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살 시나리오작가 가을(김소희)과 입대를 앞둔 19살 요셉(성호준)은 동거 중이다. 두 사람이 함께 다니면 사람들은 가을을 ‘어머니’라고 지칭한다. 둘은 고양이 희망이를 기른다. 어느 날 시름시름 앓는 희망이를 동물병원에 데려갔더니 수술을 해야 한단다. 수술비 마련을 위해 가을은 김밥집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요셉은 일용직 택배 아르바이트를 전전한다. 수술 후 회복 중이던 희망이가 사망한다. 두 사람은 언 땅이 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희망이를 묻어주기로 한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가을은 임신 사실을 알게 된다. 병원에서는 그녀에게 “늦둥이를 보셨군요”라고 인사하고, 가을은 “초산인데요”라고 답한다.
그녀에겐 모든 것이 처음인데 남들은 늦었다고 한다. 가을은 세상이 요구하는 흐름에서 뒤처진 사람이다. 요셉은 가을을 ‘을아’라고 부른다. 그녀의 이름은 갑을관계로 이뤄진 세상에서 이미 그녀가 을로 예정된 사람인 것처럼 느끼게 한다. 가을에게는 과도한 책임이 요구되는 한편, 요셉은 아직 무언가를 책임질 권리를 갖지 못한 사람이다. 요셉은 가을이도, 희망이도, 아기도 책임지고 싶지만 세상은 그에게 책임질 수 없다고 단정한다. 요셉은 가을에게 어쩌면 신 같은 존재다. 믿고 의지할 수는 있지만 같이 떠안고 책임을 지울 수는 없는 존재다.
40대 여자와 10대 남자의 금기된 사랑을 통해 <파스카>가 그리는 것은 어떤 책임의 문제다. 다양한 구도와 위치에 놓인 카메라는 종종 이들의 삶을 관찰하는 것처럼 보인다. <파스카>가 특히 본다는 것에 내포된 책임의 문제를 그린다는 것을 염두에 둘 때, 카메라의 시선 역시 영화 속 사건에 대해 하나의 책임을 공유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안선경 감독은 영화 이전에 연극 연출가로 출발했다. 작품 속 일상 공간은 조명의 세심한 활용에 의해 종종 무대 위 공간처럼 낯설어 보인다. 파스카는 직역하면 ‘거스르고 지나가다’라는 뜻으로 성서에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이집트 노예 해방을 기리는 축제 혹은 이와 관련한 피의 숙청을 가리키는 말이다. <귀향>에 이은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연출작으로 2013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상을 받았다.