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극화'의 창시자 다쓰미 요시히로의 작품을 엮다 <동경 표류일기>
2015-07-01
글 : 윤혜지

<동경 표류일기>에 삽입된 다섯 작품은 역사의 파도에 휘말린 개인의 절망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다. <지옥>은 1945년, 자신의 명예를 위해 침묵을 지킨 종군사진기자 고야나기가 주인공이다. <내사랑 몽키>는 원숭이와 함께 살고 있는 한 공장 노동자의 외로운 삶을 담았다. <남자 한 방>에서 퇴직을 앞둔 중년 남자는 지독한 콤플렉스에 시달린다. 남자는 전우들이 묻힌 신사를 찾아 젊음을 회상하는 한편 현재에 대한 증오를 아내 탓으로 돌린다. <안에 있어요>는 자신을 옥죄는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와중에 아이러니하게도 진짜 취향을 깨닫게 되는 무명 만화가의 에피소드를, <굿바이>는 미군을 상대하는 매춘부 마리코가 절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술의 힘을 빌려 아버지와 몸을 섞는 비극을 그리고 있다.

현실 세계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만화 장르인 ‘극화’를 창시한 작가 다쓰미 요시히로의 작품은 패전 직후의 절망적인 삶과 경제 성장기의 비참한 현실을 씁쓸한 유머, 덤덤한 화법으로 묘사한다. 건조하고 단순한 작화 방식은 비극성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연민을 자아낸다. 단편들 사이에 다쓰미 요시히로의 젊은 시절을 그린 애니메이션이 연결고리처럼 놓여 있는데 이는 다쓰미 요시히로의 자전적 만화 <극화표류>(1998)를 떠올리게 한다. <극화표류>는 데즈카 오사무를 동경하는 소년 가쓰미 히로시가 전업 만화가로서 성장하는 이야기다. 다쓰미 요시히로의 도움을 받아 <동경 표류일기>를 연출한 에릭 쿠 감독은 실제로 다쓰미 요시히로의 열렬한 팬이기도 하다. 장인에 대한 존경심이 물씬 느껴지는 이 작품은 올 초 세상을 떠난 대가와 그의 작품세계를 기리기 위한 전기영화로도 손색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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