데뷔작이다. 파스빈더가 맡은 역할은 19세기 서부개척시대의 바운티 헌터(bounty hunter, 현상금 사냥꾼) 사일러스. 사일러스는 숲에서 재미 삼아 미국원주민을 사냥하는 북부군으로부터 16살짜리 소년 제이(코디 스밋 맥피)를 구해준다. 제이는 아버지와 함께 서부로 떠난 여자친구 로즈(카렌 피스토리우스)를 찾아 스코틀랜드에서 미 중서부인 콜로라도까지 머나먼 길을 혼자 찾아가던 중이다. 사일러스는 제이에게 돈을 좀 주면 여자친구에게 무사히 데려다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사실은 로즈와 그녀의 아버지에게 엄청난 현상금이 걸려 있고, 사일러스는 현상금을 차지하기 위해 제이를 이용하려는 속셈이다. 사일러스의 냉소적인 모습과 제이의 순진무구함 그리고 백일몽 같은 첫사랑에 대한 염원이 두 사람의 여정을 채워나간다. 그 여정의 배경은 단돈 1센트에도 상대방의 목을 가르는 서부개척시대의 잔혹함이다. 사일러스의 간결한 내레이션으로 진행되는 이 영화는 코언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7) 또는 <더 브레이브>(2010)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파스빈더와 맥피의 연기호흡도 볼만하지만, 또 다른 현상금 사냥꾼 그룹의 우두머리 페인 역으로 출연하는 벤 멘델슨의 연기도 눈길을 끈다. 넷플릭스 시리즈 <블러드라인>과 영화 <스타드 업>(2013),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2013), <애니멀 킹덤>(2010) 등에서 놀라운 연기를 선보인 그는 이 작품에서 길지 않은 출연 분량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렇다면 마이클 파스빈더가 저예산 서부극, 그것도 신인감독의 작품에 주연과 제작까지 맡은 이유는 무엇일까. 파스빈더는 매니저를 통해 ‘더 베타 밴드’의 멤버이자 밴드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해온 존 매클린에 대해 알게 되었다. 매클린의 작품세계에 호감을 느낀 파스빈더는 이후 그의 단편영화 <맨 온 어 모터사이클>(2009)과 <피치 블랙 하이스트>(2011, BAFTA 어워즈 최우수 단편상 수상)에 주연으로 출연했고, 자신의 영화사인 DMC 필름스의 첫 작품으로 <슬로 웨스트>를 제작하였다. 제31회 선댄스영화제에서 월드시네마 부문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슬로 웨스트>는 지난 5월15일 뉴욕과 LA에서 한정 개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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