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아유]
[who are you] 손여은
2015-05-26
글 : 송경원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코인라커>

영화 2015 <세계일주> 2015 <코인라커> 2012 <내가 버린 여름> 2008 <고死: 피의 중간고사>

드라마 2014 <세 번 결혼하는 여자> 2013 <구암 허준> 2012 <대왕의 꿈> 2011 <각시탈> 2010 <드라마스페셜-여름이야기> 2009 <드림> 2009 <찬란한 유산> 2007 <뉴하트> 2007 <연인이여> 2005 <돌아온 싱글>

모든 배우는 주연을 꿈꾼다. 작품 전체를 지배하고 이끌어가고 싶은 욕망은 배우로서 당연하다. 하지만 주연이 되기 위해 연기를 한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성공 지향적인 태도에 익숙해져 매 순간 본질을 놓치는 것이다. <코인라커>의 주연을 맡은 손여은을 만난 자리에서, 기자 또한 그랬다. ‘무명의 설움을 딛고 10년 만에 영화의 주인공을 차지한 소감’ 따위를 물으며 그간의 세월을 주연을 위한 준비 단계로 폄하했다. 가만히 듣던 손여은 배우는 이미 수차례 들어온 질문인 양 담담하고 친절하게 기자의 굳은 머리를 깨주었다. “드라마 <세 번 결혼한 여자>(이하 <세결여>) 이후로 요즘 생활이 어떻게 바뀌었는지에 대한 질문이 많아졌다. 가장 많이 바뀐 건 그런 시선들이다. 사실 무명의 설움이라는 말이 낯설다. 그런 걸 딱히 의식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20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연기를 하며 인기를 좇아 역할을 고른 적은 없다. 예전에는 어땠는지 묻지만 그때도 지금도 그저 연기를 하고 있다.” 차분하지만 단호한 대답에 배우 손여은의 지난 세월, 연기관, 지향이 모두 묻어난다.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세결여>가 손여은의 터닝 포인트였음은 분명하다. 2005년 데뷔 후 크고 작은 역할로 얼굴을 비쳤던 그녀가 대중적인 인지도를 확보한 건 <세결여>의 신개념 악녀 채린 역할 덕분이다. 채린은 기존의 표독스런 악녀들과는 다르게 한편으론 철없고 때론 맹랑한 모습으로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원래 역할이 그 정도로 크진 않았는데 점차 비중이 늘었다. 김수현 작가님이 정확한 지시를 하기로 유명하다고 들어 긴장했는데 ‘너의 날연기, 생연기의 느낌이 좋으니 자연스럽게 하라’고 하시더라. 최선을 다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했다.” 손여은은 무채색의 배우다. 빈말이라도 눈에 띄는 화려함으로 눈길을 끄는 스타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주변의 개성파 배우들이 심심하게 보이게 만드는 기묘한 침착함이 있다. 차분하고 자연스런 호흡으로 작품을 현실의 영역으로 당겨온다. 적지 않은 작품을 거쳐왔음에도 손여은이란 배우가 아직 대중적으로 각인되지 않은 것은 그녀가 역할을 끌고 들어와 자신의 색깔로 녹여내는 배우가 아니라 역할 안으로 녹아들어가 철저히 자신의 얼굴을 지우는 쪽에 가까운 배우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괴롭히는 <세결여>의 채린을 보고 모성의 한계를 보여준 <코인라커>의 엄마 연을 떠올리긴 쉽지 않다.

“사실 <세결여>로 주목받기 한참 전에 <코인라커>를 먼저 찍었다. 4년 동안 개봉을 못해 이대로 묻히나 싶었는데 전주국제영화제에도 초대되고 개봉 기회를 얻게 되어 기쁘다. 스탭들에게 덜 미안해해도 될 것 같다.” <코인라커>의 연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아이를 지키기 위해 무엇이든 하는 엄마다. 연은 도박 빚을 떠넘긴 무책임한 남편의 폭력마저 견딘다. 오직 자폐증세가 있는 아들을 데리고 뉴질랜드로 떠나기 위해서다. 하지만 영화 내내 아이를 향한 애틋한 애정을 직접 표출하진 않는다. 어느새 연의 얼굴로 바뀐 손여은은 감정을 억누르고 건드리면 깨질 듯한 불안함으로 작품 전체의 긴장감을 지배한다. “육체적인 고통보단 감정을 냉소적으로 표현해야 하는 게 어려웠다. 극한 상황과 강한 캐릭터에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감독님이 생각하는 게 워낙 뚜렷해 믿고 따라갔다.” 주연이 목표가 아니라 그저 다양한 역할을 오래 해보고 싶다는 그녀에게 연기가 왜 좋으냐는 우문을 던졌다. “작품마다 전혀 다른 사람 같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그게 재미있다. 인물에 집중하다보면 얼굴 근육마저 바뀌는 것 같다. 캐릭터를 만나고, 만들고, 해석하는 그 과정이 행복한 선물이다.” 한동안 충전의 시간을 가졌다며 이제 곧 좋은 작품으로 돌아올 거라는 그녀의 말이 괜히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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