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ash on]
[flash on] 결혼, 센 예방주사를 맞은 기분
2015-06-04
글 : 송경원
사진 : 백종헌
<마이 페어 웨딩> 김조광수, 김승환
김조광수, 김승환(왼쪽부터).

가장 개인적인 선택이야말로 가장 정치적인 행위다. 2013년 김조광수와 김승환 커플이 결혼식을 올리겠다고 발표했을 때 그들의 결혼은 합법적인 동성혼의 정당성을 널리 알리기 위한 중요한 이벤트가 되었다. 하지만 정작 그 과정을 찍은 다큐멘터리 <마이 페어 웨딩>은 심각한 메시지를 전하지 않는다. 그저 대한민국에서 제일 유명한 동성커플도 결혼 준비에 지지고 볶는 건 똑같다는 걸 알려줄 뿐이다. 그들도 우리처럼, 이 당연한 문구가 상식이 되는 세상을 위해 지금도 멈추지 않고 투쟁 중인 두 사람을 만났다.

-드디어 개봉이다. 식상해도 이 질문을 먼저 하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두 사람의 결혼을 영화로 남기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무엇인가.

=김승환_미국의 게이운동가 하비 밀크에 대해서도 영화로 제작됐지만 실제 그의 모습에 대해선 거친 영상 몇개가 있을 뿐이다. 하비 밀크의 운동이 강조된 것에 비해 그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어떤 고민을 껴안고 살았는지에 대한 살아 있는 기록이 없는 거다. 이런 기록을 남기는 것 자체가 언젠가는 의미가 있겠다 싶었다. 사실 이렇게까지 속내와 치부를 드러낼 의도는 아니었다. (웃음)

김조광수_원래는 좀더 사회운동적인 다큐를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난해 5, 6월경 막상 1차 편집본을 보고 개인적인 사연 중심이라 조금 당황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지금과 같은 형태가 더 좋다고 생각한다. 다가가기도 쉽고 우리도 찍으면서 많이 배우고 성장했다.

-장희선 감독에게 연출을 맡긴 이유가 있나.

=김조광수_20년 넘게 알고 지낸 사이다. 친한 감독들은 여럿 있었지만 이왕이면 결혼에 대해 고민을 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중에서도 이왕이면 이성애자, 그중에서도 여성감독이 관찰해주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소거법으로 장희선 감독이 물망에 올랐다. (웃음) 노처녀가 바라본 늦장가가는 친구 이야기가 컨셉이라 원래 제목은 ‘늦장가’였다. 그런데 촬영을 할수록 장 감독이 승환에게 더 공감을 느끼며 전체적인 톤도 그에 맞춰져 제목도 아예 바꿔버렸다. 나만 악역이 된 것 같아 억울하다. 아무래도 감독을 잘못 고른 것 같다. 후속작을 찍는다면 연하와 사귄 경험이 있는, 그 어려움을 아는 감독에게 의뢰하겠다. (웃음)

-제목이 언제 <마이 페어 웨딩>으로 바뀐 건가.

=김승환_1차 편집 후 개인적인 사연과 고민의 분량이 많이 담긴 걸 보고 여러 사람들과 상담 후 수정했다. 번역을 담당해준 분의 도움이 컸다. <마이 페어 레이디>를 연상시키는 제목이라 해외에서도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이 페어 레이디>도 시련을 딛고 이뤄지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 아닌가. 이 결혼이 정당하다는 의미도 중의적으로 담겨 있어 좋았다.

-실제로 영화를 보고나면 동성결혼에 대한 메시지를 호소한다기보다는 그냥 티격태격 다투며 결혼 준비하는 커플의 피곤함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친한 친구의 결혼식 비디오를 보는 것 같았다.

=김승환_GV를 가면 동성애 커뮤니티의 운동에 대한 질문보다는, 싸웠을 때 어떻게 화해하냐는 등 연애 상담을 더 많이 해온다. (웃음) 얼마 전 프러포즈 시사회라고 15커플 정도를 초청해 이벤트 시사도 가졌다. 거부감 없이 일반인의 시선으로 녹아들어가 자신들의 관계와 동일시해주는 게 감사하고 즐거웠다.

김조광수_우리 관계를 객관화할 수 있는 기회라서 개인적으로도 소중한 경험이었다. 싸울 때 내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몰랐는데 찍어놓은 걸 보고, 아 저렇게 이야기하고 있구나, 기분 나쁠 수도 있겠구나, 라고 깨달았다. 4개월 남짓한 준비 기간이었지만 그사이 끊임없이 되묻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해야 하는 걸까? 배우자에 대한 물음이자 나 스스로에 대한 물음이기도 했다. 다른 커플들에게도 한번쯤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좋아하는 것과는 다른,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경험이었다. 그게 결혼인 것 같다. 두번 하라고는 권하지 못하겠지만 한번은 해볼 만하다. (웃음)

김승환_정말 결혼을 하고 보니 이혼을 한 사람들의 용기가 존경스럽다. 고생한 게 아까워서라도 못할 것 같다. 이것도 책임감이라면 책임감일까? (웃음)

-결혼식이 끝나고 그들의 투쟁은 계속된다는 내레이션으로 영화가 끝을 맺는다. 이후 혼인신고는 반려됐고 현재 불복 소송이 진행 중인데.

=김조광수_지난해에 소송을 제기했고 올해 6, 7월경에 첫 공판이 열린다. 소송을 제기한 지 1년 만이다. 반려 사유가 헌법의 양성평등 조항에 근거를 두고 있는데 법원도 자가당착의 모순을 알고 있는지 차일피일 미루다 이제야 열리게 된 것이다. 현재 미국연방법원에서 동성결혼 금지가 위헌이라는 판결이 6월 즈음 나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첫 재판 시기로는 차라리 나은 것 같다. 재판을 통해 변화를 이끌어내면 좋겠지만 처음부터 쉽지는 않을 거라 예상하고 있다. 재판을 벌이고 공론화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인식의 전환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게 더 중요하다. 지치지 않고 문제를 제기하려 한다.

김승환_언젠가는 옳은 방향으로 바뀌리라 생각한다. 그보다 우리가 재판이 다 끝날 때까지 헤어지지 않고 잘 살아야 하는 게 더 크고 어려운 문제다. (웃음)

-얼마 전 아일랜드에서 국민투표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했다. 언젠가는 우리나라도 그렇게 될 수 있으리라고 보나.

=김승환_국민투표가 가능했던 건 오히려 보수적인 나라이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통과 안 될 줄 알았겠지. 그러고 보면 보수적인 기독교 신자들 가운데에도 성소수자 운동을 지지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걸 알 수 있다. 우리도 지금 당장 전체적으로는 반대가 더 많을지 몰라도 젊은 세대만 놓고 보면 찬성이 더 많을 것이다. 흑인이 차별받았고, 여성이 차별받았지만 점차 나아지고 있지 않나. 성소수자도 마찬가지다. 언젠가는 차별이 사라지는 시기가 올 거라고 믿는다.

김조광수_아시아 진영에서는 누가 제일 먼저 합법화가 될 것인가가 화두다. 의외로 한국이 가장 먼저 합법화될 거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다. 바깥에서는 변화의 속도가 빠르고 역동적이라고 느끼는 것 같다.

-<마이 페어 웨딩>의 결혼은 사적인 이벤트와 공식적이고 상징적인 행사의 중간 즈음에 있다. 모든 과정이 일일이 기자회견으로 보도되고 주목받는 게 부담스럽지는 않았나.

=김조광수_나는 워낙 전면에 나서는 일에 익숙해져 있어 힘들다는 생각은 없었다. 과정도 재미있었고 배운 것도 많았다. 다시 하라면 아쉬웠던 점들을 보완해 더 크고 재밌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승환은 쉽지 않았을 거다. 그걸 잘 도와주고 받쳐줬어야 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동성애 운동도, 영화 일도 먼저 시작한 사람으로서 앞으로 겪을 어려움에 대해 길을 제시하는 것 정도에 불과했다. 그 부분에서 좀더 다정다감하게 대처하지 못해 미안하다.

김승환_일단 선례가 없다는 게 제일 힘들었다. 모든 사안을 우리가 판단하고 결정내려야 했고 우리가 한 일이 선례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부담도 적지 않았다. 중간에 상담도 받았다. 내성적인 내 성격을 아는 친구들은 매번 놀란다. 그래도 늘 감사하는 마음이다. 김조광수란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도 퇴근 후의 안정적인 삶에 집착했을 거다. 평범한 삶은 아니지만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됐다. 조금 불편해도 지금이 좋다.

-서로에게 결혼이란.

=김승환_센 예방주사를 맞은 기분이다. 가만히 놔두면 평생 미뤄둘 문제들을 끄집어내고 가족으로서 서로 이야기를 나눈 시간이었다. 덕분에 더 돈독해지고 다른 차원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감사할 일이다.

김조광수_내가 그리는 이상적인 가족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다. 부모님과 형제자매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조건이지만 배우자는 내가 선택한 가족이다. 가족으로서 배우자와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지, 무엇을 해야 할지 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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