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기시감을 느낀다면 당신도 이 구조의 일부이기 때문에
2015-07-01
글 : 정지혜 (객원기자)
철거 현장에서의 죽음에 대한 법정영화 <소수의견>, 보편타당한 진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묻다

김성제 감독의 데뷔작 <소수의견>(2015)이 촬영을 끝낸 지 2년 만에 정식 개봉(6월24일)한다. 손아람 작가의 동명 소설 <소수의견>을 원작으로 하는 법정 드라마다. 영화는 철거민과 경찰이 대치하던 서울 북아현동 재개발 현장에서 두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에서부터 시작한다. 이후, 사건을 둘러싼 진실을 밝히려는 변호사들의 진득한 법정 공방이 이어진다. 우여곡절 끝에 관객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는 <소수의견>을 미리 살펴봤다. 그리고 김성제 감독을 직접 만나 개봉을 앞둔 심정과 영화의 안팎을 둘러싼 이야기에 대해 들어봤다.

<소수의견>은 픽션이다. 다큐멘터리가 아닌 극영화를 두고 굳이 픽션이라고 재차 말하는 건, <소수의견>에 대한 보다 열린 해석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다. <소수의견>은 개봉 전부터 2009년 1월에 실제로 벌어진 ‘용산참사’에 바탕한 영화, 보다 나아가서는 실화에 근거한 영화로 알려졌다. 하지만 손아람 작가의 원작 소설과 마찬가지로 영화는 시작과 동시에 ‘이 영화는 실화가 아니며 인물은 실존하지 않는다’는 자막으로 ‘실화에 근거하지 않았음’을 분명히 밝힌다. ‘이 영화는 온전한 허구이며 그럼에도 실제 사건과 인물을 연상시킨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우연의 일치’라고 밝히는 여타의 영화와 비교해봐도 <소수의견>은 훨씬 더 직설적이고 분명하게 자신의 입장을 피력한 셈이다. 김성제 감독은 “사람들은 왜 실화와 현실적 기시감을 구별하지 못할까?”라며 <소수의견>이 픽션의 세계에서 출발하고 끝나는 영화임을 강조한다. <소수의견>이 용산참사에 근거한 영화가 아니라고 말하는 건 분명 의미가 있다. 하나의 이유는 <소수의견>이 ‘용산참사의 영화’라는 프레임 안에 갇히면서 수차례 받아야 했던 질문들 혹은 감내해야 했던 억측과 가능한 추측들에 대한 영화의 답변이라는 점에 있다(보다 자세한 내용은 이어지는 감독과의 인터뷰에 실었다). 이유의 다른 하나는 “재난과 참사의 본질은 늘 사건 자체보다는 그 사건이 해결되는 과정에서 깨닫게 되는 것”이라는 김성제 감독의 말에서 찾을 수 있다. <소수의견>은 용산참사라는 특정 사건이 아니라 참사가 벌어진 그 이후의 시간, 참사가 어떤 식의 결과를 낳고 있는가에 주목하고 있는 영화다.

이 픽션이 연상시키는 것들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13구역 6블록. 뉴타운 건설을 위한 재개발을 둘러싸고 철거민과 경찰들 사이에 무장 충돌이 시작됐다. 이때 철거민 박재호(이경영)의 중3 아들 박신우와 이제 갓 스물이 된 의경 김희택이 현장에서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김희택의 살해 혐의자로 현장에서 체포된 사람은 다름 아닌 박신우의 아버지 박재호다. 한편, 박신우를 죽인 게 자신이라며 경찰에 출두한 사람이 있다. 그는 철거 용역 중 한명인 김수만이다. 이로써 철거 반대투쟁의 현장은 갑작스레 살인사건의 현장이 돼버렸다. 두 청년이 목숨을 잃은 바로 이 현장에서 <소수의견>은 출발한다.

곧이어 등장하는 변호사 윤진원(윤계상). 지방대 출신의 국선 변호사다. 자신을 찾아온 윤진원에게 박재호는 대뜸 자신의 무죄부터 주장한다. 그는 아들을 죽인 자는 철거 용역이 아니라 경찰이며 자신은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정당방위를 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철거 투쟁 현장 멀찍이서 진압 과정을 지켜보던 기자 공수경(김옥빈)도 윤진원에게 이 사건과 관련해 “뭔가 숨기는 쪽이 있다”고 말한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윤진원은 사건에서 한발 떨어져 있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윤진원이 박재호 사건의 사건송치자료를 열람하려고 했을 때, 담당 검사인 홍재덕(김의성)이 이를 거부하면서 윤진원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다. 자신을 별 볼일 없는 애송이 변호사 정도로 치부하는 잘나가는 검사 홍재덕의 태도에 윤진원은 심한 불쾌감을 느낀 것이다. 이에 윤진원은 홍재덕이 꽁꽁 숨기려드는 박재호 사건의 변호를 맡기로 결정한다. 혹시 또 모르지 않나. 이 사건이 변호사 윤진원에게는 잘나갈 수 있는 호기가 될지도. 속물 변호사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구나 가져봄직한 정도의 욕심, 그것이 윤진원을 이 사건으로 끌어당긴다.

윤진원은 선배 변호사 장대석(유해진)과 손을 잡고 “경찰이 죽였든 깡패가 죽였든 사고는 경찰 작전 중에 벌어졌어. 국가 책임이야”라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다. 청구한 금액은 단돈 100원. 돈이 문제가 아니다. 느닷없는 공권력 투입으로 순식간에 아들을 잃은 박재호의 피해가 입증되길 바란다. 이어서 두 사람은 박재호의 김희택 폭행치사사건에 대해 정당방위였음을 주장하는 국민참여재판을 열기로 한다. 그러나 윤진원과 장대석은 변론을 준비하면 할수록 이 사건이 재개발 당사자인 철거민과 시행사간의 문제만이 아님을 알게 된다. 철거 용역 업체, 국회의원의 표심 챙기기, 서울시의 사전 개입, 검찰의 외압 그리고 청와대에서 내려온 알 수 없는 지시까지. 각기 다른 이해 당사자들이 서로 얽히고설켜 있는 형국은 영화 밖 현실의 재개발 투쟁과 묘하게 닮아 있다.

진실을 찾아 ‘끝까지’ 간다는 것

본격적으로 영화는 법정 드라마라는 장르 안에서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극은 쉽사리 사건을 둘러싼 결정적인 단서나 사실을 보여주거나 말하지 않는다. 최초의 사건 현장에도 증거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현장은 경찰의 지시로 깨끗이 치워졌다. 그러니까 진압 현장에서 벌어진 인명 사고와 관련된 진실, 즉 박신우와 김희택은 누구의 손에, 어떻게, 왜 죽어야만 했는가에 대해 관객이 알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심지어 관객은 영화가 한참 진행된 중•후반에 가서도 박재호가 피의자 신분에 있는 게 합당한지 김수만의 자술이 맞기는 한 건지 확인하지 못한 채 극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정작 영화는 계속해서 사건이 발생하기 이전과 이후의 정황들만을 보여줄 뿐이다. 윤진원, 장대석, 공수경 등이 사건을 두고 대화를 주고받는 틈틈이 몽타주숏으로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될 만한 장면들이 이어진다. 때론 플래시백을 통해 사건의 현장이나 특정 상황이 설명되기도 한다. 이런 숏은 등장인물의 말을 통해 사건을 한번씩 정리해주고 가는 것과 함께 영화를 다소 설명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섣불리 누군가를 이 사건의 잠정적인 범인으로 내몰지 않고, 목격하지 않아도 진실을 말해보려는 <소수의견>의 영화적 태도를 생각한다면 이러한 숏의 구성은 그럴듯한 선택처럼 보인다.

심지어 현장에 있었던 사람, 즉 사건의 목격자조차도 사실이 아닌 정황에 대해서만 말한다. 증인석에 앉은, 사건 현장에 있었던 문희성 경위가 대표적이다. 그는 이 사건 이후 자발적으로 사직서를 내고 지금은 사건 브로커로 간신히 밥벌이를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가 법정에서 하는 말은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다. 그는 “사고에 대해서 보지 못했지만” 공권력을 투입하라는 상부의 지시가 있었다는 “정황은 알았다”라고 말한다. 그런 그에게 홍재덕은 “(당신의) 생각이 아니라 사실 말입니다. 사실!”이라며 윽박지른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다. 만약 박신우와 김희택이 죽는 그 순간을 목격한 자를 끝까지 찾을 수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사건의 진실에 대해서 말할 수 있을까. 아무도 목격하지 않았다면, 이 사건의 진실은 말할 수 없는 것인가. “믿어도 되는 건, 늘 종이에 씁니다. 그래서 믿을 수 있는 것이고요”라는 영화 속 윤진원의 말을 빌리자면 관객에게는 사건의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확실한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는 끈질기게도 마지막 순간까지 사건을 둘러싼 여러 가지 맥락, 일련의 돌아가는 꼴을 보여주는 쪽을 택한다. 현장에 없었던 사람들(여기에는 극중 배심원, 방청객뿐 아니라 관객까지 포함될 것이다)이 사고 이후의 현장을 재구성해보면서 사건의 범인이 아닌 원인을 밝혀보게끔 한다. 보편타당한 진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묻는다. 그런 의미에서 한편으로 이 영화는 사건의 진실을 찾아 끝까지 가보려는 윤진원의 성장 서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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