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권지원] 최소한의 상식을 지키려 한다
2015-06-17
글 : 송경원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리틀빅픽쳐스 권지원 대표

창작자의 권리를 지키고자 국내 제작사들이 힘을 모아 설립한 중견배급사 리틀빅픽쳐스는 올해 안팎으로 크고 작은 변화를 맞이하는 중이다. 올해 초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2014)을 둘러싸고 갈등을 겪은 후 엄용훈 대표가 사임하자 주주총회를 거쳐 권지원 영화사업부장이 새로이 대표직을 이어받았다. 권지원 대표는 영화계에 첫발을 들였을 때부터 꾸준히 배급일을 맡아온 경험을 살려 안정적으로 리틀빅픽쳐스를 이끌고 있다. 특히 리틀빅픽쳐스는 한국영화 기근이라는 제68회 칸국제영화제에 2편의 영화를 출품, 호평을 이끌어내며 올해 칸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성장통을 겪고 성숙한 청년으로 거듭나고 있는 리틀빅픽쳐스의 권지원 대표를 만나 칸영화제에서의 즐거운 경험에 대해 들어봤다. 또다시 유령처럼 위기설이 흘러나오고 있는 한국영화계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되짚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올해 칸에서 호평을 받은 <오피스>와 <마돈나>는 모두 리틀빅픽쳐스가 배급을 맡았다. 우선 축하드린다. 칸은 잘 다녀왔나.

=하루 2, 3시간도 못 잘 정도로 바빴다. 그래도 반응이 좋아서 마지막까지 기분 좋게 마무리했다. 칸은 쇼박스 배급팀에서 일할 때 마켓에 잠깐 참석해보고 이번이 두 번째인데 영화를 들고 찾아가니 확실히 다르더라. 배우, 감독과 함께 레드카펫도 밟아보고, 큰 스크린으로 영화를 감상하니 여러 가지로 감회가 남다르다.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마돈나>, 미드나이트 스크리닝에 <오피스>가 출품됐다. 2편이 동시에 출품되어 정신이 없었을 텐데.

=일주일 정도 머물렀는데 관리해야 할 팀이 두개라 다른 일을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인터뷰하고 각팀이랑 저녁 먹고 정해진 행사 몇 군데 참여했더니 일주일이 눈 깜짝할 새 지나갔다. <마돈나>는 작은 영사 사고가 있었는데 주최쪽에서 잘 정리해줬다. 다행히 큰 사고 없이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다.

-언론을 통해 이어지는 호평 소식이 들려오긴 했지만 직접 보고 들은 반응이 궁금하다.

=<오피스>는 스릴러영화이지만 빡빡한 직장생활과 비정규직 이야기가 바탕에 깔려 있는 만큼 해외 관객이 이런 정서를 이해할 수 있을지가 약간 걱정됐다. 하지만 막상 상영 때 보니 장르적 재미를 충실히 따라가더라. 무서워하거나 놀라는 포인트는 국내 관객과 조금 다른 것 같아 그걸 보는 게 제법 재미있었다. <마돈나>는 상영 다음날부터 쏟아진 외신 매체 반응이 무척 좋았다. ‘한국 여성감독을 대표한다, 거장다운 무게감’ 등의 표현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독립영화가 대형 영화를 눌렀다’라는 표현이 유난히 와닿았다. 사실 수상 기대도 적지 않았는데 발표 당일 오전에 떠나도 된다고 하더라. (웃음)

-두 작품은 칸영화제 초청을 받기 전까진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영화제 초청과 호평은 어느 정도 예상했나.

=<오피스>는 후반작업이 덜 된 상태에서 감독주간과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에 접수했는데, 감독주간이 안 됐다는 소식을 먼저 들었고, 미드나이트 스크리닝은 초청작품 수가 더 적은 터라 마음을 접고 있는데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초청 전에는 <마돈나> <오피스> 모두 언급하는 매체가 한 군데도 없었는데 이렇게 관심이 쏠려 감사하고 다행스럽다. <오피스>는 원래 여름 시즌 개봉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마돈나>는 하반기 늦게 들어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덕분에 앞당겨 7월2일경에 개봉할 예정이다. 해외에서 요청도 계속 들어오고 있다. 주로 유럽쪽인데 극장 개봉을 염두에 둔 요청이 많아 고무적이다. <오피스>는 리메이크 제안도 있었다. 서두르지 않고 차분히 접근하려 한다.

-이번 칸영화제가 리틀빅픽쳐스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겠다.

=엄용훈 대표가 <소녀괴담>(2014), <카트> (2014),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까지 마치고 사임했고 이후 <내 심장을 쏴라>(2014)와 <화장>(2014), <산다>(2014)를 배급했다. 지금까지의 영화들이 영화적으로는 좋은 평을 들었는데 흥행이 기대보다 약해서 조금 의기소침해진 측면도 없지 않았는데 좋은 소식이 들려와 기운이 난다. 특히 <마돈나>와 <오피스>는 리틀빅픽쳐스 설립 초기부터 라인업에 들어와 있던 영화다. 비교적 신생 제작사와 함께 동고동락하며 만들어온 영화인 만큼 직원들이 쏟은 역량과 정성도 남다르다. 일하는 입장에서는 이 두편이 칸에서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 뿌듯하다. 이 영화들을 기점으로 하반기부터는 흐름을 탈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 기대할 만한 라인업도 대기 중이다.

-엄용훈 대표가 사임하면서 올해 1월26일 주주총회를 거쳐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을 둘러싼 논란도 있었고 부담이 적지 않았을 텐데.

=그 논란 자체가 크게 부담되진 않았다. 그런 갈등은 배급 일을 하면서 빈번하게 있는 일이라고 본다. 딱히 한 사안을 두고 극장쪽과 날을 세우고 말고 할 게 없다. 서로가 필요한 존재니 잘 소통하고 함께 맞춰가야 한다. 그보다는 설립 취지에 맡게 잘 이끌어가야겠다는 부담이 더 크다. 불합리한 관행은 개선해 나가고 투자, 배급, 제작사간 소통을 좀더 원활하게 이끌어내려 한다. 쇼박스 배급팀으로 업계에 발을 들인 이래 꾸준히 배급 일을 맡아왔으니 좀더 편하고 부드럽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리틀빅픽쳐스가 문을 연 지 꽉 채운 2년이 다 되어간다. 아쉬운 것도 있지만 리틀빅픽쳐스만의 색깔이 뚜렷이 자리잡아 나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스스로 중간 평가를 매긴다면.

=중간 정도는 한 것 같다. 1년이 조금 넘는 시간에 이 정도의 라인업을 갖췄다는 데 나름 자부심이 있다. 첫 작품인 <소녀괴담>은 손익분기점을 무난히 넘겼고, <카트>는 약간 못 미쳤지만 의미 있는 이슈를 남겼다고 생각한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반응이 너무 좋아 자신 있게 배급 시기를 조정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안타깝다. 흥행이 다 잘됐으면 좋겠지만 자본금 5억원으로 시작한 회사로서 필요한 영화를 꾸준히 내놓았다는 점에서 우리 스스로 칭찬해도 괜찮을 것 같다. 다들 비슷한 영화가 쏟아지며 하향평준화되고 있는 한국영화시장에서 제법 규모가 있는 영화부터 작은 영화까지 다양한 볼륨을 확보해 지속적으로 시장에 내놓는 것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사실 처음부터 너무 잘되면 그게 더 위험할 수도 있다. 지금은 배우면서 차근차근 기반을 다져나가는 과정이다.

-<화장> <산다>는 빈말로도 큰 흥행을 기대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니었는데 그럼에도 해야 한다고 판단한 이유가 있나.

=호불호가 갈릴지언정 이런 영화들이 계속 나와줘야 한다. 모든 걸 자본의 논리로 접근하면 개성있는 목소리, 필요한 이야기를 하는 영화들은 결국 설 자리가 없다. 데이터로 모든 걸 판단하면 자본의 기준에 깎이고 다듬어져 둥글둥글해진 영화만 나올지도 모른다. 관객이 그런 패턴에 익숙해지기 시작하면 영화계 전체로 봐도 손실이다. 예를 들어 <화장> 개봉 때는 조금 속상한 점도 있었다. 임권택 감독님, 안성기 배우의 영화를 상업논리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는데 다들 숫자를 내세워 외면하더라. 상업영화의 논리를 모르는 건 아니다. 필요성도 십분 이해한다. 하지만 조금 더 너그러워졌으면 좋겠다.

-다양한 영화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있지만 선뜻 나서는 이는 없다. 리틀빅픽쳐스가 중소제작사들이 모여 만든 대안배급사로서 척박한 환경을 뚫고 생존할 수 있는 방식이 무엇일까.

=사실 대안배급사의 의미를 잘 모르겠다. 어디서 후원을 받아 의미 있는 영화만 계속 발굴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우리가 대안이 될 수는 없을 거라 본다. 그저 규모 차원에서 중소배급사라고 해주면 좋겠다. 분명한 건 전체적으로 하향평준화되고 침체되는 분위기 속에서도 질 좋은 콘텐츠를 향한 관객의 수요는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어차피 규모로는 경쟁이 안 된다. 그런 양질의 영화들을 찾아내고 소개하는 게 우리의 몫이라고 본다.

-반복해서 좋은 영화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어떤 영화를 좋은 영화라고 판단하고 선택하는지.

=적절한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가치가 명확한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상업적인 가치이건 작품성이 뛰어나건 그것도 아니면 의식이 분명한 영화들이 있다. 어떤 방향으로든 하나의 가치를 명확하게 지니고 있는 영화들은 비록 흥행에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빛을 발해 사람들이 꾸준히 찾게 마련이다. 그런 가치는 제작사의 의식과도 맞닿아 있다. 기획하고 창작하는 사람이 어떤 의식을 가지고 영화에 접근하느냐 하는 점이 결과적으로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 같다.

-그런 작품들을 발견했을 때 리틀빅픽쳐스와 함께하자고 어떻게 설득하나. 내세우는 지점이 있다면.

=경험상 우리가 그런 가치를 발견한 영화들은 대부분 다른 곳에서 꺼려해서 다 거절당한 후에 우리를 찾아온다. 따로 설득할 필요가 없다. (웃음) 반대로 말하자면 이런 분위기가 지금 한국영화계의 문제일 수도 있고 우리가 필요한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영화 산업의 불공정한 관행을 바로잡고 창작자의 권리를 지키자는 게 설립취지인 만큼 최소한의 상식을 지키려 한다. 예를 들면 배급쪽의 마케팅 비용은 전면 공개하고 서로 상의한다든지 배급 수수료를 결정할 때도 합리적으로 토의하는 식이다. 기본적으로는 우리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입장이다. 여타 투자배급사들은 돈을 투자했으니 그에 대한 지분을 영구적으로 요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창작은 어디까지나 창작자의 몫이므로 우리는 유통, 배급, 투자의 여러 부문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정산 기간이 끝나면 다시 돌려준다는 입장이다.

-리틀빅픽쳐스의 색깔이 확실하다는 건 반대로 악재가 될 수도 있을 텐데. 가령 돈이 안 되는 영화만 배급한다는 편견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다.

=억울한 측면이 있다. 이 기회에 명확하게 하고 싶다. 일각에선 주피터필름, 명필름, 삼거리픽쳐스 등 몇몇 제작사의 영화만 한다는 오해도 있다. 심지어 그 제작사들이 잘 될 만한 영화는 대기업 배급을 하고 어려워 보이는 영화는 우리가 배급을 맡는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완전 오해다. 우리는 안 되는 영화를 하는 게 아니라 좋은 영화를 해온 거다. 흥행 성적도 대박이 없을 뿐이지 그렇게 나쁘지 않다. 까놓고 말해 올해 상반기에 몇몇 영화를 제외하곤 한국영화는 다 어렵지 않았나. 우리가 4, 5편으로 손해 본 것보다 큰 규모의 영화 한편이 본 손해가 훨씬 클 것이다. 시장에 미치고 있는 좋은 영향을 감안했을 때 그간의 행보는 결코 마이너스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 진행하고 있는 영화 중에는 큰 규모의 영화들도 있다. <관상>에 이은 주피터필름의 역학 3부작인 <명당> <궁합>이나 청어람의 <괴물2>는 소위 텐트폴 무비(라인업에서 흥행 가능성이 가장 높게 예상되는 영화.-편집자)라고 할 만하다.

필요한 영화를 상식적으로 배급한다. 이 당연한 말이 그리 녹록지 않아 보이는 시대다. 최근 한국영화계에 대한 진단을 부탁하자 위기 아닌 때가 있었냐며 해묵은 이야기라고 했지만 동시에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전했다. “우리뿐만 아니라 한국영화계 전반에 약간의 배려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하고 싶다. 파이는 정해져 있는데 전부 실적과 결과, 자본 논리에만 매몰되다 보니 파이를 키울 시도보다는 남의 파이를 가져오는 일도 서슴지 않는 분위기에 익숙해져 있다.” 기업과 자본의 논리가 펼쳐지는 곳이라면 자연스레 따라나오기 마련인 배려와 상생이라는 단어가 새삼 떠올랐다. “서로를 배려하고 적당히 숨통을 틔워주는 여유도 필요하다.” 배려도, 상생의 의지도 메말라가는 현실이기에, 식상하지만 그래서 더욱 소중하고 절박한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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