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컬트 수준의 열광이 들불처럼 번진 것도 벌써 한달이 지났다. 처음엔 국딩 때 비디오 가게에서 반납일자 늘려가며 비디오를 빌려보던 내 또래 마니아들부터 열광하더니(조지 밀러 칠순잔치 추진위원회 발족을 한다나 뭐라나), 트렌드를 알아야 한다며 취향이 아니고 입맛이 아니더라도 개봉 신작은 꼭 챙겨서 보는 딱딱한 영화인들까지도 열광하더니(이 영화는 속도감만으로도 이미 입체이기 때문에 굳이 3D로 볼 필요가 없다나 뭐라나), 끝내 외화치곤 흥행몰이를 하며 <매드맥스> 시리즈를 잘 모르는 관객층까지 함께 열광하기 시작했다(할리우드는 스케일이 다르다나 뭐라나.- 감독은 호주 사람인 게 함정). 나 역시 바쁘다는 핑계로 발을 동동 구르다가, 드디어 지난주에! 이 역사적인 순간을 영접하러 새벽 1시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상영관을 찾았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조지 밀러 감독님. 칠순잔치 때 춤이라도 추겠습니다요. 용서를 비는 또 한명의 <매드맥스> 마니아로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간만에 헤드뱅잉 일발장전하고 개모싱 개슬램 각오를 하고서.
금치산자 대신 로봇
맛이 어땠냐고? 솔직히- 에라 폭탄이나 먹어라- 난 그저 그랬다. 아니, 실망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직할지도. 마치 엄마의 김치찌개맛을 찾아 헤매다 유명 김치찌개집을 찾아갔다가 “이것은 제가 찾던 맛이 아닙니다”라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 그냥 나와버린 느낌이랄까? 혹시 쌍마초 맥스가 주인공이 아니라, 여전사가 주인공이라서 실망했냐고? 천만에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서 바로 그 부분이 제일 코믹했고, 제일 감동적이었다. 내가 실망했던 부분은 좀더 근본적인 것이다(이제부터 할 망언들은 <매드맥스> 시리즈의 골방 마니아로서의 입장이지 절대 어떤 집단을 대표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해두자).
일단 이전 <매드맥스> 시리즈 중 2편을 대표 격으로 삼아보자. 1편은 날것의 에너지가 미친 듯이 넘실댔지만 너무나 맹아 상태였고, 3편은 너무나 좌판을 벌이는 바람에 애먼 티나 터너만 발연기니 뭐니 욕을 먹으면서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논쟁적이었으니 말이다. <매드맥스2: 로드 워리어>(이하 <매드맥스2>)>로 대변될 수 있는 <매드맥스> 시리즈의 요체는, 바로 쓰레기 동산이다(대사에서도 여러 번 등장하는, 말 그대로의 “waste land”). 사막은 거대한 쓰레기통으로서 여기엔 거지들, 부랑자들, 방랑자들, 걸인들, 행려들이 득실댄다. 쓰레기통엔 쓰레기만이 득실대는 것과 마찬가지노니. <매드맥스2>의 주인공들은 바로 그러한 쓰레기 인간들이다. 그들은 막무가내로 행동하고, 또 계획 없이 제멋대로 산다. 무엇보다 그들은 멍청하고 허둥지둥대며, 병맛 멘탈이어서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환자들처럼 산만하며, 샘 페킨파 영화에서처럼 목숨을 부지하기도 벅찬 지질이들이다. “금치산자”라는 아주 좋은 단어만이 이 캐릭터들의 영혼을 묘사할 수 있으리. 맥스가 영웅이라고? 만약 누군가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는 분명히 홍보지나 풍문으로만 <매드맥스> 시리즈를 터득한 사람일 것이다. 실제로 맥스가 하는 짓의 팔할은 구걸하고 도망다니고 남에게 속는 일이다. <매드맥스2>에서 맥스가 낚이는 장면을 보라. 목숨 걸고 유조차를 몰아주었더니 기름 대신 모래로세. 이 얼마나 멍청하면서도 거룩한 금치산자인가. 약자만 그런 거지, 강자는 안 그렇다고? 이 역시 <매드맥스>를 풍문으로만 들은 결과노니. <매드맥스2> 테이프를 비디오데크에 넣고서 다시 한번 돌려보자. 선한 사람들을 공격하는 악당 무리 역시 금치산자들이다. 얼마나 쓰레기 같고 금치산자 같은가 하면, 자기네들끼리도 손발이 안 맞고, 심지어 옷도 제멋대로 주워 입었으며, 명령 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흥과 분에 못 이겨 기분대로 행동하기 일쑤이다. <매드맥스2>의 그 유명한 악당 대장 휴몽거스! 엄청난 카리스마로 묘사되곤 하지만 실제로 그의 명령을 제대로 따르는 자는 몇 안 된다. 아직도 선하다. 부하들이 분과 흥을 못 이기고 출격하자 멀어지는 그들을 망연자실 바라보며 허세부리는 휴몽거스의 멍텅구리 카리스마! <매드맥스2>에서 강자 역시 약자처럼 금치산자인 것이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약자는 구걸하고 강자는 깝죽거린다는 것뿐이다.
반면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엔 이러한 쓰레기 인간들이 없다. 그들은 비교적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고, 그에 따라서 수단과 행동을 조직하고 계획하려고 노력하며, 또 무리 안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해나간다. 그들은 시스템 속에 있는 똑똑이들이다. 퓨리오사 무리가 그렇다. 똑같이 사막을 질주하는 것 같지만, 그들은 <매드맥스2>에서 보던 그런 방랑과 도주를 하지 않는다. 그것은 뚜렷한 목적지를 향해 계획적으로 이동하면서 시스템에 뿌리내림이다. 물론 영화 초반과 마지막 부분에 물을 구걸하는 걸인들이 대거 나오긴 하나, 이를 내려다보는 악당 무리의 시스템을 보라. 배수관 펌프를 돌리는 사람들은,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서 똑같은 행동을 하는 시스템의 노예들이다. 그들은 더이상 금치산자가 아니다. 그들은 로봇이다. 악당대장 임모탄이 까라면 까고 죽으라면 죽는 충실한 로봇들(다행히 재갈을 풀기 위해 젓가락으로 목 뒤를 긁어대는 우리의 지질이 맥스와 정차 중에 늘어져 자고 있다가 시동만 걸렸다 하면 벌떡 일어나서 기타를 쳐대는- 그 유명한- 빨간 내복 기타맨이 그나마 우리의 지질 충동을 달래준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세계는 게임공간, 즉 <스타크래프트>의 세계처럼 보인다고 하면 막말인가. 테란. 저그. 프로토스. 무리간에는 달라 보여도, 각각의 무리 안에서는 똑같아 보이는 시스템 무리. 요컨대 <매드맥스2>와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차이는, 금치산자와 로봇의 차이다. 전자는 쓰레기 동산의 쓰레기 인간들이지만, 후자는 시스템의 부품들이다.
조지 밀러의 멍텅구리 몽타주
이러한 차이가 모든 차이를 지배한다. <매드맥스2>의 진정한 매력은 카리스마의 후카시가 아니라, 그 후카시가 얼마나 실없이 무너지고 사실은 애초부터 텅 비어 있는가 하는 바로 그 허무함에 있다. 맥스도 그렇고 휴몽거스도 그렇다. 목숨을 건 추격전이 끝난 뒤에 낚였음을 깨달은 맥스는, 그래도 석양을 등지고 후카시를 잡는다. 휴몽거스의 지축을 뒤흔드는 포효 뒤에는, 혹은 그 곁에는 항상 그를 생까는 그의 당나라 부대원들의 천방지축이 함께한다. 여기서 영웅은 멋지지만, 그만큼 코믹하다. 하긴 똥폼 잡아봤자 거지대왕이다. <매드맥스2>에서- 너무나도 유명한- 마지막 추격전만큼이나 내가 열광하는 부분은, 그 몽타주 틈틈이 편집해 넣은 괴기한 뻘숏들이다. 밀러 감독은 유조차가 질주하고 악당들이 추격하는 숨가쁜 몽타주 사이에, 화염병으로부터 옷으로 옮겨붙은 불을 끄기 위해서 허둥지둥하는 한 거지를 열심히 묘사한다. 추격전의 속도만큼이나 금치산자의 뻘짓거리가 중요한 것이다. 아벨 강스의 가속 몽타주,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의 견인 몽타주에 필적하는 조지 밀러의 멍텅구리 몽타주 납시오. 반면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서는 영웅은 정말 영웅답다. 그의 진중한 눈빛은 그가 바라보는 지평선과 몽타주 되고, 그의 고뇌하는 표정은 석양과 몽타주 된다. 속도 역시 그대로 속도다워야 하고, 따라서 <매드맥스2>에서 마구 질러대던 병맛 멍텅구리 몽타주는 들어설 구석이 없다.
같은 이유로 <매드맥스> 시리즈엔 국가가 없지만,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는 국가가 있다. <매드맥스3: 비욘드 썬더돔>에는 국가가 나오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헛똑똑에겐, 그래, 돼지똥 메탄가스로 먹고사는 시스템도 국가라면 그렇다고 대답해주자. 멍텅구리들이 똥폼을 잡고, 또 실제로 똥을 먹고사는 똥나라만이 <매드맥스> 시리즈의 국가다. 신도 그렇다. <매드맥스2>뿐만 아니라 <매드맥스> 시리즈를 통틀어, 신은 자동차들이 질주할 사막과 공기를 내어주는 것 이외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신도 금치산자이기 때문이다. 이에 비한다면,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서의 악한 자와 선한 자를 걸러내주시고, 죽을 자와 살 자를 심판해주시는 모래폭풍- 이 얼마나 로봇 같은 신이란 말인가.
나는 믿는다. 만약 30년 전의 조지 밀러라면, 분명히 퓨리오사의 기계팔 대신 대걸레라도 하나 붙여놓았을 것이라고. 왜냐하면 <매드맥스> 시리즈의 본질은, 쓰레기 나라의 쓰레기 인간들의 쓰레기 같은 구걸과 방랑일 테니깐. 그리고 나는 믿는다. 진정 <매드맥스> 시리즈의 마니아라면, 반납기한을 넘기면서까지 비디오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한컷 한컷을 음미하면서 맥스와 휴몽거스의 똥폼에 열광했던 또라이 마니아라면,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를 보고 나오면서 나와야 할 첫 번째 반응은 환호성이 아니라 갸우뚱이었을 거라고. 금치산자와 똥폼을 기대하고 갔다가 로봇과 시스템을 보고 왔을 테니깐. 하지만 조지 밀러를 미워하진 않으련다. 세월은 흘렀고, 쓰레기도 쌓이면 성곽이 되고 똥도 익으면 나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난 단지 그리울 뿐이다. 아직 안 나온 <매드맥스> 4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