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긴장의 떨림 속에서 터져나오는 격렬한 감정 <미스 줄리>
2015-06-17
글 : 김보연 (객원기자)

1890년 아일랜드, 귀족 딸인 ‘미스 줄리’(제시카 채스테인)는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은 뒤 넓은 저택에서 혼자 외롭게 자랐다. 자기보다 낮은 계급의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그녀를 두고 마을 사람들은 물론 하인들마저 수군거리기 일쑤지만 정작 그녀는 개의치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미스 줄리는 아버지의 하인인 존(콜린 파렐)과 작은 문제로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고, 이를 시작으로 밤새 긴 시간을 같이 보낸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는 어느새 충동적인 감정이 발생한다.

<미스 줄리>는 스웨덴 극작가인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의 동명 작품을 영화로 옮긴 작품이다. 우리에게는 잉마르 베리만의 <페르소나> <외침과 속삭임> 등의 주인공으로 익숙한 리브 울만이 연출을 맡았으며, <미스 줄리>는 그녀가 감독으로서 14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일단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저택이라는 한정된 공간과 약 24시간에 걸친 한정된 시간, 그리고 세명의 등장인물로 이루어진 미니멀한 형식이다. 따라서 영화는 대부분의 사건을 생략 없이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사건은 주인공들의 대사와 몸짓을 통해 직접적으로 그려진다.

그런 맥락에서 <미스 줄리>의 도드라지는 특징이자 장점은 밀도 높은 감정 묘사에 있다. 줄리가 어둠 속에서 얼굴을 드러내는 첫 순간부터 슬프고도 아름다운 마지막 장면에 이르기까지, 영화는 한순간도 쉬지 않고 감정의 선을 팽팽히 잡아당긴다. 그 긴장의 떨림 속에서 줄리가 숨겨 온 결핍과 외로움은 폭발하듯 터져나오고, 존은 지금까지 따라야 했던 삶의 방식과 솔직한 인간적 욕망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 당황한다. 이들을 가까이서 지켜보지만 어떤 개입도 할 수 없는 하녀 캐서린(사만다 모튼)의 억눌린 슬픔 역시 감정의 결을 더 풍성하게 만든다. 다시 말해 <미스 줄리>는 인물들의 비극적이고 복잡한 심리 상태를 최대한 강렬하게 전달하려 노력하는 멜로드라마이다. 어떤 면에서는 시시각각 극단적으로 변하는 주인공들의 심리 상태에 대한 개연성 있는 설명이 부족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미스 줄리>의 경우에는 ‘사실적인’ 심리묘사보다 줄리의 어둡고 뒤틀린 내면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 한 연출에 주목하는 것이 극의 매력을 더 잘 느낄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그리고 제시카 채스테인의 창백한 얼굴과 섬세한 연기는 그런 극의 의도를 십분 잘 살려내 <미스 줄리>를 더욱 인상적인 작품으로 기억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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