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사의 아수라장]
[곡사의 아수라장] 삶은 이미 연극이다
2015-05-29
글 : 김곡 (영화감독)
마노엘 드 올리베이라 감독의 미래를 상상하며 추모사를 대신하다
<마법의 거울>

마노엘 드 올리베이라 감독이 타계했다. 향년 106살. 참 기나긴 여정이셨다. 구로사와 아키라, 오슨 웰스, 한형모, 김기영 감독보다 형님이시니 말 다 했다. 그의 죽음을 알리기 위해 기자들은 “독특한 영상미학을 추구했던 최고령 감독”이라고 틀에 박힌 수사들을 퍼다나르지만,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 바쁜 우리는 정작 그 ‘독특한 영상미학’이 뭔지 모른다. 기자들도 모른다.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고 아무도 모른다. 그를 진정 노장으로 만든 그만의 ‘독특한 영상미학’이란 사실, 연극성에 대한 집착이었다. 그의 모든 영화는 한정된 공간에서, 역할을 겨우 연기해내는 배우들이 대사를 주고받는 연극영화다. 그것은 무대를 숨기지 않는 말들의 영화였고(<언어와 유토피아>), 배역극을 숨기지 않는 영화였다(<신곡>). 심지어 그는 아예 연극을 촬영했다(<식인> <제5제국> <나의 경우>). 고집이 조금 꺾인 후기에도 그는 여전히 연극배우의 생을 다룬다(<나는 집으로 간다>). 그가 100년 동안 견지했던 슬로건은, 1920년대 무성영화 시절부터 업데이트를 거부한 슬로건, 즉 ‘연극 만세’, ‘영화여! 연극으로 돌아가라!’였다.

<불안>

‘연극 꺼져, 영화 만세’에 대한 저항

죄송하지만 말리고 싶다. 엄청난 고군분투가 예상되는 바이기 때문이다. 형님뻘이더라도 불과 16살 터울인 발터 베냐민은- 카메라와 같은 기계 개발에 힘입어- 총체성의 이념이 붕괴되고 파편성의 세계가 도래할 것이라고, 그래서 상징을 알레고리가, 회화를 사진이, 연극을 영화가 대체할 것이라고 읊조렸고, 실제로 그의 예언은 보란 듯이 맞아떨어졌다(그의 말대로 카메라의 발명과 함께 “길거리의 사람들까지도 배우가 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힘이라도 보태듯 앙드레 바쟁은 영화는 연극을 이겨야 한다며, 연극 무대가 무(無)에 둘러싸여 있는 반면 영화 무대는 무한(無限)에 둘러싸여 있다며, 그래서 승산이 있다며 열심히 영화를 응원했다. 사실 지가 베르토프가 자신의 다른 소비에트 경쟁자들을 욕할 때 자주 썼던 말도, “영화여! 무대를 벗어나라!”였다. 영화 초창기에 거의 모든 작가들은, 연극을 영화의 주적으로 삼았던 셈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연극의 한정된 무대, 마치 그곳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으스대는 총체성 드립, 그래서 본의 아니게 생겨나는 아우라 허세, 삶을 무대 위에 재현해내는 게 고작인 우주 중2병 등은 모두- 비로소 길거리로 뛰쳐나온 영화가 길길이 날뛰며 쳐부숴야 하는 구시대 유물처럼 보였던 건 당연하다. SNS로 서로의 생활을 실시간 업데이트하는 시대에, 비좁은 연극 무대라니. 쳇. 산전수전공중전을 펼치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도 가끔씩은 지루할 판에, 컷도 안 바뀌고 대사만 공중에 날려대는 <언어와 유토피아>를 보라고? 쳇. 쳇. 쳇.

올리베이라의 고군분투가 여기에 있다. 다들 고개를 끄덕일 만한, 지금은 너무나도 당연해 보이는‘연극 꺼져, 영화 만세’ 슬로건에 저항하셨던 거다. 그것도 100년씩이나. 올리베이라 감독에겐 100년을 버틸 만한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그것은- 그의 인터뷰에 따르면- “연극은 삶 이전에 이미 존재한다. 왜냐하면 삶은 이미 연극이기 때문”이라는 실로 기괴한 생각이었다(그래서 올리베이라는 삶을 ‘전연극’(pre-theatre)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이미 관객이고, 그래서 삶이 이미 연극이라니. 헐. 헐. 헐… 하고 안타까운 듯 개탄하다가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그도 그럴 만한 정황증거들, 베냐민과 바쟁이 너무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미처 보지 못한, 그러나 올리베이라는 늦게까지 사시는 바람에 봐버린 기이한 정황증거들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는 노래방에 가서 가수 흉내를 낸다. 직장에선 고문관이어도 이 무대에서만큼은 나도 임재범이다. 그리고 우리는 페북질을 하면서 캐릭터를 만든다. 현실은 찌질한 취준생일지라도 이 사이버 무대에서만큼은 나도 패리스 힐튼이다. 또 우리는 리얼리티 쇼에 출연해서 연기도 한다. 아직은 평민이지만 이 가상공간에서만큼은 나도 신데렐라이고 스타일 수 있다. 카메라가 더 많아지면서, 그리고 그만큼 소통 채널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우리는 각자만의 무대를 가지게 된 것이다. 나의 페북질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나만의 독무대인 식이다. 베냐민이 너무 일찍 가서 보지 못한 것, 그리고 올리베이라가 너무 늦게 가서 보고 만 것은 이것이 아닐까. 종교와 이념으로 모든 것을 퉁치던 총체성의 세계가 붕괴되고 파편들의 속세(카메라에 의해 더욱더 늘어나는 스크린, 배우, 관객, 그리고 평론가)가 도래한 것까지는 맞다. 그러나 그 파편들이 어느 한계치를 넘어서 폭증하게 되면, 일군의 파편들끼리 다시 모여 작은 무대들을 만들게 되고, 재총체화가 시작된다. 극한의 파편화 속에서 모이게 된 이 파편그룹과 저 파편그룹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간극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내 페북질할 시간도 모자란데 페친의 페친의 페친의 페친의 페친의 페북에까지 가서 도배질할 시간이 없다. 파편들의 세계는, 각자 독립적인 무대들이 벌집 구멍처럼 모여 있는 형국으로 재조직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로컬 밴드가 그 지역에선 문화 대통령의 위엄을 갖듯이- 각자 독립적인 무대에서 다시 스타가 나타나며 아우라가 고개를 드는, 하위-재총체화(단어 한번 고약하다)로 이어진다. 소녀시대만 봐도, 베냐민은 틀렸고, 올리베이라가 옳았던 것 같다. 소녀시대는 여‘신’이다(EXID 분발 요망). 그리고 신은 오직 연극 무대에서만 현현한다. 길거리의 모든 사람이 배우일 수 있다고 낙관했던 스크린이 아니라. (갑자기 궁금: 올리베이라 감독은 트위터를 했을까? 페북을 했을까? 트위터도 안 하고 페북도 안 하는 난 모르겠다.)

<나는 집으로 간다>

카메라와 컴퓨터를 비롯한 테크놀로지가 벌집을 만든다는 증거는, 영화에서도 나타난다. 올리베이라 연극영화로 시작한 이 글에 등장하기엔 기이하기 짝이 없겠지만, SF영화들이 그렇다. 카메라건 컴퓨터건, 시각장치건 통신장치건, 기계들은 소통을 이어주는 똑같은 비율로 소통을 끊기에, 필연적으로 연극 무대를 만들기 때문이다. 크게 세 가지 무대장치들이 있는 것 같다. 먼저 왕따형이 있다. 낯선 외계 행성에 가서 지구인들이 왕따를 당하는 고전 SF들이 이에 속한다. <E.T.> 이후에 좀더 친숙한 외계인들을 등장시키는 현대 SF들은 이의 변용일 뿐이다. 외계인은 지구에서- 왕따까진 아니어도- 은따를 당한다(대표적으로 <엑스맨> 시리즈). 은따 혹은 왕따들은 낯선 공간에서 배역을 완수해나가야 하고, 어느 시점에 이르러 자신만의 배역을 되찾아야 한다. 시뮬레이션이 두 번째 유형이다. 동서양, 과거-현재-미래 총짬뽕 무대를 자랑한 <블레이드 러너>부터 그랬다. 그러나 가장 현대적인 시뮬레이션은 역시 가상현실이다. 가상체험 기계들 덕분에, 게임공간이 하나의 무대가 되고(<매트릭스> 시리즈), 꿈과 기억조차 하나의 무대가 된다(<인셉션>). 세 번째 유형이 그 악명 높은 타임슬립이다. <백 투 더 퓨처>에서처럼 타임머신은 시간을 접고, 또 시간을 포개고, 심지어 꺾어놓는다. 그리고 접히고 꼬인 시간은 폐쇄회로가 되어 그 바깥이 무(無)인 연극 무대를 만드는데, 그 이유는- 닥터 브라운의 입을 빌리자면- 바깥으로 나가기라도 하면 “시공연속체의 조직들을 와해해 우주 전체를 파괴”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엄마와 아빠의 첫 키스를 성사시키지 못하면 나는 존재하지 않게 되는 그런 무대. 사실 다 필요 없다. SF영화의 숙명적인 연극성을 증거하기 위해선 <그래비티> 하나면 족할 수도 있다. 너무 넓어 무엇이든 고립시키는 공허만이 그 바깥이 되고, 그리고 휴스턴 기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만이 그 코러스가 되는 우주 무대.

SF영화의 테크놀로지를 대체한 ‘말’

물론 올리베이라는 SF영화를 연출한 적은 없다. 하지만 난 그것이 시간과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장소와 국적의 문제였을 거라 생각한다. 난 올리베이라가 포르투갈이 아니라 미국에서 태어났더라면 SF영화에 도전했을 거라 확신한다. 그리고 지금도 올리베이라 필모그래피에서 전술한 SF의 세 가지 무대 유형을 분류해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예컨대 왕따(<언어와 유토피아>), 시뮬레이션(<나의 경우> <나는 집으로 간다>), 타임슬립(<마법의 거울> <불안>)… 뭐 이런 식?). SF영화 대신 그는 <불확정성의 원리>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올리베이라는 SF영화의 테크놀로지를 ‘말’로 대체했을 뿐이다. 말은 그 안에서 흩어지고 또 그에 스며들기 위해 허공을 찾는다. 그리고 바로 그 허공이 무대를 만든다. 말이야말로 무대장치인 것이다. 생에서뿐만이 아니라, 영화에서도. 더도 말고 딱 100년만 더 사셨어도 <그래비티>보다 더 근사한 SF영화를 만들어주셨을 거란 믿음으로, 올리베이라에 대한 추모사를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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