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ash on]
[flash on] 입 밖으로 이야기를 꺼낼 때 싸울 수 있는 힘을 얻는다
2015-06-11
글 : 윤혜지
사진 : 백종헌
<비비안의 이혼재판> 슐로미 엘카베츠 감독

이스라엘 베에르셰바에서 출생한 슐로미 엘카베츠는 대학강사로 일하며 틈틈이 각본가로도 활동했다. 유명 배우인 누나 로니트 엘카베츠와 <아내를 얻는 법>(2004)을 공동 연출한 이후 쭉 함께 영화를 만들고 있다. <7일장>(2007)과 <비비안의 이혼재판>(2014)까지 로니트와 공동 연출한 세 작품을 아울러 ‘비비안 3부작’이라 부른다. 세 영화는 모두 비비안이라는 한 주인공의 삶을 다룬다. 비비안은 로니트가 연기했다. 그사이 슐로미는 <증언>(2011)을 혼자 연출하기도 했다. 제67회 칸국제영화제 감독주간 초청작이었던 <비비안의 이혼재판>은 올해 제17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새로운 물결 섹션에서 상영됐다. 비비안은 남편과 이혼하려 하지만 이스라엘에선 남편의 완전한 동의가 있어야만 이혼이 성립한다. 남편이 동의해주지 않아 비비안은 재판정과 대기소를 오가며 지난한 시간을 보낸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사무국에서 로니트 없이 홀로 방한한 슐로미를 만났다.

-공동 연출작 세편의 주인공이 모두 비비안이다.

=로니트와 나는 자유를 찾아 헤매는 한 여자를 두고 세 가지 이야기를 만들기로 했다. 어머니가 모델이었다. 엄마의 이름은 미리엄인데 비슷한 이름을 여럿 생각하다 결국 비비안으로 정했다. 비비안 암살렘(Viviane Amsalem)이란 이름엔 ‘활력, 기운’(vitality)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와 ‘삶’(vie)이란 뜻의 프랑스어 단어가 포함돼 있다. 우리의 주인공이 계속해서 피어나고 성장하는 삶을 얻길 바랐다. 비비안 웨스트우드, 비비안 리의 이름처럼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뉘앙스도 있고. (웃음)

-어머니는 영화를 보고 뭐라고 하던가.

=어머니도 3부작을 모두 보셨다. 첫 번째 영화는 자신의 삶과 아주 가까워 보인다고 했고, 그래서 두 번째 영화를 보고 싶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자신의 삶을 바깥에서 들여다보고 싶지 않다면서. 결국 두 번째 영화도 보셨는데 그건 그녀의 삶과 조금 떨어진 영화였다. 세 번째 영화는 물론 완전히 다른 영화다. 어머니는 이혼하지도 않았고, 이혼을 시도하지도 않았으니까. 다만 세 번째 영화를 혼자 보고 오셔서는 ‘어떻게 내 생각을 알고 있었니?’라고 나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셨다. (웃음) 나는 영화로라도 어머니에게 자유를 선사하고 싶었다고 답장했다.

-이혼을 고대하지만 이혼하지 못하는 여성들을 보고 영화를 찍기로 결정했다고.

=오늘날 이스라엘 법에는 여성 단독의 의지로는 이혼을 할 수 없게 돼 있다. 이혼재판 중 20%는 대개 실패로 끝난다. 영화는 이스라엘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고 사람들은 비비안 3부작에 관심을 갖게 됐다. 한 여성은 비비안의 얘기가 자신의 얘기 같다고 말했고 그렇게 말하는 여성들이 점점 늘어갔다. 영화는 2개월 후에도 쭉 박스오피스 상위권에 머무르며 골든글로브, 오스카로 날 데려다줬다. 세계의 많은 기자들이 이스라엘의 현실에 대해 글을 써줬다. 법은 바뀌지 않았지만 적어도 사람들의 관점은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입 밖으로 이야기를 꺼낼 때 우린 싸울 수 있는 힘을 얻곤 한다.

-영화의 테마를 정하고 시나리오를 완성하기 위해 어떻게 시간을 보냈나.

=보통 로니트와 나는 어디론가 함께 여행을 간다. 뉴욕이든 파리든 한 장소에 도착하면 집을 구해 3주간 머문다. 집을 빌리고 나면 한번에 많은 양의 음식을 사다놓고 두문불출한다. 우리는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같은 테이블에서 일을 시작했다. 천천히 아이디어를 만들다 낮잠을 잤고 내가 일어나 점심을 만드는 동안에도 로니트는 계속 잤다. (웃음) 함께 밥을 먹고는 또 세 시간쯤 자고 오후에 다시 일어나 자정에서 새벽 2시가 될 때까지 시나리오를 썼다. 초고가 나오면 역할을 정해 함께 읽어보고, 다시 한번 역할을 바꿔 읽었다. 리딩하는 동안 조금씩 시나리오를 고친다. 완전한 합의에 도달하면 더이상 시나리오는 고치지 않는다.

-비비안의 무채색 의상 아래에 발톱에 바른 붉은 네일 폴리시가 눈에 띈다. 바로 다음 장면에서 비비안은 붉은 블라우스를 입고 등장한다.

=우리는 비비안이 전통적인 집안의 많은 형제들 사이에서 자랐다고 가정하고 이야기를 썼다. 그녀의 검거나 하얀 의상, 테이블 아래에 감추고 살았던 여성적 욕구와 자유에 대한 열망을 표현하고자 했다. 비비안은 결코 피해자가 아니다. 재판정에 올 때마다 매번 당당히 밖으로 걸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촬영감독 잔 라프와리는 페드로 코스타, 프랑수아 오종과 꾸준히 작업했고, 최근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2013)을 촬영한 사람이다.

=가급적 객관적으로 보이는 숏을 자제하고 비비안의 관점을 담아내는 숏을 구성하려고 노력했다. 비비안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 자신이 비비안인 것처럼 비비안에게 공감을 느끼길 바랐다.

-간결한 공간과 상황 설정을 선호하는 것 같다.

=갇힌 공간에서의 해프닝을 그리는 건 문을 열기 위해서다. 폐쇄된 공간 안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바깥에선 알 수 없다. 창문과 문을 열고 그 공간을 들여다보고 그 공간에 들어가봐야 한다. 우리는 그곳으로 들어가 그 안의 사람들이 어떤 것을 보고 어떤 것을 기대하는지 드러내고 싶었다. 영화가 견고한 벽을 허물어주리라 믿었다.

-로니트 엘카베츠와의 공동 작업은 어떤 면에서 의미가 있나.

=우린 같은 집에서 같은 걸 먹고 자랐으며 같은 역사와 어린 시절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남매지만 동시에 각각 남자와 여자이고, 친구이고, 창작자이다. 각자의 시선을 담아 쓴 시나리오엔 같은 이야기가 두개의 방향으로 갈라져 있다. 로니트와의 작업은 아주 복잡하고 흥미로운 결과를 안겨준다. 모든 면에서 우린 서로를 신뢰한다.

-다른 감독과의 협업을 꿈꿔본 적은 없나.

=전혀, 전혀, 전혀 없다. 나는 로니트 이상의 동료를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로니트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웃음)

-체호프와 테네시 윌리엄스를 좋아한다고.

=좋아하냐고? 사랑한다. (웃음) 아마도 나의 드라마는 그들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들은 어두운 유머를 갖고 있고, 인간이 왜 살아가고자 하는가를 매번 고뇌한다. 종종 그들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리기도 한다. 미국영화와 20세기의 무성영화들도 아주 좋아한다. 특히 존 카사베츠.

-앞으로 비비안이 당신들의 영화에 또 등장할까.

=비비안이 자유를 얻은 뒤 어떻게 살아갔을지 궁금하긴 하다. 하지만 비비안을 주인공으로 한 다음 영화는 없을 거다. 우리가 영화로 만들고자 한 건 비비안이 자유를 찾아 움직이는 과정이었다. 쓰고 있는 시나리오는 마리아 칼라스에 관한 영화다. 결코 평범하지 않았던 그녀의 삶이 나를 깊은 숲으로 이끌었다.

-로니트는 지금 뭐하고 있나.

=아기를 돌보고 있겠지? (웃음) 파리에서 함께 시나리오를 쓰고 있을 때 로니트가 임신 소식을 알려줬다. 나도 무척 기뻤다. 얼른 프로덕션에 박차를 가했고, 그녀가 아이를 낳고 쉬는 동안 나는 홀로 다른 작업을 했다. 지금 로니트는 행복한 아기 엄마로 지내고 있다. 곧 그녀는 TV시리즈 촬영을 시작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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