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지웅의 경사기도권]
[허지웅의 경사기도권] 삶이란 호락호락하지 않다, 누구에게나
2015-05-28
글 : 허지웅 (작가)
일러스트레이션 : 한차연 (일러스트레이션)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를 보고 멜 깁슨의 <매드맥스>를 떠올리다

한 남자가 외딴 도로에 서 있다. 경찰이다. 차를 손보는 중이다. 옅은 하늘색 반팔 티셔츠에는 기름때가 요란하다.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무릎 바로 아래까지 꽉 찬 가죽 부츠의 주름이 보기 좋게 접혔다 펴지기를 반복한다. 차 안에서는 무선통신이 요란하다. 동료들이 폭주 범죄자 나이트라이더를 추격하는 중임을 알리는 경찰 통신이다. 남자가 가죽 재킷을 걸쳐 입고 차에 올라탄다.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백미러를 살짝 흘긴다. 동료들은 전멸했다. 경찰들을 따돌린 나이트라이더의 8기통 엔진이 괴성을 지르며 도로를 가른다. 마침내 남자의 차가 출발한다. 차체에 새겨진 인터셉터라는 글자가 크고 선명하다. 나이트라이더와 길 한가운데서 마주한다. 서로를 향해 질주하는 두대의 차. 충돌의 순간, 나이트라이더가 먼저 핸들을 틀어 아찔하게 피해나간다. 여전히 운전대를 잡고 질주하는 나이트라이더. 그러나 그가 흐느끼기 시작한다. 이제 다 끝났다며 울부짖는다.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상대의 압도적인 무게감을 감지했기 때문이리라. 나이트라이더는 얼마 더 가지 못하고 결국 전복사고로 목숨을 다한다. 마지막 폭발의 순간, 멈춰선 인터셉터에서 남자가 내린다. 선글라스를 벗고 도로 위에 선다. 먼지가 되어 사라지는 나이트라이더를 안타깝게 바라본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선글라스를 벗기까지 굵고 신속하게 이어지는, 여러분 여기 이 영웅의 근심을 보시오, 라고 외치는 듯한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클로즈업. 처음으로 온전한 모습을 드러낸 남자의 전신. 그렇게 세상은 멜 깁슨과 만났다.

<매드맥스> 시리즈는 인류의 대중문화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핵전쟁 이후의 디스토피아를 다룬 텍스트들 가운데 <매드맥스>의 영향권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것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요는 스타일이다.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조지 밀러는 <매드맥스>를 통해 완벽하게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해냈다(물론 그조차 돈 존슨의 <소년과 개>로부터 엄청난 영향을 받았다. 이를테면 제록스와 스티브 잡스의 관계랄까). 조지 밀러가 시도한 것은 서부극의 무대를 핵전쟁 이후 사막화된 지구로 바꾸어놓고 피 한 바가지를 쏟아부은 것뿐이었으나 그가 성취한 것은 그보다 훨씬 놀랍고 뿌리 깊은 것이었다. 그리고 이 스타일은 당대의 수많은 창작자들에게 도무지 베끼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충동을 이끌어냈다. <매드맥스>가 없었다면, 맥스 로카탄스키가 없었다면 우리는 <북두의 권>의 켄시로도 <폴아웃>도 <보더랜드>도 <더 로드>도, 하다못해 <워터월드>마저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여기 왜 <워터월드>가 끼냐고 불평하는 독자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두고두고 영원히 놀려먹을 수 있는 영화가 내 인생에서 사라진다는 건 너무 가슴 아픈 일이다).

바로 그 <매드맥스>의 중심에 맥스 로카탄스키, 멜 깁슨이 있다. 애초 멜 깁슨은 맥스 로카탄스키가 될 생각이 없었다. 단지 친구의 오디션에 따라갔을 뿐이다. 대개의 “친구의 오디션에 따라갔을 뿐”인 전설이 그러하듯, 조지 밀러는 친구 대신 멜 깁슨에게 홀딱 반하고 말았다. 조지 밀러는 괴짜를 찾고 있었고, 멜 깁슨은 바로 전날 바에서 난투극을 벌인 덕분에 사람이라고 볼 수 없는 몰골을 하고 있었다. 조지 밀러는 이런 꼴로 찾아온 배우의 정신세계에 동물적으로 끌리고 말았다. 그는 멜 깁슨에게 상처가 다나은 이후 다시 한번 찾아와달라고 요청했다. 멜 깁슨은 몇주 후 그를 다시 찾았고, 그렇게 맥스 로카탄스키가 되었다.

<매드맥스> 이후 멜 깁슨의 경력은 우리 모두 알고 있듯 화려하기 짝이 없다. 그는 세편의 <매드맥스> 시리즈가 끝나자마자 <리쎌 웨폰> 시리즈의 마틴 릭스가 되었다. 80년대는 멜 깁슨의 것이었다. 90년대라고 다르지 않았다. <브레이브 하트>의 월리엄 월레스가 되었고 직접 연출을 했으며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했다. 실존 인물을 스크린 위로 가져온 영화 가운데 역사 왜곡에 있어 전무후무하다 할 만한 <브레이브 하트>가 과연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할 만한 작품인가에 관한 시비가 있었다. 그러나 곧 잊혀졌다. <컨스피러시>나 <싸인>과 같은 오래도록 기억될 영화에서 더욱 오래도록 기억될 연기를 해냈다. 2000년대 들어선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와 <아포칼립토>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연출도 하는 배우’가 아니라 우리 시대 가장 빼어난 감독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온통 좋은 일뿐이다. 이토록 성공적인 인생은 드물다. 그러나 결코 누구에게도, 삶이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브레이브 하트>는 역사 왜곡 논란이 있었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고증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 영화는 오랫동안 기획된 만큼 고증에도 더없이 많은 노력이 들어갔다. 문제는 이 영화에 투영된 연출자의 가치관이었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유대인을 욕먹이기 위한 영화라고 손가락질당했다. <아포칼립토>는 원주민을 너무 잔혹하게 묘사했다는 여론의 십자포화를 받았다. 특히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전후하여 그의 반유대주의 정서가 도마 위에 올랐다. 그의 아버지는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사람이었다. 독실한 가톨릭 교도인 멜 깁슨은 유대인을 자극하는 발언으로 이전에도 논란에 휩싸이는 일이 잦았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로 그는 유대인들과의 전쟁을 선포한 셈이었다.

나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속에 묘사된 유대인과 당대 유력 사제들의 행동이, 실제 우리가 보고 읽는 성경에 기록된 것 이상,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록된 바에 따르면 예수는 예루살렘에 도착하자마자 교회를 신랄하게 비판하였고, 성전의 웅장함에 매료된 제자들을 꾸짖었다. 예수는 사실상 유대 사제들에 의해 정치범으로 몰려 살해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자신들의 민족주의 성향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상대의 가치관을 공격하고 역사 왜곡을 운운하는 건 곤란하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단지 유대인을 욕먹이기 위해 만든 영화라고 말하는 건 2차대전 다큐멘터리를 히틀러 욕먹이기 위한 선전물이라고 폄훼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는 공격이다.

어찌됐든 할리우드에서 유대 권력을 무시한다는 건 관자놀이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효과적인 퇴장의 지름길이다. 실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이후 멜 깁슨의 필모그래피에는 별다른 게 없다. 직접 각본을 쓰고 제작하고 연출한 <아포칼립토> 정도를 제외하면 기억에 남을 만한 작품이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에 멜 깁슨의 알코올 중독 문제와 가정사까지 겹쳤다. 이제 와 멜 깁슨은 연예 가십난에나 가끔 등장하는 잊혀진 추억 속 배우 취급을 받는다. 이제는 늙고 쇠락한 사고뭉치 80년대 액션 영웅 말이다. 이런 상황에 <익스펜더블3>에 나오는 그를 보고 있는 건 곤혹스럽다.

멜 깁슨은 전통적인 공화당 지지자 즈음으로 여겨져왔다. 그가 단 한번도 자신의 정치 성향에 대해 발언한 일이 없음에도 말이다. 그러나 멜 깁슨은 부시의 이라크 전쟁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비판한, 몇 안 되는 할리우드 배우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평소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 확실한)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을 지지하기도 했다. 멜 깁슨에게 필요 이상의 과한 뉘앙스로 자기 의견을 밝히는 문제가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는 부주의하다. 때로 사려 깊지 못하다. 그로 인해 쓸데없이 너무 많은 오해를 사고 말았다. 나는 멜 깁슨이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함께 기록될 만큼 위대한 감독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되리라 믿는다. 그가 만들 영화들을 상상하고 기다린다. 그때까지는 맥스 로카탄스키의 ‘마지막 8기통 인터셉터’, XB 포드 팔콘 쿠페를 타고 달리는 꿈이나 실컷 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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