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2015 <한여름의 판타지아> 2009 <옐로 키드>
드라마 2009 <심야식당> 시즌1
서촌 골목길로 걸어 들어오는 이와세 료는 이 동네 청년마냥 편안한 모습이다. 꾸미지 않은 차림 그대로 점심을 먹고 산책까지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다. 그런 그에게서 차분하고 안정적인 기운이 전해진다. 말을 할 때도 수다스럽지는 않지만 대화의 맥을 놓치지 않고 중간중간 위트를 불어넣을 줄 아는 품도 있다. <한여름의 판타지아>의 1부와 2부에서 각각 유스케로 등장한 이와세 료를 떠올려본다. 유약해 보이지만 자신의 속내를 뭉근히 드러내는 고조시 공무원인 유스케와 적극적이나 과하지 않게 마음에 드는 상대방에게 다가가는, 감을 재배하는 청년 유스케. “이와세 료를 몰랐다면 유스케라는 인물에 대해 시나리오로 쓰지 못했을 것”이라는 장건재 감독의 말처럼 유스케는 이와세 료에게서 감응받은 인물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와세 료와 장건재 감독은 언어의 장벽을 가뿐히 뛰어 넘은 채 “필링(feeling)이 통하고”(이와세 료), “돌고래처럼 주파수로 알아듣는”(장건재) 막역한 친구 사이다. 그들은 2010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처음 만난 뒤로 때때로 영화와 연극을 같이 보며 연기와 연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왔다.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 시나리오 없이 대략적인 기획안만 있었다. 하지만 장 감독의 작품이니까 함께하고 싶었다.” 특히 촬영 직전까지도 시나리오가 없었던 2부는 이와세 료의 순발력이 빛났다. 감독이 3일간 시나리오 작업을 하는 동안, ‘감을 재배하는 청년’이라는 설정만 들은 그는 수염을 기르고 피부도 검게 그을렸다. “해가 정말 짱짱했는데 영화에 나오는 강둑에 나가 웃통을 벗고 하루 종일 누워 있었다. 동네 분들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웃음)” 충분한 시간을 갖고 캐릭터를 파악할 만한 여유가 없었던 현장이었지만 그는 그날그날의 공기를 연기로 옮기는 데 집중했다. 그가 보여준 즉흥적인 리액션 연기가 더없이 좋았던 감독은 그를 탁구 선수에 빗대며 “아름다운 리시버”라고 부를 정도였다. 하지만 이와세 료는 미정과 혜정 역으로 출연한 상대배우 김새벽에게 그 공을 돌린다. “새벽씨가 매번 생생하고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줘 나도 덩달아 마음 편히 연기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유스케와 혜정의 키스 신은 이와세 료와 감독만 알고 상대배우, 스탭들에게조차 비밀로 하고 촬영에 들어갔다. “한번에 오케이를 받아야 했는데 비까지 내려 긴장이 더 됐다. 혜정씨에게 손을 내밀 때는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떨렸다. 마법과 같은 순간을 만들어내려는 감독님의 치밀한 계산이 있지 않았나 싶다. (웃음)”
그렇게 카메라는 즉흥과 우연이 빚어낸 짜릿한 교감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포착해냈다. 꾸준히 자신만의 보폭으로 연기의 길을 걸어왔듯, 이와세 료는 서두름 없이 다음을 말한다. “조연으로 출연한 작품이 훨씬 많았지만 착실히 주어진 역할을 해나갈 뿐이다. 그게 배우로서 오래가는 지름길 같다. 그리고 언젠가는 제대로 된 작품을 직접 연출해보고 싶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