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손여은)은 자폐 증세가 있는 아들 건호와 함께 한국을 떠나 뉴질랜드에서 새 삶을 시작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사채업자에게 쫓기는 신세임에도 전세금을 몰래 빼서 도박판으로 달려가는 폭력적이고 무책임한 남편 상필(이영훈)이 연에게 떼어낼 수 없는 혹처럼 달라붙어 있다. 급기야 사채업자 재곤(정욱)은 상필의 부인인 연에게 연대책임을 물게 하고 돈이 없으면 몸으로 빚을 갚으라 한다. 그 과정에서 연은 재곤의 얼굴에 상처를 남기고, 이후 재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돌아갈 집도 없고 아이를 돌봐줄 가족도 없는 연은 뉴질랜드행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 지하철 물품보관함, 코인라커에 건호를 남겨둔 채 노래방 도우미 일을 시작한다.
<코인라커>는 감당할 수 없는 무게의 짐을 저 혼자 짊어지고선, 그럼에도 살아보겠다고 몸부림치는 한 여자의 이야기를 처절하게 그려낸다. 연이 삶의 끈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아들 건호 때문이다. 이 지극한 모성 혹은 지독한 모성이 표현되는 방식이 충격적이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몸도 팔 수 있는 어머니의 이야기여서가 아니다. 일하러 가기 위해 아이를 코인라커에 가두는 설정이 절망적이고 충격적이다. 연은 여관방의 주인과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먹는 여학생들에게 잠시만 아이를 봐달라는 부탁도 해보지만, 결국 절망의 피난처로 코인라커를 택한다. 그런데 아들을 코인라커에 남겨두는 어머니의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안에서는 탈출을 시도할 수 없는 폐쇄된 좁은 공간은 자칫 죽음과도 연결되는 공간이다. 이 모자(母子)의 절망적 상황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설정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모성으로 포장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가족은 안중에도 없던 상필이 아들이 쓴 카드를 보고 자신의 못난 행동을 뉘우치는 과정도 감정적으로 쉽게 동의되지 않는다.
한편 영화는 건호의 심정을 판타지 장면을 통해 보여준다. 건호는 자신의 상상이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과 대화를 나누며 불안과 공포를 떨쳐내려 한다. 아이의 서글픈 현실과 희망적 이야기로 채워진 상상의 충돌은 외려 아이의 고통을 부각시키는 효과적 장치로 쓰인다. 영화의 엔딩에선 연과 상필과 재곤의 지하철 액션 신을 통해 처절함의 끝을 보여준다. 거친 만듦새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끝까지 집중하게 되는 것은 손여은, 이영훈, 정욱 등 배우들의 연기 덕이다. <두뇌유희 프로젝트, 퍼즐>(2006)을 만든 김태경 감독의 두 번째 장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