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욱의 만화가 열전]
[오승욱의 만화가 열전] 캐릭터 창조의 황제
2015-06-30
글 : 오승욱 (영화감독)
고교 시절을 함께한 만화가 고우영
만화가 고우영(1938~2005).

교실 복도에서 나는 엎드려뻗쳐를 하고 있었다. 내 앞으로 일고여덟명이 선생에게 몽둥이찜질을 당하고 있었다. 내 차례는 마지막. 날카롭게 공기를 가르는 몽둥이 소리와 신음. 긴장과 공포가 극에 달한 바로 그때, 내 머릿속에서는 얼마 전에 본 <고우영 삼국지>의 장비가 부하를 기합 주는 장면이 떠올랐다. 장비가 부하들을 엎드려뻗쳐 시켜놓고 몽둥이로 때리기 시작한다. 뻑! 뜨악! 비명이 난무한데 줄의 맨 마지막에 있던 병졸이 생각한다. ‘내 차례는 9783번째이니까 천하의 장비라도 나를 때릴 때쯤이면 지쳐 있겠지, 덜 아플 거야.’ 그의 차례가 왔다. 병졸은 장비의 거친 숨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예상이 들어맞았다고 흡족해하는데, 장비는 몽둥이를 고쳐 잡고 “유종의 미!” 하며 병사를 까무러치게 힘껏 팬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어 선생의 몽둥이가 내 엉덩이를 강타하는 순간, 나는 “유종의 미!”를 외칠 뻔했다. 큰일날 뻔했었다.

고교 시절. 교문 앞에서 도끼눈을 뜨고 버티고 서 헌병 흉내를 내는 학생부 선생과 학생부들을 마주치기 싫어했던 나는 항상 일찍 등교하여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가판대에서 사온 <일간스포츠>를 펼쳐 <고우영 삼국지>를 읽으며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동쪽으로 난 창에서 따스한 햇살이 들어오고, 스팀 소리가 쉭∼ 하고 들리는 고요한 교실에서 나는 <고우영 삼국지>를 보며 킬킬 소리나게 웃었다. <고우영 삼국지>를 다 읽고 스포츠난을 펼쳐 건성으로 읽다보면, 어느새 교실은 학생들로 가득 차고, 여기저기서 신문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돌려보면 될 것을 반 학생 중 꼭 서너명 정도는 <일간스포츠>를 사와 <고우영 삼국지>를 먼저 보는 맛을 만끽했었다. 웃기고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는 날에는 먼저 읽은 친구들이 차례를 기다려 뒤늦게 읽는 친구의 반응을 살폈다. 읽던 녀석이 어느 부분에선가 웃음을 터뜨리면 먼저 읽은 친구들은 그 부분의 대사를 흉내내며 ‘너 그것 때문에 웃었지!’ 하며 바보들처럼 킬킬거렸다.

내가 중3이었을 때 연재를 시작한 <고우영 삼국지>는 학력고사를 볼 무렵 끝났다. 화실의 난로가에 앉아 <고우영 삼국지>의 마지막회를 읽으며 ‘뭐야 이렇게 끝나는 거야?’ 하고 아쉬워하기보다는 분노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고우영이 더, 더, 더 연재해주길 바랐다. 나의 고교 시절은 <고우영 삼국지>의 시절이었다.

삼촌 방에서 만난 <고우영 수호지>

어린 조카들에게 삼촌들의 방은 보물창고다. 초등학생 때 외갓집에 놀러가면, 나는 대학생이었던 삼촌들이 집에 없는 것을 확인한 뒤 곧바로 삼촌들의 방으로 살금살금 기어들어가 신천지를 발견하곤 했다. 어느 날인가 삼촌의 책꽂이에 꽂힌 책들 사이에서 만화책 한권을 발견했다. 성인만화! <고우영 수호지>! 주황색 바탕에 바늘 같은 털이 삐죽삐죽 솟아난 남산만 한 배를 내밀고 선 험악한 중대가리 사내 노지심이 방긋 웃고 있다. <고우영 수호지> 1권 표지였다. 나는 최근 6개월간 한번도 개본 적이 없는 시금털털한 냄새가 나는 삼촌의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가 만화책을 펼쳤다.

물론 그날 고우영 만화를 처음 본 것은 아니었다. 요절한 형의 예명을 그대로 사용하여 그린 그의 초창기 어린이 만화 <짱구박사>부터 당시 소년 잡지 <새소년>에 연재되던 <대야망>까지 그의 만화 대부분을 섭렵했고, 그의 그림 중 피가 튀는 장면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 그것을 따라 그리기까지 했지만 그가 그린 성인만화의 세계는 처음 접하는 것이었다. 그 후 나는 삼촌의 책꽂이에서 <고우영 임꺽정>과 <고우영 수호지> 2편, 3편을 찾아내 보았고, 급기야 공부를 해야 할 삼촌들에게 이런 만화책은 필요 없다고 단정하고 몰래 집으로 가져가는 책도둑질까지 과감하게 했으며 어른들의 전유물인 버스정류장 가판대까지 진출, <고우영 수호지> 후속편과 <고우영 임꺽정>은 물론, 다른 만화가들의 성인만화인 <여간첩 마타하리> <나는 참회한다. 주먹 천하 유지광> <이소룡의 혈투>를 보았고, 심지어 <김일성의 침실>과 강철수의 <사랑의 낙서>까지 섭렵했지만 <고우영 수호지>만 한 것이 없었고 <고우영 수호지>의 걸작 에피소드는 뭐니뭐니해도 ‘반금련과 무대’편이었다.

머리카락 사이에서 벼룩이 톡 톡 튀어다니는 거지꼴을 한 소녀 반금련을 애처로이 여긴 여자가 그녀를 데려다 목욕시키고 잘 먹인다. 몇해가 지나자 거지 소녀는 성숙하여 곧 터질 듯한 꽃망울처럼 아름다워진다. 아내가 거지 소녀를 데리고 올 때 질색을 하던 남편의 눈초리가 변하기 시작하고, 아내는 그런 남편을 예의 주시하던 어느 봄날. 반금련은 창가에 누워 기지개를 켜며 긴 한숨을 내쉰다. 그녀의 몸과 마음에 변화가 생겼다. 뭔가 가슴 한구석이 텅 빈 듯하다. 이 아리따운 반금련을 호시탐탐 노리던 늙은 남편이 그녀에게 수작을 부리려 하자, 아내는 마침 창밖을 지나가던 떡장수를 발견하고 그자에게 반금련을 시집보내버린다. 남편은 물론 온 동네 남정네들의 탄식에 집 지붕이 들썩인다.

아름다운 반금련을 아내로 맞이한 횡재의 사내는 누구인가?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잡은 호걸 중 호걸 무송의 형 무대다. 호랑이를 때려잡은 자의 형이니 대단할 것이라 짐작하겠지만 신은 심술을 부렸다. 고우영의 표현에 의하면 탐스런 사과의 한 귀퉁이 10% 정도를 떼어내어 형 무대를 만들고 나머지 모두를 사용하여 무송을 만들어냈다. 키는 1m도 안 되고 게다가 생긴 것은 쥐상에 대문짝만 한 뻐드렁니가 얼굴의 절반을 차지하고 그나마 뺨은 주근깨투성이다. 추남 중의 추남. 반금련과 무대의 첫 잠자리를 고우영은 탐스런 복숭아 위에서 벌레 한 마리가 꼼지락거리는 단 한컷(!)으로 표현한다. 이렇게 반금련과 무대의 비극은 고우영식으로 시작된다. <고우영 수호지>를 읽기 몇해 전, 소년잡지 <어깨동무>의 별책부록으로 <바벨 2세>와 <철인 28호>를 그린 만화가 요코야마 미즈테루의 <수호지>를 읽은 적이 있었다. 반금련과 무대의 에피소드는, 요코야마에게는 그냥 수많은 호걸 중 하나인, 호랑이를 때려잡은 무송이 악녀 반금련을 응징하는 복수극이었지만 고우영에게는 호걸 무송의 이야기라기보다 무대와 반금련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였고, <고우영 수호지>의 가장 중요한 에피소드였다. 다른 작가들이 만든 <수호지>의 반금련은 육욕에 눈이 멀어 남편을 살해한 악녀이지만, 고우영에게 그녀는 너무나 아름다웠지만 잘못된 장소에 잘못 태어나 파멸하고야 마는 비극적인 여주인공이었다. 다른 작가들의 <수호지>에서는 몇줄 지나가듯 언급되는 무대를 고우영은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반푼짜리 하찮은 사내 무대의 캐릭터에 당시 독자들은 열광했고, 그가 반금련과 서문경의 음모에 의해 독살당해 만화에서 사라진 후에도 무대 캐릭터는 <고우영 수호지>의 마스코트였다. 그리고 몇년 후, 반푼이 무대의 캐릭터는 삼국지의 유비에게로 이어진다.

쪼다 유비에 감정이입하던 시절

여성처럼 섬세한 얼굴의 일지매(일지매의 얼굴과 반금련, 제갈공명은 같은 얼굴을 한 고우영 만화의 배우들이고 고우영식 캐스팅이다)도 놀랍지만, 그가 그린 최고의 캐릭터는 주인공들보다는 언제나 다른 작가들이 지나쳐버린 조연급 인물들이었다. <고우영 임꺽정>의 시작은 거지꼴의 선비 주제에 여색을 엄청 밝히는 서림으로부터 시작된다. 무덤가에서 배가 아파 쩔쩔매는 처녀에게 다가가 “고것 참 겨자처럼 톡 쏘는 맛이겠다”며 입맛을 다시고는 처녀의 배앓이를 고쳐준다며 그녀의 배와 등을 슬금슬금 만진다. 임꺽정을 몰락시키는 배신자 서림을 형편없지만 미워할 수 없는 속물, 날건달 선비로 탄생시킨 것이다. 홍명희의 서림을 생각하는 독자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무대와 반금련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작가들은 양산박 호걸들이 주인공이 되어 진상품을 강탈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풀었던 진상품 강탈 에피소드를 고우영은 진상품 수송 대장이 된 몰락한 검객 청면수 양지를 주인공으로 삼아 에피소드를 이끌어가고 양산박의 호걸들은 모두 조연급으로 만들어버린다. 양산박의 도둑들에게 물건을 모두 잃고 망연자실 서 있는 양지에게 감정이입이 된 나는 진심으로 양산박의 도둑들을 증오하기까지 했다. 손오공의 여의봉을 남성의 성기가 커지고 작아지는 것을 연상하게 그린 것도 재미있었고, 입에 꽃 한 송이를 물고 팔도의 여자를 찾아다니는 변강쇠도 재미있지만 뭐니뭐니해도 최고는 유비였다. 소설 <삼국지>에서 제일 재미없는 인물 유비를 약간 사시인 고우영 자신의 얼굴로 그려넣고는 시치미를 뚝 떼고 쪼다 유비라 하였다. 우유부단하고 겁 많고 소심하며 하여튼 안 좋은 것은 다 가져다 붙여도 모자란 그런 유비를 탄생시킨 것이다. 쪼다이지만 독자들은 유비를 보며 감정이입을 했는데 그것은 바로 1979년과 1980년, 숨 막히는 동토의 왕국에서 눈치 보며 살던 대한민국의 소시민을 그린 것이었다. 그는 캐릭터 창조의 황제였다.

만화로 빅토르 위고와 겨루다?

소설 <수호지>의 첫장은 관리 홍태위가 주제 넘은 호기를 부리며 청석판을 열어젖혀 백팔요괴를 천하에 풀어놓는 신화적인 에피소드로 시작한다. 108명의 호걸들 이야기로 걸맞은 장쾌한 에피소드이다. 고우영이 왜 그것을 모르겠느냐만 <고우영 수호지>의 시작은 쥐새끼 같은 무일푼 건달 고구가 공 차는 재주와 아부 하나만으로 어떻게 관직에 오르게 되는지를 한칼에 보여주는, 고구가 촐싹거리며 공 차는 재주를 부리는 장면이다. <고우영 삼국지> 시작은 어떤가? 노점상 장비가 험상궂은 자신의 인상 때문에 장사가 안 되자, 자신의 돼지고기를 날강도처럼 강매하는 웃지 못할 이야기로 대장정이 시작되고, <고우영 열국지>에서는 화살과 전통을 팔러 성 안으로 들어가는 부부의 분주한 발걸음에서 시작된다. 그는 티격태격 다투는 부부의 그림 아래위로, 위고의 소설들이 씨줄과 날줄처럼 엮이고 각양각색 인물들이 서로 얽히고설키며 인간사를 풀어낸다면서 <열국지>의 시작도 그렇다며 만화로 빅토르 위고와 겨루려는 포부를 은근슬쩍 드러낸다.

너무 옛날이어서 제목이 기억 안 나는 고우영의 만화 첫 시작도 인상 깊다. 드넓은 벌판. 죽은 병사들의 시체 위를 나는 까마귀들이 어지럽다. 시체들 사이에서 한 사내가 몸을 일으킨다. 벌판은 황산벌이라 불리는 곳이고, 살아남은 사내는 계백의 결사대 중 생존자였다. 미야모토 무사시 이야기를 한국식으로 가져온 만화다. 원작의 세키가하라 전투를 황산벌로 가져온 것.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때, 대본소의 만화가 아닌 소년잡지에서 연재되는 만화들은 거의 다 일본 만화의 복사판이었다. <허리케인 죠>라고 정발된 일본 만화 <내일의 죠>는 1970년대 중반에 <도전자 허리케인>으로 <소년중앙>에 연재되었는데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한국 만화라고 생각하며 보았다. 고우영 역시 소년잡지에 만화를 연재하며 일본 만화 <공수 바보 일대>(空手バカ一代)의 한국판을 그리게 된다. 당시 만화가들이 일본 만화를 복사하여 그렸지만 고우영은 완전히 자기식으로 바꿔 그렸다. 대산배달(大山倍達, 한국명 최영의)의 일대기를 그린 <대야망>이 그것이다. 배달의 애제자 아시하라 히데유키의 에피소드가 박진감이 넘쳤는데, 히데유키가 무술수련 중 밭 가장자리에 버려진 시래기를 모아 소금을 뿌려서 김치를 담가 먹으면서 스승 대산배달이 조선의 음식인 김치를 말해준 것을 회상하며 스승을 그리워하는 장면이 있었다. 후일 정발된 <대야망>의 원작 <공수 바보 일대>에서는 그 장면이 버려진 채소를 주워 먹는 장면으로 지나가듯 처리되고 마는 것을 보고 ‘역시 고우영이구나’ 했었다. 고우영이 만화를 그리던 그 시대는 일본 만화 표절의 시대였다. 자신의 이야기를 원작으로 그리기보다는 남이 만든 이야기를 가져다 그림을 그려야 하는 그런 시대였다. 고우영은 남의 이야기를 가져다 원작보다 더 뛰어난 자신만의 이야기로 만들어버렸다.

동탁의 죽음을 그린 한컷

주인공들이 분노할 때, 특히 관우, 무송의 그림에서는 대쪽같이 힘찬 일직선을 내리찍어 인물들의 분노를 표현했고, 무대나 유비가 등장하는 유머러스한 장면에서는 나비처럼 나는 듯 가벼운 펜선으로 인물들의 감정을 표현했다.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다. 동탁의 죽음, 한컷. 로앵글의 시선. 죽어 누워 있는 동탁의 얼굴은 배에 가려져 보이지 않고 동탁의 태산만 한 배 위의 동굴 같은 배꼽에 커다란 양초가 꽂혀 활활 타오르고 있다. 그 아래 고우영의 깨알 같은 글씨가 적혀 있다. 동탁의 배에 꽂은 촛불은 사흘 밤낮을 꺼지지 않고 타올랐다. 단 한컷으로 이렇게 주인공의 탐욕과 허망한 죽음을 그리다니.

그는 20여년간 매일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원고 마감 시간과 싸우며 깨알처럼 촘촘히 백지 위에 그림과 글을 박아넣었다. 그것은 벌집만큼 아름다웠다.

나는 고우영이 <수호지> <삼국지>를 연재하던 최고 전성기의 그때, 그가 전날 자신의 몸속에 암이 자라는 것도 모른 채 그린 만화를 다음날 읽는 행운을 누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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